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가을의 문턱을 지나고 있다. 미풍으로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에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얼굴을 간지럽히며 미세하게 움직이는 머리카락들이 꼭 나뭇가지가 된 것만 같다. 문득, 바람이 불 때 나무도 이런 마음일까 하고 생각했다.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기다렸다는 듯 기지개를 켠다. 억압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다.
나무가 흔들리는 날에는 마음도 함께 일렁였다. 나뭇잎이 흔들거릴 때면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시련으로 여겼던 걸까. 바람에 온몸으로 흔들리는 꽃 한 송이보다 굳건한 나무가 너울을 일으킬 때 마음이 아렸다. 흔들리며 피는 꽃을 왜 당연하게 여겼을까. 돌아보니, 나는 언제나 꽃 쪽에 가까웠다. 바람에 흔들리고 쉽게 지는 존재. 그래서 나무의 흔들림은 오히려 낯설고 숭고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무는 햇살보다 바람을 더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계절의 끝마다, 바람은 나무에게 떠날 때를 알려주는 존재였을지 모른다. 꽃눈을 내리고, 열매를 맺고, 단풍비를 내리는 동안 나무는 언제나 바람과 함께였다. 섬섬옥수가 된 나뭇가지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질 때에도, 바람은 끝까지 곁에 남아 나무의 숨을 지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