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의 시대는 끝났을까?
한국 사회에서 목욕은 단순히 몸을 씻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왔다. 특히 근대 이후로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목욕탕과 사우나는 우리 삶의 일부분이자 공동체의 중심 공간으로 발전해 왔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목욕과 사우나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현재 어떤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자 한다.
20세기 초반, 목욕탕은 위생의 필요성에 따라 도시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대부분의 가정에는 욕실이 없었고, 목욕은 일정한 주기를 두고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때밀이’ 문화도 이 시기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족 단위로 목욕탕에 가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고, 따뜻한 물속에서 나른하게 몸을 풀고, 나오는 길에 식혜 한 병과 삶은 달걀을 먹던 기억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목욕탕은 단지 위생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세대 간의 교류가 있었고, 이웃과의 소소한 대화가 오가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커뮤니티의 기능을 해왔다. 특히 매주 정기적으로 목욕을 하는 문화는 가족 간 유대를 다지고, 공동체 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중요한 일상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목욕탕 문화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기존의 단순한 공중목욕탕에 다양한 테마를 더한 ‘찜질방’이 등장한 것이다. 황토방, 소금방, 숯방, 얼음방 등 다양한 테마 공간과 함께 만화방, 수면실, 식당 등 부대시설이 결합되면서 찜질방은 새로운 형태의 여가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가족 단위는 물론 연인, 친구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었고, 주말이면 대형 찜질방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몰리곤 했다.
찜질방은 단순한 ‘목욕 후 쉬는 곳’을 넘어, 피로를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힐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찜질방 특유의 풍경과 문화가 널리 소개되면서, 찜질방은 그야말로 전국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대중적인 찜질방의 수요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는 가정 내 욕실 시설이 크게 개선된 것과 더불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된 영향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공동시설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많은 목욕탕과 찜질방이 운영을 중단하거나 폐업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사이 목욕과 사우나 문화는 또 다른 방향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혼사’라고 불리는 혼자 사우나 즐기기, 북유럽 감성의 프리미엄 사우나, 사우나 명상,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갖춘 소형 사우나들이 등장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통해 사우나 공간을 감성적으로 소개하는 콘텐츠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 정신적 리프레시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닿아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따뜻한 온기에 몸을 맡기며 숨을 고르는 공간으로서의 사우나는 점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지역 고유의 자원을 활용한 온천과 사우나 시설은 ‘웰니스 여행’의 주요 요소로 부상하고 있으며, 부산, 제주, 강원도 등에서는 이를 관광 자원화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런 흐름은 일본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특히 최근 5년 사이, 일본의 사우나 문화는 '사우나 붐'이라 불릴 정도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도쿄나 오사카의 중심가에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개인 사우나가 늘고 있으며, 사우나를 테마로 한 호텔, 게스트하우스도 등장하고 있다. 사우나 관련 잡지나 굿즈, 캐릭터 상품까지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렇듯 목욕탕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익숙해서 자주 지나치지만, 그 속엔 여전히 목욕탕이 있다. ‘씻는 곳’에서 ‘힐링의 공간’으로, 다시 우리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