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스윙 Mar 01. 2022

한국 vs 영국의 엔지니어링

300년짜리 프로젝트

영국에서 일한지 3년 정도 되니 프로젝트 하면서 영국과 한국 엔지니어링의 차이가 무엇인지 점점 명확히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나 지금이나 나는 비스름하면서도 다른 업계에 종사하는데, 이러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 해당 국가의 정책 기조와 회사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다녔던 회사를 포함하여 한국의 건설사와 엔지니어링 회사는 사실 설계를 거의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시공 위주다. 설계팀이 있기는 하지만 그 설계 원본에 대한 라이센스가 한국 회사에 없기 때문에 외국에서 디자인한 것을 받아서 거기에 추가로 공사할 수 있도록 리뷰하는 상세 설계 정도를 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콘셉트와 로직, 디자인이 포함된 기본 설계는 모두 외국에서 받아온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국이 만들었다고 하는 외국의 유명한 건물들 이를테면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라던가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샌즈는 한국 건설사에서 시공은 했으나 그 디자인은 모두 유럽이나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간단히 말하면 이케아에서 사다 조립하는 그 과정만 한국이 하는 것이고 그 전과정은 외국에서 이루어지는 뭐, 그런 식이다.) 최근엔 중국에서도 싸고 빠르게 공사를 하기 때문에 한국 회사들이 경쟁에서 밀리기도 한다. 일반 건축물이야 단순하지만 발전소 같은 조금 복잡한 프로세스가 들어갈 경우 그 디자인에 대한 로열티까지 따박따박 외국회사에서 받아 가서 사실 한국에서 일할 때 저런데가 진짜 꿀이겠다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회사들에서도 설계 역량을 키우겠다고 한 번씩 뽐뿌 올 때 인력을 쫙 뽑아서 교육을 시키는데 사실 지속적으로 수행이 잘 안된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유를 ‘인내심’에서 본다.


사진출처: https://www.imeche.org/


영국의 경우를 심플하게 비교해 보자면 어떤 프로젝트를 설계를 하기 위해 스터디만 몇 년을 한다. 당연히 그 기간 동안 눈에 보이는 아웃풋도 업고, 딱히 뭘 산출해 내지 못한다. 돈만 보자면 아주 비효율적, 말 그대로 ‘스터디’ 하는 단계다. 천천히 단계를 나눠가며 이게 되나 안 되나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고 타당성을 분석한다. 투입되는 자금은 정부에서 펀딩 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정부에서 투자가 안 이루어질 경우 중단되었다가 다시 하고, 기술이 발전이 안됐으면 또 기다렸다가 다시 하고 천천히 조금씩 만들어 나간다. 스터디가 몇 년에 걸쳐 끝나야 비로소 설계를 시작하는데, 정말로 사람들이 계산해서 그리는 (사실 처음 봤다) 행위를 한다. 실례로 내가 최근 들어간 프로젝트는 1950년대 중단되었다가 기술 개발로 2000년대에 재개되었는데 정부에서 지원해 줄 돈이 없어 다시 중단되었다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시작한다. 한 프로젝트를 70여 년 이상 끌고 온 셈이다. 과거 한국에서 종종 손 안 대고 코푼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막상 직접 보니 그 도면 한 장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동력과 기술 성숙 시간이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영국에서 마스터플랜으로 내세우는 에너지 정책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는데 decarbonisation을 바탕으로 모든 산업 전반에 굉장히 장기적 관점으로 계획을 세운다. 나중에 당연히 변경되겠지만 틀 자체가 아주 거시적이다. 이를테면 100년짜리 프로젝트도 제법 있고 심지어 프로젝트 기간이 대략 300년인 것도 봤다. 처음에는 2030 숫자를 잘못 본 줄 알았다. 최근에 2045년에 끝나는 프로젝트 플랜 참여했을 때도 이날이 오기는 하나? 이 기술이 구현되나? 하면서 굉장히 의문을 갖고 했는데 2300년이라니…ㅎㅎ 너무 멀어서 황당하기까지 했는데 그러면서 든 생각이 아, 우리 세대가 죽으면 다음 세대가, 계속 인류가 이어 나가서 하는 것이겠구나라고 좀 더 범인류적인 시각으로 일을 보게 되였다랄까.


결국 한국에서도 건설사들이 단순한 시공이 아니라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고부가 가치 쪽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갖고 투자하고 사람들 역량이 클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이 우선이라면 그럴 여유가 있나 의문이 드는 포인트이긴 하지만 (일단 내 세대에서 어떻게든 많이 해먹겠다는 욕심을 좀 버려야 할 것 같다), 물론 그 바탕에는 정부의 꾸준한 지원과 거시적인 플랜이 깔려야 하고, 단기간에 이런 종합적인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결국 회사와 정부의 정책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인드가 전체적으로 성숙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만의 출근 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