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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스윙 Apr 02. 2019

유명한 석학의 강의를 들어본다는 것

외국에서 공부를 하니까 어떤 환상이 조금은 있었다. 이 분야의 대가들이나 유명한 석학이 와서 하는 강의를 들으면 무엇인가 다를 것이라는 나름의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뭔가 대단할 것 같고,  아우라가 나올 것 같은? 물론, 세상이 좋아져서 TED나 재택 강의로도 접할 수 있긴 하겠지만, 인터넷 강의는 확실히 집중도가 떨어지기는 한다. 


내가 들었던 수업 중에 하나는, 혁신 이론에 관해서 많은 저서를 낸 정말 이 분야에서는 유명한 교수였다. 사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 몰랐는데, 남편이 어느 날 내가 보고 있는 책을 보더니 "아, 이 사람 진짜 유명한데 우리도 수업시간에 인용 엄청 많이 해."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데서 학생들이 몰래몰래(?) 청강도 오고 그랬던 유명 인사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 강의 때, 세미나로 초빙하는 사람들도 저명한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교수가 너무너무 바쁘다 보니, 수업만 끝나면 질문할 타이밍도 없이 사라졌다. 질문도 많이 받지 못하니 수업의 피드백도 적고, 나중에는 학생들의 불만도 많이 생겼다. 바쁘다 보니 에세이 구성도 다른 과목에 비해 심플하고, 채점도 다 조교들의 몫이다. 물론, 파티 때는 유명인사다 보니 또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인기스타를 방불케 했지만, 논문 때 지도 교수로 이 교수님을 고려한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정말 좋은 강의'만' 들었다.


우리 과를 만들었던 교수도 환경 경제학 분야에서는  저명한 인사였다. 첫 수업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이, 허름한 형광색 우비를 입고 문 앞에 서있길래 강의실을 청소하려고 기다리나 보네 했는데, 알고 보니 교수였다. 허름한 우비 속에 아주 잘 차려입은 양복이 있었는데, 반전이라 놀랬던 기억이 있다. 70이 다 되는데, 말도 또랑또랑하게 2시간 수업을 거의 쉼 없이 이어나간다. 학생들의 질문도 잘 받아주고, 수업 시간에는 정말 젠틀한 교수님이다. 이 분이  매스컴에 언급되는 때가 종종 있다 보니 어느덧 우리 과에는 추종하는 팬들까지 생겼는데, 거의 아이돌급이었다. 하루는 과의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모여서 크리스마스 파티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역시 유명한 사람인 이 교수님에게 애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질문을 한다. 대부분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취미, 좋아하는 노래나 춤 등이었다. 수업시간에 못하는 어떤 질문이든 환영이라길래, 나는 이 과에 근본적인 질문이 있던 터라 용기 있게 다가가서 질문을 조용히 던져봤다. "왜 환경 경제학은 과거만 가지고만 분석해요?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 뭐가 좋은 지도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약간 표정이 굳어진 노교수는 나를 구석에서 다시 보자고 했다. 그리고는 따로 구석에 가서 조용히 나긋나긋 말했다. "너 중국인이니? 일본인인니?". " 한국인인데요?".  "그건 경제학의 스콥이 아니야,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하는 거지." 그리고는 내가 다시 되물을 틈도 없이 빠르게 사라졌다. 솔직히 많이 당황했다. 융합을 한답시고 과를 만들어 놓고, 저렇게 스콥을 나눠서, 경제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니. 출신국은 왜 묻는 것이며, 스콥 나누는 건 회사에서나 하는 건 줄 알았다. 아직 한 학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약간은 엉뚱한 질문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따로 불러서 다른 학생들 안 듣는 곳에서 하는 비겁한 대답에 적지 않게 실망한 건 사실이다. 매스컴과 인기를 좋아하는 교수의 전형인 것인가? 여기도 꼰대 같은 교수가 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실망도  컸다. (한국에서도 그런 교수들을 봤던 터라 뭔가 동일시되었다랄까?)


친구한테 한참 불만과 비판을 쏟아내다가 옆에 있는 다른 교수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서 같이 얘기하며. 시원하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40대의 젊은 이 교수는 물론 유명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주변에 없기도 했고, 그래서 내 얘기를 잘 들어주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래도 대화가 어느 정도 이어지니 기분이 누그러지고, 좀 전에 노교수와 이야기하면서 흔들린 멘탈을 어쨌든 다시 부여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추후, 나는 논문을 이 교수와 진행하였는데, 적어도 피드백이 오가는 '배움의 과정'에 있어서는 만족도 100%였다.  


뭔가 저명한 석학들을 다를 것이라는 나의 어리석은 생각이 깨지는 사건이었다. 물론, 그 이후로 이런 미련한 환상 따위는 갖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배우고" "경험"하는데 더 집중하고 초점을 맞출 뿐.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하는 것, 이 진리를 또 나는 몸으로 부딪혀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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