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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스윙 Apr 09. 2019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 (1)

3월 정도 되니까 날씨가 어느 정도 풀려서 봄이 왔구나 새삼 느껴진다. 해도 길어지고 곧 있으면 서머타임이 시작되니 진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느낌이다. 긴 동면 끝에 잠에서 깬 느낌이랄까. 지난겨울 동안은 내가 공부한 것들, 생활해 온 것들을 정리하고 기록했다. 20대 때와는 또 다르게 현재는 어떤 마인드와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 예전 글들을 찾아 비교해보니 얼마 안 되는 기간인데도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과거의 나의 모습에 뭔가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도 나의 생각과 의식의 흐름을 시간 흐름대로 아주 잘 보여주는 기록이니, 내가 나이가 먹어서도 이러한 흔적들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쨌든 작년부터 나의 꽤 우선순위 생각인, 삶과 대한 고민의 흔적 일부.


런던에서 통학하는데 걸어서 대략 30분 정도 걸리는 시간, 왕복 1시간은 런던의 이것저것 구경할 수 있는 재밌는 시간이었다. 가는 길에 이것저것 유혹할만한 상점이나 볼거리들이 있기 때문에 딱 30분 만에는 보통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어서, 항상 여유롭게 길을 나섰다. 오가는 길에는 항상 홈리스(Homeless)들이 거리 곳곳에 있었는데, 특히 카페나 테이크아웃 음식점 주변에 많았다, 이들은 전혀 나의 관심사도 아니었거니와  냄새도 많이 나고 괜히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멀리 피해 다녔다. 


그런데 지나다니다 보니 여기 사람들은 길거리의 노숙인에게 종종 말을 잘 건다. 노숙자와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정말 많아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나 지나가며 쓱 들어봤는데, 기본적인 인사나 날씨 대화, 좀 심오하면 어쩌다가 이 길에 앉아 있는 것인지 그들의 사연을 묻는 대화들. 그러면 노숙인은 생각보다 공격적이지 않고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대답을 자연스레 해준다.  그런 장면을 길에서 수도 없이 봐왔지만, 내가 그렇게 해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루는 날씨가 쌀쌀해서 커피 한 잔 사기 위해 카페에 들어갔는데, 앞에 있던 노숙인도 같이 들어와 줄을 서고 있었다. '커피도 사 먹네?'라고 생각하던 찰나, 내 앞에 있던 사람이 노숙인에게 메뉴를 고르라며 커피를 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숙인은 자연스럽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고맙다고 인사한 뒤 커피를 받아 나갔다. 길가의 노숙인을 데려와서 커피를 사주어 보내는 것이, 어쩐지 내 시각에서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이 사람이 좀 특이한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그 이후로도 노숙자를 카페로 데려와서 커피를 사주는 광경을, 특히 겨울에, 여러 번 목격했다. '겨울이라 추우니까 이웃과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뭐 그런 것일까?'


2018년 겨울이 워낙 추웠던 지라, 나도 문득 맨날 오가는 거리의 많은 노숙인들 얼어 죽는 거 아니야? 염려하고 있었는데, 결국 학교 앞 마트에 앉아있던 노숙인 한 명이 세상을 달리했다. 누군가가 그 사람을 기리는 글을 종이에 써서 고인이 지내던 자리에 붙여놨고, 몇몇은 그 주변에 꽃을 올려놨다. '잘 모르는 사람인데도, 저런 작은 표현을 해주다니.'


나에게 이런 적응 잘 안 되는 문화는 마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트에서 계산하고 나오면 보통 "Food donation"이라는 큰 통이 있는데, 사람들이 구매한 물건을 넣어주면 이 상품들이 불우이웃에게 전달이 된다. '나 먹을 것도 없는데 누가 계산하자마자 물건을 저기 넣겠어?'라고 생각했는데, 큰 통이 가득 차다 못해 넘친다. 안에는 시리얼, 통조림, 과자, 초콜릿 등 마트에서 구매한 먹을거리로 가득하다. 이런 모습을 영국 사회 곳곳에서 볼 때마다, 신선하면서도 적응이 안 돼서 도대체  뭐지 싶은데, 이런 모습에 자주 노출된 탓일까 나도 해보고자 하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너무 추운 날에는 내가 마실 커피를 전해준다거나, 선물 받은 초콜릿을 노숙인 자리에 놔두었다. ‘집에 어차피 먹을 것 있는데, 나보다 더 맛있게 먹을 사람 주지 뭐’라고 마인드가 좀 바뀌었다. 소심하게 쓱 전달은 했지만, 아직까지도 대화를 할 용기는 나지 않는다.


어떤 이유와 문화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러한 문화가 나에게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게 다가왔다. 얘네들은 왜 이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일까 한참을 궁금해하면서 남편이랑 종종 얘기를 했었는데, 계속 답을 찾지 못하다가, 혹시 이런 행동들이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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