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필두로,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간 수많은 경제 이론들과 실험이 시작된 영국이기 때문에, 이곳의 사회 모습은 그 어느 곳보다 자본주의스럽다.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오랜 기간 동안 축적해온 사회의 모습이기에, 나 같은 이방인의 시선으로는 이러한 사회가 견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 최근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들이나 이슈들이 이곳에서는 이미 1970-80년대에 논란이 되었던 일들이다. 누군가로부터 영국이 한국보다 20여 년 정도 앞선 사회의 모습이라고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실감하는 부분이었다. 특히, 왕실이 있어서 그런지 흔히 생각하는 서구사회라기보다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서 한국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인도와 중국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나라 80-90년대 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래서 중국의 한 친구는 한국의 현재가 미래의 중국의 모습이기 때문에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며 열심히 공부 중이다. 그렇다면 나는 반대로 이곳의 모습을 보고 한국의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음... 평상시에 책이나 TV 정도로 접했던, 카더라 얘기로만 듣던 이런 사회 모습들을 내가 실제로 보니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근로자의 모습/
한국에서는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이름있고 큰 회사 그리고 안정적인 회사를 간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임금도 좋고, 복지도 좋고, 중소기업들보다 처우들이 좋으니 대기업, 공기업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큰 회사나 작은 스타트 업이나 공무원이나 연봉 차이가 크게 나지는 않는다. 물론 큰 기업이 조금 더 받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엄청 차이 나는 것이 아니고, 복지도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니, 근로자가 그냥저냥 다 다닐만하다. 최저임금이 높기 때문에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은 보통의 다른 서구권 나라처럼 페이가 높다. 다만, 일반 회사원의 경우도 10명 정도되는 작은 사무실에서 회계 담당을 하는 사람이나 유명한 회사에서 회계 담당을 하는 사람의 연봉 격차가 그렇게 크지 않으니 신기하다. 능력에 따라 승진을 하지만 매니저 디렉터가 된다고 해서 막 엄청난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뭐랄까, 근로자가 받는 돈은 어느 정도 바운더리가 정해져 있는 느낌이다. 아주 낮지도 않지만 아주 높지도 않은? 다시 말하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크게 욕심 안 부리면 어쨌든 다들 고만고만하게 먹고 살 수 있다.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아도, 욕심을 더 부리는 사람이 주변에 많았다. 여기저기 투자를 해서 돈을 더 벌어서 강남에 살고 싶어 하고, 한강뷰의 아파트를 꿈꾸기도 하고, 그리고 많은 사람의 꿈은 빌딩 사서 건물주가 되는 것이다. 나와 남편이 내린 결론(?)은 그래도 어느 정도 눈에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욕심을 내본다는 것이다. 주변에 부동산 투자해서 대박 난 사람, 주식으로 돈 번 사람들, 비트코인으로 대박 난 사람들이 종종 보이니까 희망을 가지고 욕심을 내본다는 것이다. 몇십년간 돈을 안 쓰고 저축해야 서울에 집 한 채를 마련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하면 서울에 집을 살 수 있으니까 욕심을 내본다. 반대로 이곳에서는 그런 욕심을 부리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욕심이 없다기보다는 너무 까마득해서 현실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느낌이랄까. 근로자가 숨만 쉬고 돈 모아서 살 수 있는 런던의 집은 없다. 가족이 대를 이어서 몇 대째, 귀족들이 대를 이어서 쭉 잘 살면서 몇백 년 동안 이루어진 부이기 때문에 일반 근로자가 사실 엄두도 못 낸다. 정말 접근할 수 없는 딴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보이지는 않지만 뚜렷한 계층의 선이 있다. 물론 가끔 욕심(?)을 내는 사람은 있다. 회사 다니면서 보통 창업을 한다.
/공정한 기회?/
이렇게 자본주의의 원리에 따라 계층이 나누어지니, 자연스레 거주지도 나누어진다. 사는 곳이 나누어지으니, 자녀들의 학교도 나누어지고, 그렇게 풍족한 자본과 환경 속에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좋은 학교에 진학하여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정치인들은 보통 이튼과 같은 유명 사립학교를 나오고 옥스퍼드에서 수학한, 그리고 집안이 귀족인 사람들이 많다. 의사 같은 경우는 고소득의 전문직이라기보다는 사회봉사하는 박애주의적 직업이기 때문에 연봉이 한국처럼 높지 않지만, 로스쿨은 고연봉의 전문직이다. 물론, 전문직이 되기 위한 전문 스쿨, 좋은 학교의 비싼 학비는 학자금 대출 없이 일반 근로자가 감당하기에 비싸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여유가 되는 사람이 더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빈익빈 부익부라고 하기엔,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직업들이 어느 정도의 생활을 충분히 보장한다. 한국에서 기회의 사다리가 사라진다고, 공정한 기회를 추구하기 위해 사람들의 갑론을박이 뜨겁게 무르익고 있지만, 이곳은 너무 고착화되어서 이런 것이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욕하거나 부러워한다기보단,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마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현재 한국은 오히려 기회의 장인 것인가?
/노인과 인구감소/
출산율 낮다고, 노동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노년층이 증가한다고 어느 날부터인가 기사들이 엄청나게 올라오길래 영국의 모습을 쓱 보았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 가능 인구는 아직까지 70% 이상으로 영국, 프랑스 등이 60% 초반인 것을 비교해보면 10% 이상 높은 수치이다. 오히려 기타 선진국보다 노동인구는 많은 셈이다. 출산율이 낮은 것은 장차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10% 마진은 아직 있는 것 아닌가? 단순하게 생각이 들었다.
런던에 가면 영국인보다 외국인을 찾기 쉽지만, 외곽은 영국인이 당연히 많고, 특히 노인이 정말 많다. 조금만 나와서 중간 규모의 시티만 가도 젊은 사람들보다는 중장년이 월등히 많은 것을 체감한다. 보통 이곳 은퇴나이가 60-65세 정도 되는데, 그 나이가 되어서 어떻게 사나 봤더니 보통 나라에서 지급하는 연금 (120만 원가량) + 젊은 때 모은 개인연금으로 지낸다. 좀 알뜰하게 모은 사람들은 지방에 집이 한두 개씩 있는데, 이것으로 월세를 받아서 추가 소득을 얻는다 (생각보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으로, 물가 저렴하고 날씨 좋은데 나가서 사는 사람도 많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한 달 살기의 노후 확장판 느낌이랄까.
영국의 사회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오히려 한국이 기회의 나라, 공정한 사회를 추구한다는 느낌이 든다. 금수저니 은수저 흙수저 계급을 나누어서 볼멘소리를 하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몇백 년 전부터 수저 사회가 고착화된 이곳에선 그럼 말이 씨알도 안 먹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사회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결국 자본주의는 이렇게 굳어가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한국의 모습도 이렇게 흘러가는 낌새가 보이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