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영국의 대학교들은 학위를 받는 해에 졸업식이 이루어지지만, 이상하게 런던의 학교들은 학위를 받은 다음 해에 졸업식이 이루어진다. 우리의 경우 영국에서 지내고 있으니 상관없지만, 공부를 마치고 이미 고국으로 돌아간 학생들은 졸업식을 이유로 런던에 가족 함께 다시 와야 한다. 초청 레터부터 비자도 다시 받아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의 학교는 나에게도 나름 의미가 있다. 무더운 더위를 피해 2달 이상을 이곳 도서관에서 논문을 쓰며 보냈기 때문에 추억도 서려있고 정도 들었다. 졸업식이 열리는 로열 알버트 홀은 꼭 한번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 둘이 노래를 불렀었는데, 이렇게 졸업식을 핑계로 가게 되니 기분이 업됐다. 다만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학생들 학부모들 모두 비바람에 한껏 차려입은 복장이 다 망가졌다. 좋은 날 날씨도 맑았으면 좋았을걸, 2% 정도 아쉬웠다.
홀이 제한되어 있어서 그런지 졸업식을 참석하기 위해서 티켓을 사야 한다. 그나마 티켓도 개수가 학생당 2매로 정해져 있어서 가족이 많이 올 경우 다 들어가지도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바람을 뚫고 겨우겨우 시작 3분 전에 앉았다. 런던에서 공연 볼 때 작은 홀을 주로 봐서 그런지, 이런 큰 홀은 확실히 웅장하고 시선을 압도한다. 너무 멋있어서 자리에 앉자마자 사진을 엄청 찍어댔다. 생각보다 너무 고풍스러워서 놀랐다. 티켓값을 결제할 때는 도대체 왜 졸업식에 돈까지 내고 들어가야 하나 엄청 구시렁거렸는데, 막상 눈으로 보니 이 정도 스케일이면 돈 주고 볼만하긴 하겠구나 싶었다. 여행다니면서 건축물 관람하는데도 몇십유로씩 내는데, 이것은 졸업식+건축물 관람이니, 그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학생들과 가족들은 별도로 지정된 좌석에 앉게 되는데, 역시 가족들은 학생의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동영상에 사진에 프레시가 펑펑 터졌다. 이에 뒤질세라 엄청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고 어설프게 동영상을 찍었는데, 학교에서 유튜브에 졸업식을 실시간 스트리밍 하면서 동영상을 나중에 올려주었다. 사진이나 제대로 찍을걸...
한국의 학위수여식과 차이점이 있다면, 모든 학생이 단상에 올라가 호명을 받고, 악수를 하고 내려온다. 특별하게 누가 수석이다 차석이다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 다만 리서치가 우수한 학생들은 악수하기 전에 '리서치가 훌륭했던 누구'라고 한 번 정도 언급해 준다. 등수를 매기지 않고, 모두에게 단상에 올라갈 수 있는 영광을 주니 꽤나 공정해 보인다. 한두 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졸업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박사들이 보통 학위수여식의 꽃이라 하던데, 여기는 석사와 똑같이 진행된다. 다만 졸업식 가운 색깔이 다르다. 오프닝부터 클로징까지, 2시간 넘게 나오는 합주단의 관혁악단의 클래식 연주까지 마치 공연을 하나 보는 것 같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수줍음이 많아서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지 않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나에 비해 관종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대에 오르는데 표정이 경직되었다. 10년 가까이 연애하면서도 처음 본 요상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표정이 나왔나 물었더니,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이상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경험해볼 만한 특별한 기분, 이건 실제로 느껴봐야 한다고 말한다. 8월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