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씨 부부 이야기

by 스윗스윙


원래 왕씨 부부는 아니었고, 왕씨 커플이었다. 이들은 중국에서 온 유학생인데, 학부를 바로 마치고 온 23-24살의 아주 풋풋한 친구들이다. 나는 원래 일면식이 없었는데, 남편이 학교 행사를 갔다가 만나게 되어 집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영국에 와서 누군가로부터 처음 받은 초대였다. 중국인들은 자신의 집에 손님을 쉽게 초대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런 갑작스런 초대에 의아했지만 그들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이며 방문했다.


이들을 처음 만난게 2017년 가을인데, 이때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중국 쥬링허우 세대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2세대 소황제)와 같았다. 이런 사람들은 또 처음 보는 유형이라 신선했다. 일단 중화사상이 굉장히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 중국이 취하는 정치적 태도, 방향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스위스 사람도 자기네 나라 불만을 말하는데, 자기네 나라에 저렇게 불만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집에 심지어 대백과 두께 정도 되는 시진핑 책을 놓고 보는데 말 다 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며, 중국은 수정된 사회주의 추구한다며 옹호했다. 특이하긴 하지만 난 저 나이 때 뭐 정치고 뭐고 생각 없이 살았으니, 자기주장이 분명하다는 것은 높이 살만했다. 다만, 다만 어떤 체제 건 장단점이 있을 수 있겠는데, 주장들이 너무 편향적이라 좀 충격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받는 사상교육, 정말 장난 아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중국 이름 있는 학교의 중국 학부생들 대부분은 유학을 간다 한다. 도대체 평범한 가정에서도 막대한 유학 비용이 감당이 되는지 궁금했는데, 중산층만 되면 다 감당할 수 있다 한다. 국가에서 이것저것 학부 때 지원도 해주고 어쩐다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허세가 좀 많이 섞였다. 보통 중국 유학생들이 집에서 받는 용돈은 보통 한국인 직장인 대기업 수준 월급이던데 이걸 명품과 같은 사치품 사는데 엄청 쏟아붓는다. 옆에서 보면 돈을 정말 화수분처럼 쓰는데 신기할 지경이다. 진짜 돈이 많은 것일까, 자기네가 돈을 안 벌어봐서 그런 것일까. 어쨌든 이들의 허영심과 애국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생각 없이 말만 들으면 1인당 GDP 8만은 족히 되는 국가의 복지와 사회체계다 (현재, 중국의 1인당 GDP는 약 8800달러이다)


그냥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말았을 텐데, 계속 인연을 이어나가게 된 건 남편 왕씨 때문이다. 사실 위의 이야기 대부분은 자존심 센 와이프가 주장한 이야기다. 남편인 왕씨는 공자의 고향에서 자란 사람답게, 나이에 맞지 않은 고지식함을 가지고 책임감 있는 바른생활의 정석을 보여주는 효자이다. 마치 한국 5060년생 어른들의 어린 시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여타 중국 학생들과 다르게, 부모님이 힘들게 일해서 돈을 부쳐 주시는 것을 알고, 그 누구보다 짠돌이처럼 돈을 아껴 살고 손 벌리지 않으려 한다. 중국에는 아직 못 살고 못 배운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자기가 공부해서 국가를 좀 더 부강하게 만드는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이상적인 꿈을 가진 청년. 미국에서 유학 생활도 잠깐 했어서인지, 와이프에 비해 비교적 균형적인 시각도 가졌다.


무슨 일에서인지 왕씨는 한두 번 왕래 후,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많이 구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계획, 인생의 목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도 우리 앞길을 몰라 답답한데... 우리가 저 나이 때 가졌던 고민을 바탕으로 얼마 안 되는 짧은 경험 정도와 단기 계획 정도 얘기해줬다.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는 게 처음인지라 부담스럽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쭙잖게 삶에 대해 논하는 젊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지만, 왕씨는 부리나케 뛰어나니고 학교생활을 하더니 두 개의 잡 오퍼를 받았는데, 중국의 큰 회사를 포기하고 영국의 스타트업 회사를 선택했다. 우리와 종종 했던 대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나중에 말했는데, 약간 등골이 오싹했다. 그리고 이 둘의 결혼식 피로연 날, 우리를 보며 말했다 '우리에게 너넨 친형제 자매와 같아.'


이들도 영국에서 지낸 지 2년이 돼가는데, 요즘은 대화를 하면 신기할 정도로 사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중국을 비판한다. 누구보다 구글과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중국의 현실 상황을 직시하고,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대해 대응하는 시진핑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한다. 중국 정치 관료의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도 말한다. 명품은 계속 좋아한다. 1년 반 전과 비교하면 정말 다른 모습이다. 중국 뉴스만 보던 친구들이 BBC 뉴스도 보고 팝송도 듣고 외부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점, 외국인들이 중국인을 바라보는 시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애국심은 있지만 중화사상이 옅어졌다. 똥고집이 꺾인 느낌이다. 정말 너무 신기할 정도로 이들의 태도가 변해서, 볼 때마다 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이들의 성장기를 지켜보는 느낌이다. 물론 이들의 변화를 보고 우리도 깨닫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변할 수도 있구나. 경험하고 배우고 알면 변할 수 있구나...


맹자가 말했다. "공자는 노나라의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다고 했고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큰 물로 여겨지기가 어렵고 성인 밑에서 공부한 사람에게는 훌륭한 말로 여겨지기가 어려운 것이다." -진심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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