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대학원까지. 그동안 숱하게 졸업식을 거쳐왔지만, 이번 졸업식에 조금 의미를 부여하자면 석사 학위 수여는 나의 자비로 나의 의지로, 먹고 사는 것을 혼자 처리하며 (물론 남편이 있었지만 부모님의 도움 없이) 타국에서 이루어낸 성취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뜻깊었다. 그래 봐야 그냥 졸업식인데 단상에 올라간다고 얼마나 떨리겠어했는데, 이게 뭐라고 또 엄청 긴장했다. 세상 느껴보지 못한 요상한 긴장과 떨림이다.
회사를 그만둘 때의 기억도 새록새록. 처음 런던 도착해서 살림살이 꾸리느라 매일마다 Argos에서 물건 사 가지고 교통비 아끼겠다고 낑낑대며 짐을 나르던 기억들. 에어컨 없는 도서관에서 논문을 쓰던 기억들. 아침마다 커피 한 잔 텀블러에 내려 가지고, 학교 가기 위해 매일 지나가던 길들. 모든 것이 추억이다. 다시 한번 느낀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남편 졸업식을 하고 3개월 만에 간 런던이지만 친구들도 오랜만에 다시 보고, 학교 주변을 엄마와 함께 거닐며 옛날 살던 집이며 쭉 기억을 되짚어 보니 뭔가 뭉클했다. 말로는 당연히 표현할 수 없다, 글쎄 글로 이 감정을 기록을 하기 위해 이렇게 남기기는 하지만... 이 오묘한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글도 역시 부족하다.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정말 많은 일이, 기억도 못할 정도로, 혹은 오기 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일이 있었다. 심지어 너무 많은 경험을 한 탓에 기억력이 급속히 감퇴되는 느낌이다. Input이 끊임없이 주입되니 오래된 기억들이 잊히나 보다.
단순한 쳇바퀴 같은 삶이, 내가 뭔가 하지 않으면 20-30년 계속될 것 같은 걱정과 불안함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쳇바퀴 같은 삶 대신 지금은 너무 챌린지 한 삶이다. 그 챌린지들이 가끔은 벅찰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까?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하다.
영국 생활 2년여, 편리한 시설과 안락한 보금자리, 정해진 일만 어느 정도 하면 되는 그 삶을 안 그리워했다면 거짓말이고 아주 가끔은 그리워 하지만...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한 번뿐인 삶을 보다 조금 다채롭게 꾸려나가 보겠다는 나의 다짐을 하며 끄적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