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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스윙 May 05. 2020

고정관념일까?

사람이 한곳에서 배우고 관계를 맺으면서 습득되는 문화와 생각은 참 바뀌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나 나름대로는 여행도 많이 다니고, 다양한 사람들과 일도 하고, 교류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문득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가치관이 여전히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하는 일들이 종종 생긴다.


사실 외국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오픈된 것은 성에 대한 것이다. 흔히 말하는 LGBT.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여행 다니면서 아주아주 가끔 보긴 했으나 살면서 이렇게 이들의 문화를 자주 접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일단 대학원에서 첫날부터 나에게 커밍아웃을 한 멕시코 친구부터, (의도치는 않았지만 내가 남편에게 소개해 준 우리 과 남학생 중 1/4이 게이였다, 참고로  남편은 신실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충격이 컸음) 함께 지낸 존 할아버지까지 성소수자였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던 어떤 기존의 성 역할과 고정관념이 많이 깨지게 되었다. 남자라고 해서 반드시 여자친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여자라고 해서 내가 생각하는 여자의 개념이 아닐 수 있으니, 질문을 할 때도 조심스럽다. 특히 입사 원서를 쓰거나 공식 서류를 작성할 때도 성별이 단순히 남/여가 아니라 리스트로 나열 된 것 중 하나를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항목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단순한 성이 아니니, 고정관념을 깰 수밖에 없는 상황에 어떻게 보면 빈번히 노출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성에 대한 개념도 다르니 역할도 당연히 다양하다. 어쨌든 이런 시행착오 끝에(?) 요즘엔 섣불리 어떤 사람의 성을 판단하고 말하지 않는다. 분명 실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게 된다. 


두 번째는 가족관계다. 한국에는 결혼이 혼인신고로 이루어진 법적인 관계지만, 많은 나라에서 파트너 제도가 있다. 오히려 결혼만 있는 한국을 신기하게 봤다. 영국에서도 원래는 동성들의 동거를 허용하기 위해 파트너 제도를 도입했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 이성 간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가족관계속에서 유연한 서류 기능을하는 듯 했다. 파트너 관계는 결혼식을 따로 하지는 않고, 법적 구속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연인 사이의 계약이다. 둘 사이의 법적 구속력은 혼인보다 약하지만 공식 업무에서는 (비자를 받거나 세금을 내거나, 아이 학교를 보내는 등의) 혼인 관계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정도 친분이 형성되고 가족관계를 묻게 되면 그 관계를 분명히 한다. 내 ‘파트너’인지 내 ‘배우자’인지 말이다. 거기에 혼자 살거나 이혼한 1인 가구도 워낙 많고, 의붓아버지 어머니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도 많아서 어느 순간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이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표현으로 묻기 시작했다. 혹시 이 세상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관계가 있을 수 있으니 짐작만으로 대화를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는 죽음에 대한 태도다. 한국에서 장례식장을 몇 번 가보지는 않았지만 모두 눈물바다 통곡의 장이었다. 동양에서는 사람을 ‘하늘로 떠나보낸다’ 의미가 강하다 보니 이 세상에서 다시는 못 보는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울고 슬퍼하고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데. 서구권에서는 이것도 이 사람의 ‘운명’이러니 하는 것 같다. 동양에서도 인생사 팔자소관이라는 말이 있지만, 막상 내 눈앞에 닥치면 하늘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데. 이들은 억누르는 건지 정말 ‘운명’으로 보는 것인지 그 침착함이 신기하다. 한 번은 남편의 회사 동료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달리했는데, 동료들끼리 모여서 그 사람의 집에 가서 흔적을 둘러보고 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나온 것이 장례였다. 부모님도 슬픔을 억누르긴 하지만 상당히 차분해서 놀랐다는. 당시에는 그 가족의 성향 정도로 생각했는데, 최근 코로나 사태를 보며 이것이 이들의 문화일 수도 있겠다 싶다.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지만 이것이 이들의 ‘운명’이려니. 죽고 사는 것을 운명에 맡기는 마인드라면 굳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달까.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걸, 현재의 행복이 더 중요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어떻게든 죽어가는 사람 데려다가 살려서 못 떠나게 해야 한다는 아주 철저한 동양적 마인드가 있어서인지, 실질적이고 능동적인 움직임보다 여전히 정신승리로 일관하는 이들이 여전히 의문스럽지만, 바닥에 무지개 그리고 NHS를 위한다며 목요일 저녁 8시마다 손뼉 치고 자동차 경적 울리는 등의, 굳이 문화적 차이로 이해를 해보자면 이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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