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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스윙 Aug 08. 2020

내가 영국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결혼기념일 즈음 글라스고 대학 근처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에버딘 근처로 발베니 투어를 가려 했는데, 에버딘과 그 근처가 얼마전 다시 락다운 되었다. 계획 전면 수정. 불안불안했는데 역시나 이런 예상은 빗나가질 않는다. 올해는 어디 가서 1박 이상 하는 것은 역시 무리인 것인가 생각 중이다.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혼돈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시국이 이렇다 보니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타지에 나와서 하고 있는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런 생각도 가끔은 든다. 그래서 내가 지난 3년간 영국에 살면서 무엇을 얻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1. 시간


시간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을 나는 나를 위해 많이 못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나를 위해 많이 쓸 수 있다. 근무시간이 짧아지고 지옥철이나 교통체증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거기서 얻은 시간이 크다. 덕분에 독서량이 월등히 증가했고,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할 여유가 충분히 생겼다. 이는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굳이 잠을 줄이거나 시간을 쪼개서 전처럼 몸을 혹사 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내 시간을 누리는 장점을 너무 잘 알아 버려서 이 시간을 더 늘리고 싶은 욕구가 최근에는 좀 더 커졌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를 갖는다는 것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이며, 내 의지대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누구에게나 한정된 시간의 가치를 이곳 사람들도 잘 알기에, 섣불리 야근을 못 시키고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관해서는 노터치인게 불문율이 된 것은 아닐까. “Can I borrow your time?"라는 이 완곡한 표현은 결국 암묵적으로도 상대의 시간을 존중해 준다는 사회적 인식은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2. 영어


더 이상 나는 영어에 돈을 쓰지 않는다. 부수적 목적을 위해 오픽과 토익스피킹 그리고 토익에 돈을 쓰는 일이 없어 좋다. 그 덕에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다. 어디선가 한국인이 영어에만 돈을 안 써도 엄청나게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만큼 영어 사대주의가 있는 한국에서 영어는 자기계발의 상징이자, 성실함의 지표다. 이 지표에서 벗어나는 것은 마치 족쇄가 하나 풀어지는 것과 같은 해방감 정도에 비교될 수 있다. 그만큼 나를 누르고 있는 pressure가 컸다는 것의 반증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영국에서 영어공부를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난 외국인이니까. 한국에서 업무상 주로 영어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초반에는 논문 하나 읽는데도 몇 시간이 걸리고 머리에 쥐가 났는데 그 고비를 넘기니 좀 수월해졌다. 딱히 공부라기 보다 TV나 신문을 보고, 미팅을 하고 지나가다가 동네 사람들이나 직장동료들과 대화를 하는 등의 일상생활 속에서 영어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간다. 이곳에서 영어는 시험이 아니라 실전이다.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자 삶이니, 굳이 ‘영어 공부’라는 압박이 없다. 심지어 날 도와주는 무료(?) 튜터들도 널려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영어에 대한 압박에서 멀어졌다는 것은 이곳에서 얻은 큰 자산이다.


3. 글쓰기


비공개로 되어있는 6년 전 아부다비에서 쓴 블로그 글들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대충 뭔 말은 하는지는 알겠는데, 뭔가 이상하다. 사람들이 많이 보지 않은게 너무나 다행이지 싶다. 공순이인 나에게 글쓰기는 거리가 먼 주제였고, 영국에 와서 과제하며 처음 글을 썼다. 한글로도 자소서 말고 A4 한 장 이상 글을 써 본 적이 없는데, 심지어 영어로 쓰라니 그것도 계속. 울며 겨자 먹기로 교내 첨삭 클리닉 받아가며쓰기는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게 공부겠구나 깨달았다. 5지 선다를 찍는 것은 문제를 잘 푸는 것이지, 진짜 공부는 생각하는 힘과 논리력 그리고 탐구정신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고 논리를 만들어 학문, 인생, 재테크까지 적용시키는 것이 공부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기억에 오래 남기고 생각의 정리와 확장을 만들어내는 틀과 같다.

하버드와 MIT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도움이 된 수업이 글쓰기라 한다. 이유는 글을 못쓰면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내고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Jordan peterson 교수는 말한다 “학생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생각하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 힘은 여러분이 좀 더 효율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사고능력은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승자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영국에서 깨달은 이 배움을 잊지 않고자 블로그를 비롯해 이것저것 글을 써보고는 있다. 일단 현재 마음 같아서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써보자는 것이 목표다.


분명 영국에 있는 시간이 마냥 행복하거나 즐거운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 동안 잃은 것도 있고 또 얻는 것도 있다. 결국 사람인지라 모든 것을 다 선택할 수는 없고, 효용에 따라 움직이는데 지금은 내가 얻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니 영국에 살고 있는 가치가 충분하지 않나 싶다. 언젠가 효용가치가 떨어진다 생각하면 떠나야겠지만 말이다.



Everything depends a good deal on where you to get to.
모든 것은 너 자신이 어디로 가기로 방향을 잡았는지에 달렸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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