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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스윙 Aug 31. 2020

국제노예박물관?!



연휴를 맞아 리버풀을 다시 갔다. 지난번에는 조금 즉흥적으로 가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리버풀을 보고 오기도 했고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제약이 너무 많아서 아쉬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꼼꼼하게 보고 싶은 이유가 컸다. 영국의 박물관은 대부분 무료이다. 다만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박물관이 입장객 제한을 해서, 미리 기본적인 정보를 입력하고 티켓을 예약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노예박물관은 그 이름도 너무 자극적(?)이라 가보고 싶어서 이번에 예약을 했다. 리버풀이 과거 노예 무역을 했던 큰 도시라고는 하지만, 그 흔적을 도시 내에서 찾기는 힘든데 박물관이 이를 기록하고 있으니 도대체 말로만 들었던 노예무역의 실체를 알아보고 싶었던 것도 컸다.


입구에 들어서면 노예 해방을 주장한 위인들의 어록과 그 취지가 벽에 새겨져 있다. 그 취지가 특히 좀 인상적이었는데 첫째, 얼마나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억압을 받았는지 보여주기 위해. 둘째, 리버풀이 이 과정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 보여주기 위해. 셋째, 어떻게 아프리카, 캐리비안, 북아프리카, 남아프리카, 그리고 서유럽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기 위해.라고 한다. 


Freedom is never voluntailty given by the oppressor, it must be demanded by the oppressed
-Martin Luther King 1963-
작품명: Trading disaster

Why Africans?

박물관 벽은 위인들의 노예 해방과 인종차별에 대한 여러 명언으로 새겨져 있다. 분위기가 엄숙한 것이 조용하게 관람을 하게 한다. 

아프리카의 노예 무역은  초창기 해상왕이었던 포르투갈이 시작이었는데 무려 15세기부터이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문명화 되어있다고 생각한 반면, 아프리카의 문화는 미개하고 야만스럽다고 여겼는데 이를 문명화한다는 구실로 아프리카 침략을 정당화하였다. 어떻게 보면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이유와 맥락이 비슷하다.

Why Slavery?

15세기 스페인 판사의 판결문에 따르면, 플랜테이션 하는 농장이 있는 곳, 이를테면 남아메리카 대륙의 토착민들은 허약해서 아프리카 사람이 이런 일을 하기에 최적이라는 기록이 있다. 어쨌든 이러한 오만한 판결문을 근거로 15-16세기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17-18세기에는 영국과 미국이 노예무역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한다. 이 때, 영국에서 노예무역 요충지를 하던 곳이 바로 리버풀이다.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노예들을 당시 서유럽의 식민 국가인 아메리카 대륙에 내려놓고 농장 일을 시키고, 거기서 얻은 수확물은 본국으로 가져가는 식으로 노예를 이용했다 하는데 사슬, 철가면부터 해서 그 증거들이 끔찍하기 이를데 없다. 

개인적으로는 언뜻 팔레트 같아 보이던 피부색 분류 표가 가장 징그러웠다. 피부색을 물감처럼 배열해 놓고 맨 윗줄 정도의 피부색이면 White, 가운뎃줄 정도의 색이면 집안일을 할 수 있는 노예들, 맨 아래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이들은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노예라고 어처구니없게 기준을 세워 분류를 해 놓은 것인데 아직도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의 시작, 그 시건방진 기준은 이때부터, 이런 이상한 기준표의 보급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노예를 옮기기 위해 한 뼘의 공간도 없이 마치 짐짝처럼 사람을 눕혀 5주간을 이동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배의 레이아웃 그림, 노예를 제압하기 위한 젠틀맨의 가이드북 등은 서양인들의 잔혹함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고개를 휘젓게 했다. 일본은 어디서 못된 것만 다 캐치해서 써먹은 것이 분명하다. 



18세기 이후, 즉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기계가 인력을 대신해서인지 영국에서는 더 이상 노예무역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 영국에 남아있던 노예들은 주로 부잣집, 귀족집의 하인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됐는데 아 다르고 어 다르지 솔직히 말하면 쇠사슬만 안 찼지 노예랑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서구사회에서 줄곧 밑바닥층의 일을 도맡아 하며, 어떻게 보면 이들이 선진국이 되는데 이들도 일조했기 때문에 서유럽에서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류애적 책임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잔인함에 혀를 차면서도, 반성하지 않고 그 증거를 없애버리는 일본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인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과 욕심이 끝까지 가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도 볼 수 있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운이 좋게 '20세기'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도 무척이나 감사해야 하는 일임을 깨닫게 했다. 확률상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인구가 많은 인도 중국 아프리카에서 태어날 확률이 50% 이상이니 현재의 나는 물질적 풍족함을 누릴 수 있는  행운아인 것이다. 그런 내가 먹는 커피 한 잔의 값이 아직도  아프리카 농장 어느 일꾼의 하루 일 당 정도와 비슷하다고 한다. 큰 일은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이왕이면 공정무역 Fair trade 상품을 이용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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