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퀴리 Jun 26. 2019

마약, 기도, 씨잼

 앨범 '킁' 리뷰

 출근길에 항상 음악을 듣곤 한다. 요즘 꽂힌 음악이 있으면 그 곡과 곡이 속한 앨범 위주로 듣곤 한다. 그러다  질리거나, 뭔가 다른 장르가 듣고 싶어 지면, 최신 앨범 메뉴를 뒤적이곤 한다.

 약 한 달 전에도 그랬다. 송내역 플랫폼에서 용산 급행을 기다리며, 오늘은 뭘 들어볼까 고민했다. 최신 앨범 메뉴를 휙휙 넘기다가 한 앨범 재킷이 눈에 띄었다. 붉은 톤의 배경과 선명하지 않고 몽환적인 사람의 형상이 있는 앨범 재킷이 이목을 끌었다. 앨범의 주인공은 씨잼. 마약 사건 이후 복귀 앨범이었다. 앨범 제목은 '킁'이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힙합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마음 맞는 친구와 어설픈 가사를 쓰는가 하면, 싸구려 마이크에 녹음도 하고 나름 곡도 몇 개 만들었다. 하나 언제부턴가 힙합 감성이 나와 잘 맞지 않음을 느끼고 멀리 하게 되었다. 대충 2010년대 이후의 허세 가득한 가사들과 공격적인 랩핑이 쏟아지던 시절부터였을까. 물론 변화하는 힙합의 트렌드를 못 따라가는 내 귀의 한계 때문에 멀리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음악으로 경쟁하는 프로그램을 선호하지 않는 나의 성향도 힙합과 멀어지게 되는 것에 한몫했다. 자연스럽게 쇼미더머니를 보지 않았고, 거기서 인기를 얻은 곡들도 잘 알지 못한다.

 어쨌든, 나는 그때부터 청취와 쓰는 행위 모두 소홀하게 되었다. 그래도 몇몇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은 꾸준히 듣곤 했다.

 

 씨잼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반경에는 들지 않았음에 곡을 듣지 않았었다. 이번엔 어떤 이유로 듣게 되었을까.

 이미지와 많이 다르지만 그는 크리스천이다. 절친 래퍼 비와이가 다니는 교회에 등록되어 있으며 실제 출석했고, 찬양팀에서도 활동을 했었다. 봉사할 때는 지각을 많이 했다고 들어, 그렇게 성실하게 찬양팀 활동을 하진 않았었나 보다. 내가 왜 이런 정보를 알고 있을까. 그렇다. 나는 그와 같은 교회를 다닌다. 물론 비와이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같은 교회에 다니는 동생이 사회적 큰 파장이 있었던 사건 후, 발매하는 복귀 앨범에 어떤 내용이 담겼을지 궁금했고, 몽환적인 앨범 재킷도 나의 흥미를 끌었다.

 지하철 출근길에 앨범을 무심하게 감상해보았다. 전체적으로 귀에 꽂히는 쏘아붙이거나 강렬한 랩핑을 선보이진 않는다. 취한 듯 읊조리거나 이모랩핑 또는 보컬링으로 트랙들을 채웠다. 앨범 프로듀서가 누구인지는 안 찾아봤으나, 앨범 컨셉의 통일성은 매우 잘 유지했다고 판단된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역시 가사다.

 초창기 친구들과 설립한 독립 레이블의 리더로 실력을 다지고, 쇼미더머니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큰 인기를 얻은 후, 마약 폭행 등의 구설수에 오른 젊은 청년. 조금의 잠적 생활 후 발표한 복귀 앨범. 그 안에 녹아든 정서는 '계속 이렇게 방탕하고 소란스러운 생활을 이어갈 거야!' '난 강한 래퍼야!'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완전하게 참회하고 새 사람이 되었다고 선언하지도 않는다.

 모든 트랙에 걸쳐 술, 여자, 섹스, 거의 끊었다고 하는 약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한 편으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예수님을 그려보고,  회개해야 한다는 강박도 자리 잡고 있다. 불완전한 현재의 자아를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씨잼의 이런 솔직한 가사 속에서 교회를 다니는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일과 온갖 즐거운 일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놀고 싶은 욕구. 그 안에 끼어 있는 우리. 술잔을 기울이며, 꼬인 말투로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는 입. 신앙과 세속적 욕구 안에서 갈등하며 살아가는 시간들. (그렇지 않은 청년들도 물론 당연히 많다.)


 좋아하는 노래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곡의 멜로디나 분위기가 될 수도 있고, 가수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난 정서의 전달을 중요시한다. 개인 정서의 공감을 통해 그 곡들과 소통할 수 있고 삶을 돌아볼 수 도 있다. 나의 많은 공감을 얻고 생각하게 만든 '킁'이라는 앨범에 나는 평점 만점을 주고 싶다. 국내 앨범에 스스로 명반이라 칭한 앨범은 실로 오랜만이다.

 존나 좋다.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 시험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