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특집] 농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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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귀는 퇴화하여 비늘에 덮여있다. 차가운 물 속에서 천 년을 살고 이무기가 되어 용으로 날아오른다 해도 소리는 영영 듣지 못한다. 뱀과 용의 귀를 알아본 사람들은 용(龍)과 귀(耳)를 합쳐 농(聾)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냈다. ‘잘 못 알아듣다.’ 혹은 ‘안 들리다’의 뜻을 지닌 글자였다. 우리는 우리 중에서도 잘 못 알아듣는 사람, 안 들리는 사람들에게 농이라는 글자를 붙여 ‘농인’이라고 불렀다. 소리 자극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몸으로 태어났으니, 용의 귀를 가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농사(聾巳)나 농룡(聾龍)은 없다. 농인(聾人)만이 존재한다. 모두 타고나기를 듣지 못하는 귀를 가졌는데, 오직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에서만 듣지 못하는 신체가 특징이 되어 정의로 남는다.

나는 네가 아니라서 널 모르고 너와 나는 당연히 다르다. 그래서 서로를 분석하고 정의 내리려 애쓰며 살아간다. 그러나 진정한 이해로의 출발점은, 모두 그저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 부질없었다.
나는 시를 짓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설교를 하기 위해서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나든 누구든 그것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는 않았다.¹



어떤 사람들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정의되고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농인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청각이라는 경험이 없었기에 듣지 못한다는 개념을 공감하기 어렵다. 그런 그들에게 청력의 상실이라는 관점을 투영하는 건 ‘청인(聽人)’들이다. 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에게나 농인은 신체적 기능이 박탈당한 채로, 장애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다. 농인은 청각장애인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지만, 선천적으로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변별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약간이라도 들리긴 하지만 불편함이 있거나 후천적으로 청력에 이상이 생긴 청각장애인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청인들은 농인과 청각장애인의 차이점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청력에 이상이 있는 장애인으로 일반화하여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농인에 대한 겉핥기식 이해가 만연하고, 타고난 신체를 너무도 쉽게 부정하는 사회 속에서 농인들은 건강한 정체성을 갖기 어려워진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보려고 한다. 정신없이 앞으로 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당신을 잡아 세우고 우리 다시 생각해봅시다, 상상력을 발휘합시다, 하고 말을 건네고자 한다. 어렵지 않다. 농인들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닌, ‘보는 사람’들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미국의 농인 작가 벤 바한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명칭으로서 보는 사람, 혹은 볼 수 있는 사람(seeing person)을 제안했다. 농인들이 신체적으로 ‘할 수 있는’ 기능에 집중한 것이다. 이 새로운 정의는 농인 또한 청인 못지않게 유능하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함이 아니다. 청인 중심의 관점에서 탈피하고 ‘듣지 못하는’ 따위의 수식을 떼어내려는 노력이다. 그의 논리대로 농인을 재정의하게 되면 그들이 학습하고 내재화하는 자신의 본질과 능력, 생활방식 등이 명쾌하게 설명된다. 비(非)농인에게도 그들의 존재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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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인등. 방문자가 벨을 누르면 소리 대신 빛이 들어온다. ⓒ머니투데이 / 화재용 단독경보형탐지기 ⓒ안전저널



보는 사람들의 언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율동같은 손동작과 함께 노래 부르던 때가 떠오른다. 손으로 말을 하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에 굉장한 흥미로움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이 애틋한 감상에 초를 치자면, 우리가 선생님을 따라 배웠던 그 손동작들은 수어가 아니다. 청인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한국어 어순에 수어 단어를 끼워 맞춘 ‘손짓 한국어’다.

그렇다면 농인들이 사용하는 수어란 대체 무엇인가? 한국어가 아니란 말인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농인들의 한국수어는 청인들이 사용하는 한국어와 전혀 다른 언어다. 한국어와 다른 문법 체계를 지녔으며, 고유의 음운론, 행태론, 통사론 등이 존재하고, 모국어와 마찬가지로 자연적으로 습득된다. 즉 수어는 입과 귀로 하는 언어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농인들의 능력을 극대화시킨 ‘고유 언어’인 것이다.²

수어는 손 모양뿐만 아니라 손의 방향과 위치, 표정과 입술의 모양을 모두 사용한다. 손끝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 공간을 활용하며 단어를 표현하기도 하고, 손을 머리 앞뒤로 움직여 시제를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표정은 화자의 말투나 억양을 표현할 수 있는 요소다. 수어와 함께 눈썹을 위로 올리면 의문문, 입을 ‘오’로 동그랗게 만들면 놀라움을 표할 수 있다. 이처럼 비수지기호³를 함께 하면 의사 전달이 정확해지면서 더욱 풍부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수어 사용자들 앞에는 큰 걸림돌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수어사전에 등록된 수어 단어가 약 2만 3000개뿐이라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있는 단어만 약 50만 개에 이른다는 점과 비교하면 이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숫자다. 이렇게 표준이 되는 단어가 부족하면 정보전달 과정에서 소외되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세대별로 사용하는 수어가 점점 달라지면서 세대 차이가 발생하고 있으며, 지역마다 다른 방언이 혼재해 소통의 어려움은 더해져만 가고 있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신조어와 외래어 등 최신 단어들을 쉽게 표현할 수 없어 각기 다른 손짓으로 의사소통하는 상황에 봉착해 있다.

▲ ⓒ안동대신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면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 ‘마스크’가 씌워졌다. 상대의 표정과 입모양을 읽기 어려워지면서 농인과 청각장애인들은 소통에 지장을 받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립뷰 마스크’가 개발됐다. 화자의 표정과 입모양을 볼 수 있게끔 입 부분을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대체했다. 방청객이나 연예인이 착용한 모습이 자주 보여 방송을 위한 마스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마스크는 사실 농인과 청각장애인, 수어 사용자를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다. 막혀버린 소통의 장에 조그만 창구 하나를 튼 시도였다.


수어 사용자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복잡한 상황을 감당하고 있을 때, 주류 사회는 수어를 마냥 아름다운 언어, 특이한 언어로만 보고 있다. 이런 관점을 바꿔줄 정책도 교육도 턱없이 부족하다. 당연한 수순으로 언어 소수자로서의 농인들은 점점 고립되고 대상화됐다. 그들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이라는 국적을 지녀도, 한국의 청인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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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일보 / ⓒ에이블뉴스

청인 중심의 한국 사회와 함께하려는 농인들의 노력도 있었다. 2016년 2월에는 한국수화언어법을 제정해, 한국수어가 농인의 고유 언어로 인정받았다. 국어로서 정식으로 채택되고자 운동에 나선 2000년대 전후부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손으로 대화한다는 수화의 개념이 수어로 넘어가며 언어적 요소가 더 강조되었다. 비로소 ‘언어’로서 가시화된 것이다. 이는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수어를 기반으로 형성된 농인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한 걸음을 뗀 것과 마찬가지였다. 상상해보라. 생사를 넘나드는 위급한 상황에서 견고한 언어의 장벽과 맞닥뜨린다면, 그 누가 우리를 지켜줄 수 있겠는가. 언어는 인권과 직결되어 있다.



동그랗고 작은 수어방송

6.jpg ▲ 코로나19 브리핑 ⓒ한겨레

2020년 2월, 코로나19 브리핑을 하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옆에 수어통역사 한 명이 등장했다. 시청자들은 재난 상황에 대한 정부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에서 자발적으로 배치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 인권 단체들이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4주년을 맞이하여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 브리핑을 수어로도 제공할 것을 요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포함 청각장애인들은 그제서야 코로나19의 현황을 제대로 전달받을 수 있었다. 한국어 자막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제2외국어와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온전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정부관계자 바로 옆에서 직접 수어통역을 병행하는 브리핑이 화제가 되어 K-방역의 상징으로 남았지만, 그 뒤에는 농인과 청각장애인들의 불편한 권리 운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상 ‘모든 생활영역에서 한국수어를 통하여 삶을 영위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는 수화언어법의 효력은 미미했다.⁴

7.jpg ▲ ⓒ미디어스

2020년 9월, KBS <뉴스9>가 수어통역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상파 방송 메인뉴스 중 최초였다. 이후 MBC, SBS가 합세하여 지상파 3사 전부 자사 메인뉴스에 수어 방송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수화언어법이 제정된 지 4년이 흘러서야 제공을 한 셈이다. 그뿐만 아니다. 메인뉴스의 수어통역을 지원받기 위해 공식적인 운동을 벌이는 장애인 단체들이 이미 2018년도부터 존재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를 받아들여 2020년 각 방송사에 권고를 내린 후에야 수어통역 지원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비로소 뉴스는 전 국민이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지상파 뉴스 방송에서의 수어통역은 농인과 청각장애인들의 알 권리 보장, 정보전달의 의무, 수신료 가치 수행의 의미를 지닌다. 그들 또한 사회의 일원이므로 미디어 격차는 최대한으로 줄여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TV 속 수어방송은 여전히 작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하단에 조그맣게 배치된 동그란 화면 속에서 수어통역사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방송사에서는 수어방송의 고정된 화면 구성에 따른 제약을 받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준비된 자막이나 영상의 일부가 가려질 것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농인과 같은 언어적 소수를 배제한 상태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가까스로 제공된 그 작은 공간에서 수어통역사들은 뉴스 진행자와 기자들이 쏟아내는 단어들, 말의 빠르기, 변화무쌍한 어조 전부를 감당해야 한다. 농인과 청각장애인들은 통역사들이 해낼 수 있는 최대한의 통역을 전달받은 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앵커의 얼굴 크기만큼 줄여놓은 화면 속 통역사의 작은 손과 얼굴 표정을 어떻게든 읽어내야만 한다. 또한 저마다의 수어 습득력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어 자막과 함께 프로그램을 시청하곤 하는데, 순식간에 지나가는 자막들과 통역사의 몸짓을 읽지 못했다면 방금 기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된다. 정보전달의 장에서 농인은 한순간에 소외되는 것이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리고 여기,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주먹이 부르트도록 두드리고 있는 농인들이 있다. 그들 앞의 열리지 않는 문은 언제쯤 사라질 것인가.

8.jpg ▲ 지난 2월 3일 한국수어의 날 KBS1 9시 뉴스. 앵커가 수어로 클로징했으며, 방송 비율이 2분할이었다. ⓒ디스패치



저마다의 농


농인들은 시각적 기능을 발전시키고 수어를 제1의 언어로 내재화한다. 평생에 걸쳐서 독보적인 농인 정체성을 형성한다. 농인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문화는 그들만의 언어에 기반하여 고유성을 띤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끼리 유대가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러한 ‘농문화’는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농인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농문화를 영위한다고 하더라도 그들 전부를 하나의 농인으로 묶어서 일반화하면 안 된다. 개개인마다 다른 관심사와 재능이 있고, ‘농’은 그저 공통된 특징일 뿐 그들의 전부가 아니다.


농인들의 가족을 살펴보자. 보통 청인들은 농인들끼리 모여서 살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청인과 농인 모두를 구성원으로 둔 가족이 존재한다. 청인 자녀를 둔 농인 부부들이 그 예시다. 그들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소통하며 산다. 이렇게 농인 부모 아래에서 자란 청인 자녀를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라고 한다. 코다가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언어는 수어다. 소리가 들려 구어⁵를 비교적 쉽게 구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인들의 언어를 모어처럼 사용하며, 자연스럽게 농문화 속에서 자라난다.

▲ ⓒ코다하트

매해 4월 마지막 주 일요일은 MFDD(Mother-Father Deaf Day, 엄마 아빠 농인의 날)이다. 세계 각지의 코다들 스스로가 농인 부부의 자녀인 것을 축복하고 부모가 물려준 수어와 농문화를 기념한다. 그것들을 일종의 ‘유산’으로서 다루는 것이다. 이는 농인들의 문화가 청인에게 전달되어 새로운 형태의 농문화를 만들어 낸 사례이며, 또 다른 모습의 ‘농’으로 남는다. 농은 오직 농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녀인 코다들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중앙일보

영화감독이자 작가 이길보라⁶는 코다 정체성을 가진 청인이다. 그 역시 농인 부모 아래서 수어를 모어로 배우고 농⦁청인의 문화를 복합적으로 영위하며 자랐다. 그가 살면서 가장 많이 접한 것은, 타인의 걱정 어린 탄식이었다. 그들은 철저한 외부자의 관점으로 농인 부모를 둔 자녀의 고충을 묻는다거나, ‘얼마나 힘들었을까.’하고 동정 섞인 말을 뱉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길보라는 자신을 농인과 청인 사이를 잇는 매개자라고 소개한다. 수어와 음성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농사회와 청인사회 사이를 넘나들며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청인들의 언어가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사회에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만의 이야기로 가시화한다.

한편, 이중 소수자로서의 농인도 존재한다. 바로 성소수자이자 농인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혐오로 가득한 손짓으로 소개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한국수어에서는 동성애자를 표현할 때 손으로 특정 성행위를 묘사한다. 레즈비언을 지칭할 땐 ‘여성과 삽입 섹스를 하는 여성’, ‘여성과 성기를 맞붙이고 비비는 여성’ 등을 표현하며, 게이를 지칭할 땐 ‘남성과 성기를 맞붙이고 비비는 남성’, ‘남성과 몸을 비비는 남성’ 등으로 표현한다. 이는 동성애자를 성행위나 성적인 의미만으로 축소시켜 비하하는 엄연한 혐오 수어다. 현재 정립되는 중인 한국수어에는, 당장 자신의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밝힐 수 있는 언어조차 없다. 성소수자 농인들은 차별과 혐오 없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굉장한 상실감과 분노를 느꼈다. 그들에게 주어진 언어와 문화 자체가 혐오의 역사였으며, 그들의 존재를 가리고 지워내는 데 일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어두운 상황 속, 횃불을 들고 등장한 사람들이 있다.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다. 우지양 상임활동가를 필두로 하여 성소수자 농인 당사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로, 한국수어에 담긴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지워내기 위한 수어를 만들고 있다. 한국농인LGBT는 농 정체성과 성소수자 정체성의 교차점을 기반으로 농인 성소수자 당사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단체로서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11.png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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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농인LGBT

한국농인LGBT는 약 37개의 대안적 한국수어 단어를 개발했다. 성소수자 농인 당사자로서 맞닥뜨려야 했던 불편한 지점들을 최소화하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담아내기 위해 만들어 낸 표현들이다. 가장 기본적인 ‘성소수자’를 시작으로 ‘섹슈얼리티’, ‘퀴어’, ‘커밍아웃’ 등 성소수자들이 사용하고, 그들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을 하나씩 바꾸어 나가는 중이다.⁷


또, 농인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배제한 한국수어를 접할 수 있도록 여러 세미나를 진행하고, 숨어있는 혐오 수어가 검토하기 위한 농인성소수자인권대회(가제)를 2022년 올해 개최할 예정이다. 그들이 선보이는 대안 표현들 또한 고정불변의 언어는 아니지만, 혐오를 벗은 손짓들이 농사회에서 좀 더 알려지고 사용되는 미래를 그려본다.



I SEE YOU


농인들은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기분이 어떤지, 혹시 자신의 말이 너무 빠른 것은 아닌지 기민하게 살핀다. 그리고 섬세하게 분위기를 읽어나가며 이야기를 지속한다. 여기까지 문장을 읽고 난 후, 혹시 드는 생각 없는가? 필자는 발견하고야 말았다. 문장 맨 앞의 ‘농인’을 ‘사람’으로 바꾸어도 아무 이상 없다는 것을 말이다.

모두 사람이기에 본질은 같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식된 그 순간부터 비로소 탄생하며, 주어진 평생을 오해하고 오해되는 것으로 소모한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마땅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스스로 어떠한 의구심도 가질 필요 없이 살아갈 자격이 있다.


오해로 점철된 우리가 다시 태어나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서로로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부터 시작해보겠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너에게 말한다. ‘나 너 다시 봤어!’

14.jpg ▲ ⓒgettyimages


원고 작성에 도움주신 문화인류학과 이수정 교수님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갈홍식, 「“수어는 국어와 동등한 농인의 공용어” 수화언어법 드디어 국회 통과」, 『비마이너』, 2015.12.31

권혁재, 「당신을 이어 말하는 이길보라 감독」, 『중앙일보』, 2021.06.30

김혜인, 「KBS ‘뉴스9’, 내달 3일부터 수어통역 실시」, 『미디어스』, 2020.08.10.

김효정, 「코로나19: '수어통역사'가 알려주는 코로나19 브리핑 뒷이야기」, 『BBC NEWS』, 2020.09.18

박윤경, 「“나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벽장 열고 세상에 나온 농인 성소수자들」, 『한겨레』, 2020.09.21

박중재, 「함평군 청각장애인 가구에 초인등 설치」, 『머니투데이』, 2012.05.22

박지원, 「"작은 수어통역 화면에 눈이 아파요" 농인 방청권 보장 호소」, 『소셜포커스』, 2021.02.05

유정인, 「농인성소수자들, 혐오 지우고 자긍심 담은 새 수어를 짓다」, 『경향신문』, 2021.04.24

이길보라, 「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집중할 때, 나는 불편하다」, 『경향신문』, 2021.12.21

이병준, 「청각 장애인들 "신종코로나 정부 브리핑, 왜 수화 통역은 안 해주나요"」, 『중앙일보』, 2020.02.04

이슬기, 「“수화는 언어” 6개월째 잠자는 한국수어법」, 『에이블뉴스』, 2014.04.30

이용규, 「마스크, 하지 ‘않’음과 하지 ‘못’함의 차이」, 『안동대신문』, 2020.08.28

정태영, 「청각장애인, 화재 경보를 눈으로 확인하고 대피한다」, 『안전저널』, 2021.11.23

정희원, 「수어통역사들이 찌푸린 얼굴로 통역하는 이유」, 『한겨레 칼럼 왜냐면』, 2020.03.11

한국수어LGBT 홈페이지, 「한국농인LGBT(준) 소개」

Bahan, B. 「Seeing person」, 『American deaf culture: An anthology』, 1989




¹ 헤르만 헤세, 『데미안』 (1919)

² 수어는 국제 공통이 아니며 국제수어는 따로 존재한다. 국가마다 수어가 상이하므로 ‘한국수어’라고 명시했다.

³ 얼굴 표정, 눈, 눈썹, 코, 입, 입술, 볼, 턱, 시선, 몸의 방향, 공간 설정 및 활용 등

⁴ 한국수화언어법 제2조 3항 참고

⁵ 입에서 나오는 말. 입으로 하는 언어를 뜻한다.

⁶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 <당신을 이어 말한다> 등 저술,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등 연출

⁷ 한국농인LGBT 홈페이지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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