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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려진 칼날 같은 시대
바야흐로 혐오의 날들. 사람들은 어느샌가 ‘나’와 ‘타자’를 나눠 배타성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하루건너 표출되는 혐오에 노출된 현대인들은 ‘혐오’를 더는 ‘혐오스럽게’ 느끼지 않는 듯하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무분별한 폭력은 증오에 가깝다. 이 글은 증오를 덧입고 혐오를 공고히 하는 칼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빗나간 교육
지난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교육감 후보들 사이에서는 ‘디지털 교육’이 유행인 듯했다. 소프트웨어나 인공지능 교육이 공약의 한 자리씩을 차지한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로만 찬란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섣부른 판단 탓일 테다. 4차 산업혁명 이후 ‘코딩 만능주의’가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온 것은 정보사회만이 아니다. 주요 ICT¹ 기반 기업의 수뇌부들이 앞장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인문학에 대한 인식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의 학문적 지위 위축과 더불어 인간 개인의 성찰·사유 능력 약화를 말하는데, 주로 학문을 생산성의 척도로 판단하는 정책에서 주로 비롯되었다. 이러한 문제 상황에 따라, 교육부가 2014년 2월 제시한 새로운 인재상이 바로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다.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기술에 대한 기초 소양을 갖추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² 교육부는 인문적 소양을 ‘세상을 보는 안목과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과학적 소양을 ‘과학의 지식 및 탐구 과정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과학적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인문적 소양은 ‘세상의 이치와 문제를 정확히 바라보고 대처할 수 있는 기술’과, ‘사람과의 관계 및 소통에 대한 고찰을 가능케 하는 식견’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인문학은 인간다움을 실현하기 위한 기초적인 학문이며, 학생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문사철’³은 교육과정 속에 존재함에도 제대로 된 학습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수업의 주목적은 대입이고,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기 어려운 단편적인 지식 전달의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인문학 수업 방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로는 강원도 춘천에서 5학기 동안 이루어진 ‘인문학교’ 프로그램이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지속 가능한 행복을 가치로 두고, 주입식이 아닌 교육·상담·치유를 유기적으로 통합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⁴ ‘인문학교’ 종료 이후 실시한 정량적 평가와 자체 설문 결과를 종합하면 ‘인문학교’는 청소년의 인성교육과 정서 완화, 학습 동기 유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인문학 교육의 목적과 방향이 일치하자 교육 대상인 청소년의 관계성 및 자아존중감 향상에 도움이 된 것이다.⁵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 해설>에서 과학기술 창조력과 과학적 소양을 함께 제시했다. 학생들이 단순히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란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 버블⁶과 필터 버블⁷이 극심한 현시대에서는 반성적·비판적인 참여 태도를 기르기 힘들 뿐만 아니라, 되레 혐오와 폭력의 당사자가 되기 쉽다. 소속된 집단의 관념이나 알고리즘에 따라 주입된 정보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상적인 미디어 정보 리터러시 교육은 ‘기술-비판-창조-도덕’이라는 네 영역을 균형적으로 가르쳐야 하나,⁸ 현재의 교육과정은 학생들에게 기술과 창조의 영역만을 가르치는 데 급급하다. 공교육을 통해 디지털 시민성⁹을 함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이 부를 창출하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하며 ‘과학적 소양’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났다.
‘아는 것’이 힘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할 수 있게 하는 인문학 교육은 물론, 내실 있는 인권 교육이 부재한 교실은 폭력이 난무하기 쉬운 환경이다. 현행 교육과정상 3.3시간에 불과한 노동교육 정규수업 시수¹⁰와 피상적인 교육 내용으로는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다. 현재 노동인권 교육은 교육청의 조례 제정을 통해 실시된다. 이는 국가가 주도하는 체계적인 노동인권 교육의 부재 때문이다. 전체 17개 시도교육청 중 13개가 노동인권 교육 관련 조례를 제정했으나, 표준화된 교재가 없고 교육과정에서 노동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아 일회적 교육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고용노동연수원 송태수 교수는 “(중·고교 사회·경제 관련 교과서에서) 성취 기준상 노동을 언급한 내용을 보면 인권 차원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강조하는 수준으로 정작 시장경제 체제에서 노동자가 얼마나 중요한 계층인지와 노동조합의 역할이 뭔지 등은 빠져 있다”고 말했다. 현행 중·고교 사회·경제 관련 교과서가 사회를 이루는 노동자 역할의 중요성과 그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다루고 있지 않은 것이다. 노동조합(이하 노조)과 파업의 필요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면 노조를 부정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졸업 후, 혹은 재학 중 노동자일지 모를 학생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의 구제 수단을 모를뿐더러, 권리 침해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미비한 성교육도 문제다. 2015년 교육부가 배포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¹¹은 왜곡된 성인식을 조장한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후 교육부가 표준안 개정을 위해 세 차례 발주한 연구 용역은 모두 유찰되어 학교 성교육 표준안 개편 작업은 2019년 2월 이후 잠정 중단되었다. 현재는 관련 내용이 삭제되고 성폭력 예방 정도가 보충되었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성교육 표준안이 보급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이와 같은 국가 차원의 ‘적절한’ 성교육 표준안 부재로 인해 성교육 시에는 각 시도교육청에서 만든 자료를 사용한다. 그렇기에 교수자에 따라 성교육의 방법·내용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또 전국 초·중·고등학교는 연 15시간씩 성교육을 시행해야 하지만, 타 과목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실정 탓에 ‘성교육’만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2021년 제17차 청소년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최근 12개월 동안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은 적 있다’고 답한 청소년은 67.8%로, 2018년 이후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공교육이 인권과 성평등까지 포괄적·지속적으로 다룰 수 있는 양질의 성교육을 이끌어야 함이 절실해 보인다.
폭력은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다
체벌의 필요성을 토로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체벌 금지와 유명무실한 상·벌점 제도로 인해 교권이 하락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체벌이 가능해야만 교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은 ‘교육’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교단에 선 이들은 학생을 ‘교정’해야만 할까?
체벌은 교육으로 인정할 수 없는 단순한 외적 강제에 불과하다.¹² 물리적인 폭력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통제를 가능케 했던 구조적 폭력은 여전히 학생들을 옥죄고 있다. 학교는 더 이상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는다. 대신 공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학생다움’이라는 획일적인 특성을 강제한다. 학생들에게 순종과 공손을 강요하고 ‘학생답지 않은 학생’을 바꿔야 한다는 이상한 ‘교정 정신’에 휩싸인 듯한 행태다. 이는 학생 개개인이 지향하는 다양성의 추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학생을 민주시민으로 성장시켜야 할 학교가 각자의 성질을 구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억압과 다양성 교육의 부재 이유는 뭇 교육감 후보들이 내뱉었던 혐오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이들은 “페미니즘·성평등 교육은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고 전통의 미덕을 해친다”, “동성애를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며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공약을 내걸거나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태도를 스스럼없이 보였다. 하지만 이는 교실 안에서 일상적인 문화와 언어로 자리 잡은 혐오를 무시하는 것이다. 여학생들은 남성중심적인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얼굴 평가’나 직접적·공개적인 멸시, 위협으로 차별받고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 역시 혐오·폭력 문제로 고통받는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 발표한 상담·지원 사례 2,055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정신건강에 대한 상담이 27.2%(559건), 자해·자살 위기에 놓인 경우는 12.4%(255건)였다.¹³
그럼에도 문화 다양성 교육은 몇몇 시·도에서 신청 학급에 한해 이루어진다. 교실에서의 교육이 아닌 미디어를 통한 다양성 학습은 학생들에게 서로의 특성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했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 배제에서 기인한 혐오 현상이 만연한 학교는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렇기에 다양성은 숨겨야 하는 속성으로만 남는다. 공교육 안에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지 못한 이들은 세계의 가장자리를 떠돌거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외부의 지식을 동원해야 한다.
교육은 한 시대의 관념을 다음 시대의 구성원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미래 지향적인 성질을 가진다. 따라서 교육자들은 ‘통제’가 아닌 ‘교육’에 대해 고민하며 더 나은 이상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시민으로서 응당 지녀야 할, 차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태도를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 ‘참된’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난 곳 맞물어 살아가 보아요
‘인문학적 소양’은 지금까지도 의미가 모호한 용어 중 하나다. 다만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존재적 고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모호성은 때때로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의 삶은 도식처럼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학생들이 세상과 인간의 가치를 함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업능력 신장이나 경쟁력만을 주요한 목적으로 삼게 될 경우, 자라나는 세대는 점차 사유와 논의의 의미를 잊고 오로지 무한경쟁의 논리를 따르게 될지도 모른다.
교육이란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기르는 것’이다. 인격 성장은 교육의 요소 중 하나로, 인문학은 이 과정에서 결코 도외시될 수 없다. 또한 ‘인간이 전인성을 지니도록 도움과 동시에 이어져 온 지식 및 관습과 도덕적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교육의 존재 이유는 이렇게나 다양하다. 청소년이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고 앞으로의 미래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타인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자유로이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청소년이 자율성과 인격성을 지닌 ‘인간’으로, 민주적인 ‘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어야 우리의 공동체 또한 성장할 수 있다.
¹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² 교육부,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 해설」, 2017.02.
³ 인문학으로 분류되는 대표 학문으로, 문학·역사·철학을 말한다.
⁴ 인문학교 프로그램은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인문학적 가치의 전달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것의 의미, 행복하게 사는 것의 의미를 주체적으로 탐색하도록 돕는 데 주안점을 둔다.
⁵ 김호연·유강하, 「인문학 교육의 역할과 효용성에 관한 연구 - K중학교 “인문학교” 운영 사례를 중심으로 -」, 『중등교육연구』, 60(1), 2012.
⁶ 뉴스, 소셜 미디어 등이 하나의 이념 혹은 문화적 관점만을 대표하고 다른 관점을 배제하는 환경.
⁷ 대형 인터넷 정보기술(IT) 업체가 개인 성향에 맞춘 정보만을 제공해 비슷한 성향 이용자를 한 버블 안에 가두는 현상. 같은 단어를 검색해도 이용자에 따라 다른 정보를 접하게 된다.
⁸ 미디어 정보 리터러시 교육은 미디어에 대한 개념적 지식의 습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삶과 맥락 속에서 질문과 성찰을 통해 미디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⁹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시민들이 더 책임감 있고 역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역량.
¹⁰ 박재홍, 「1만 시간 중 단 3.3시간… 막노동·청소부만 보이는 부실 노동교육」, 『서울신문』, 2019.04.25.
¹¹ 전국 초·중·고등학교는 교육부가 보급한 성교육 표준안에 근거해 성교육을 시행한다.
¹² 칸트의 인간관과 교육법을 따르면, 체벌은 학생의 수동성을 극대화하는 외적 강제다.
¹³ 강재구, 「집도 학교도…발붙일 곳 없는 ‘10대 성소수자’」, 『한겨레』, 2020.07.02.
참고문헌
강재구, 「집도 학교도…발붙일 곳 없는 ‘10대 성소수자’」, 『한겨레』, 2020.07.02.
국가인권위원회, 「제18차 한국인권교육포럼 : 혐오표현 근절, 학교에서 인권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인권교육포럼』 2019.10.12.
김윤덕 외, 「엄마들 “학교 성교육 부실… 돈 내더라도 학원에서 배워”」, 『조선일보』, 2022.05.18.
김호연·유강하 「인문학 교육의 역할과 효용성에 관한 연구 - K중학교 “인문학교” 운영 사례를 중심으로 -」, 『중등교육연구』, 60(1), 2012.
남부호,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기본방향: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은 창의융합형 인재」, 『교육정책포럼』, 2014.
박재홍, 「1만 시간 중 단 3.3시간… 막노동·청소부만 보이는 부실 노동교육」, 『서울신문』, 2019.04.25.
박재홍·홍인기 「한국은 기업가 정신만 강조…노조 중추적 역할 안가르쳐」, 『서울신문』, 2019.04.25.
이경자, 「융합시대의 SW교육」, 『기호일보』, 2022.05.30.
이세아, 「“페미니즘·동성애·학생인권조례 OUT” 서울시 교육감 후보들」, 『여성신문』, 2022.05.27.
이근아·명희진, 「“성관계는 재밌다”는 책 한권이 펼친 대한민국 성교육의 현실 [아무이슈]」, 『서울신문』, 2020.09.06.
이현숙 외, 「남녀 고등학생들의 성교육, 성지식, 성태도, 성 허용성」, 『교육문화연구』 제21-3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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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청, 「제17차(2021) 청소년건강행태조사 통계집」, 2022.04.29.
추교준, 「체벌 문제에 대한 교육철학적 고찰 -칸트의 『교육학 강의』를 중심으로-」, 『칸트연구』, 37,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