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트리거 주의. 이 글에는 동물 사육 방법에 관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열매와 풀을 먹고 살았던 인간은 곡식을 재배하는 법을 깨우쳤고 동물을 사육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무기가 날카로울수록, 더욱 위험해질수록, 인간은 강해졌지만 다른 생명은 힘을 잃었다.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 생명은 제 수명대로 살지 못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삶을 제시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겼고, 지구의 건강을 바랐다. 수명대로 살아가는 생명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은 어느새 지구 곳곳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멋진 지구 용사들에게 응답을 보내본다. GO VEGAN-!
안녕하세요 비건입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비건은 개념 자체가 생소한 생활 양식¹이었다. 비건이 자리 잡은 지 오래 되진 않았지만, 기후 위기와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며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비건 세상 만들기–모두를 위한 비거니즘 안내서』의 저자 토바이어스 리나르트는 “고통받는 동물의 수를 줄이고,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비건 운동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생명에 비해 경시되는 현재의 흐름에 브레이크가 되어주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동물은 건강과 행복을 보장받지 못하며 그들의 고통은 당연하게 치부된다. 우리가 소비하는 동물성 식품은 동물권이 훼손된 상태로 식탁에 올라온다. 더불어 판매를 위한 과잉 생산과 사육 과정에서 나온 분비물, 온실가스 등은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닭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털갈이 이후 휴식기를 거쳐 다시 알을 낳는 습성이 있다. 어둠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닭의 달걀 생산율은 50~60%까지 올라간다. 효율적인 달걀 생산을 위해 닭을 어두운 케이지에 가둔 후 물도 주지 않는다. 돼지 또한 꼬리와 이빨이 제거된 상태로 좁은 우리 안에서 사육된다. 돼지는 자유도, 몸의 일부도 잃어버린 채 식탁으로 배달되는 것이다. 환경 파괴 문제도 심각하다. 소고기 1㎏ 생산에는 약 59.6㎏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이는 30년 된 소나무가 최소 10그루는 있어야 상쇄할 수 있는 양이다. 전 세계 어획량의 37%는 양식장 물고기² 사료로 쓰여 심각한 생태계 불균형을 초래한다. 우리가 자주 먹는 연어의 경우, 살 1kg을 얻으려면 15kg의 물고기가 먹이로 필요하다. 생선 하나를 섭취하기 위해 대량의 물고기가 희생되는 것이다. 더불어 연어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항생제와 살충제, 연어 배설물은 연안을 오염시킨다.³ 이처럼 동물성 식품의 끊임없는 생산은 동물의 권리를 침해하고 기후 파괴를 일삼는다.
비건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응책이다. 영원히 비건을 실천할 것이라는 엄숙한 다짐이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채식 지향인이다. 이에 토바이어스 리나트르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완벽한 비건이 아니라 다수의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간헐적 채식주의자)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비건 식품과 옷, 가방, 신발, 화장품 등 비거니즘의 보편화를 위해선 유연한 사고와 선택지가 수반 되어야 한다. 다수의 채식 지향인은 소수의 비건보다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수많은 채식 지향인은 더 많은 동물성 대체 상품을 요구하고 기업은 이런 수요에 대응해 여러 비건 제품과 기술을 선보인다. 넓은 스펙트럼 사이에서 동물성 제품 감소를 위한 여러 방법이 등장한다. 이러한 순환 구조는 또 다른 채식 지향인을 만드는 새로운 방법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채식주의자가 채소만 섭취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채식의 단계는 다양하며 그중 하나가 비건이다. 어패류·우유·가금류를 먹는 폴로(Pollo), 어패류·우유·달걀을 먹는 페스코(Pesco), 꿀과 우유 외 다른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락토(Lacto), 달걀 외에 다른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오보(Ovo) 등 여러 형태의 채식이 존재한다. 이와 더불어 육식을 지양하지만, 때때로 육식을 하기도 하는 플렉시테리언까지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채식을 시도할 수 있다.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자료에 따르면, 현재 고기 소비량을 기준으로 일주일에 하루 고기를 먹지 않으면 1.3 기가 톤의 온실가스 방출량을 줄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는 미국에서 2억 7,300만 대의 자동차가 운행하지 않는 효과와 비슷한 수치다. (와우!) 이 대단한 효과에 호기심이 일어 근맥인들도 채식에 도전해봤다.
EK - 기간: 1일 실천한 채식: 달걀○ 유제품× 생선× 육류×
평상시에 우유는 두유로 대체해서 먹고 생선과 육류는 즐겨 먹지 않아서 너무 힘들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꼭 ‘채식을 하겠다’고 의식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끼니가 이미 채식이더라고요. 간단하게 김에 햇반만 먹어도 육류와 생선을 안 먹을 수 있습니다. 이건 제가 요리를 거창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근데 비건식도 비건식 나름이고, 충분히 멋들어지고 격식 있는 식사도 할 수 있어요! 요즘은 비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도 많이 있는 것처럼···. 비건 실천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걸 이번에 다시 한번 느꼈네요. 일상의 순간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걸로 충분해요.
YN - 기간: 1일 실천한 채식: 달걀○ 유제품× 생선× 육류×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으로 채식을 했답니다. 워낙 과채류를 안 먹기도 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장시간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하루를 목표로 잡고 실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채식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 쉽게 실천하지 못했었는데 결심하니까 실행하는 건 금방이더라고요. 물론 매일 실천하는 건 아직도 어려울 것 같지만 채식이 마냥 높은 벽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던 것 같네요. 요즈음 냉동식품이나 라면을 많이 먹어서 소화가 잘 안됐는데, 채식한 날에는 더부룩하지도 않고 가벼웠다는 점이 좋았고, 마음도 나름 뿌듯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힘들었던 점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채식 식단을 챙겨 먹기가 어렵다는 점이었어요. 마트가 가깝지 않아서 야채를 구매하기도 쉽지 않았고, 요리도 잘 못 하고 해서 점심으로 샐러드를 시켜 먹을까 했더니 가격도 생각보다 나가더라고요. 비건 식당이 더욱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도 종종 날짜를 잡아서 일주일 중 하루는 채식을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HB - 기간: 2일 실천한 채식: 달걀× 유제품× 생선× 육류×
1일 차 점심으론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토마토소스를 사러 마트에 갔는데, 그 많은 소스 중 비건 제품은 단 하나였다. 성분표에 혼합 액기스 등 원료가 명확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제품을 고르기 어려웠다. 저녁에는 쫄면 먹었다. 2일 차에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다. 칼국수가 먹고 싶었지만, 육수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갈 것 같아서 포기했다. 주변에 식당은 많았는데, 비건 음식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유제품을 피하기가 것들이 많아서 제품을 고르기 어려웠다. 정보도 많지 않았고, 찾아볼 시간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인터넷에 올라온 성분표를 참고해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었다. 저녁은 채소랑 두부, 버섯 넣고 월남쌈을 해 먹었다.
나는 총 이틀간 채식을 진행했다. 예전에 동물 권리에 관한 책을 읽고 난 후부터 육식을 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비건식을 실천하며 죄책감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사실 몇 달 전부터 일주일에 하루는 비건식을 먹고 있는데, 직접 요리를 하지 않고는 비건식을 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더 많은 비건 제품과 식당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B. - 기간: 1일 실천한 채식: 달걀× 유제품× 생선× 육류×
비건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비건과 본인의 지향점이 동일하기에 스스로의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생각보다 큰 동기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체험이 닥치니 당장 식재료부터 주문하느라 바빴다. 온라인으로 쉽게 주문할 수 있는 완제품이 굉장히 많았다. 무엇보다 딱 하루, 총 두 번 비건 식사를 했을 뿐인데 다음날 몸이 엄청 가벼웠다. 기분 탓일까? 싶었지만 최근 3달 사이 이렇게 개운한 아침은 처음이니 비건 덕분이 맞다고 본다. ‘하루 비건’을 실천해보니 ‘완벽한 비건을 해야 한다’는 혼자만의 압박을 떨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아 직접 성분표를 확인하거나 요리법을 찾아서 해 먹는 등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다음 비건 체험은 아마도 내일이 될 것 같다. 생각보다 쉽고, 맛있으니까.
SR - 기간: 1일 실천한 채식: 달걀× 유제품× 생선× 육류×
호기롭게 성분 채식⁴을 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원체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온종일 채식하기는 누워서 떡 먹기,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한국 음식은 애초 채식 친화(?)적이라고!”…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한국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아니, 한국의 고기 사랑을 과소평가했다는 게 더 옳은 말이겠다. 원래 아침으로 가볍게 물 부어 마시는 분말 셰이크를 먹는다. 근데 성분을 보니 우유가 함유되어 있다. 오늘은 셰이크 대신 두유를 골라 집었다. 시작이 수월하다. 근로를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학교에서 무얼 먹으려니 학식도, 학교 카페도 전부 동물성 음식뿐이다. 학교 편의점에서는 먹을 수 있는 거라곤 사과나 바나나 같은 과일뿐이었다. 여기도 고기, 저기도 고기. 아니 고기 비싸지 않아? 왜 이렇게 고기를 못 집어넣어 안달인 거야? 결국 학교 밖으로 나와 근처 밥집에서 비빔밥에 계란 후라이를 빼달라 하고 먹었다. 식후에 간식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인데 간식은 가볍게 건너뛰기로 한다. 대망의 저녁 시간이 되었다. 깊은 고민 끝에 써브웨이에 가기로 한다. 통밀빵에 치즈는 빼고 채소만 넣어서 후추, 올리브유, 와인 식초를 넣었다. 먹어보니 꽤 맛있다. 왜 맛없을 거라고 성급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도는 비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은 절대 채식 친화적이지 않다. 적어도 현대의 음식문화는 그렇다. 우리는 돈을 주고 고기를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돈을 주고 고기를 빼야 한다. 고기가 기본값이 되어버린 사회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SK - 기간: 4일 실천한 채식: 다양함.
성분 채식까지를 하루, 유제품과 생선을 안 먹는 날 이틀, 달걀과 유제품을 안 넣는 날을 또 하루 보냈다. 성분 채식을 하는 날엔 마트에 가 계속 성분표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작게 적힌 글씨에 노안이 온다면 성분 채식은 어렵겠다는 상상을 했다. 결국 귀찮은 마음에 채식 라면만 두 끼를 먹었다. 생선과 유제품은 들어간 곳이 너무 많았다. 액젓 때문에 김치도 겉절이도 못 먹었다. 이렇게 많이 들어가면 바다는 괜찮은가, 생각했다. 달걀도 이곳저곳에 다 들어가 있어 알 수 없는 부조리함을 느꼈다. 어렵진 않았지만, 귀찮았고 무의식적으로 소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경이 살짝 곤두섰다. 예상할 수 없는 공격처럼, 너무 많은 동물성 음식이 등장했다. 그래도 가끔 들었던 불편함과 죄책감에서 해방된 기분이 들어 산뜻했다.
언제나 응원해
비건이 많이 알려진 만큼, 화장품 가게에 걸린 비건 제품 포스터와 카페에 새로 생긴 두유 라떼가 종종 눈에 띈다. 그러나 그보다 많이 보이는 건 삼겹살과 닭발을 소울 푸드로 여기며 육식에 열광하는 사회상이다. 육식은 여전히 성행한다. 육류의 소비뿐만 아니라 동물성 상품의 소비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마트에서 비건 식품을 만나면 반가운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비건은 가끔 있는 옵션에 불과하며 서울이 아닌 경우엔 그마저도 찾기 어렵다. 육식의 권리는 보장하지만, 채식의 권리는 어쩌다 베푸는 수혜쯤으로 여긴다.
가끔 비건 관련 글에 이런 조롱이 달리곤 한다. “동물 인권 챙기면서 가죽 소파에 누워있죠?” 동물권을 위해 노력한다면서 실상은 그렇지 못함을 꼬집는 의도라 짐작해본다. 『나의 비거니즘 만화』의 저자 보선은 비거니즘이 누군가를 악인이라 낙인찍기 위한 가치관이 아니며 육식 뒤에 불편한 진실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채식은 육식하는 이들의 인생을 부정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채식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의 삶을 부정할 수 없다. 완벽함이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서로를 설득하며 온전한 인간을 향해 나아간다. 서툴고 완벽하지 않아도 채식은 가능하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동을 변화의 시작이라 부른다. 새로운 물결이 일렁이는 것에 분노하는 사회는 변화하기 어렵다. 엄청난 목표와 당위를 가지고 채식을 결심할 필요는 없다. 원론적인 이야기이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한다거나 생명을 존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보자. 생각보다 쉽고 무섭지 않다. 약간 귀찮고 불편할 수는 있어도 말이다. 그러나 모든 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우리에겐 완벽한 채식인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많은 동행자가 필요하다. 우리의 변화를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응원한다.
¹ 최근 생활 전반에서 동물 착취 소비를 지양하는 단어를 통틀어 비건이라 부른다. 정확히 비건은 채식의 한 종류이며 동물 착취를 지양하는 생활 양식은 비거니즘으로 지칭한다.
² 고기라는 표현이 생명 착취의 뜻을 담고 있어 ‘물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번 글 또한 그렇게 표기함이 맞지만, 보통의 사회 통념을 전제로 글을 이해함에 물고기로 표시하였다.
³ 최원형, 「굳이 ‘연어’를 먹느라 사라지는 것들」, 『참여연대』,2020.11.01.
⁴ 라면수프에 들어간 소고기 분말, 젤리에 들어간 젤라틴 등 동물성 제품이 포함된 모든 식품을 먹지 않는 것.
참고문헌
김기범, 「③닭 “평생을 갇혀 치킨과 달걀이 돼요”」, 『경향신문』, 2021.06.11.
김성한, 「당신은 소와 개를 차별하고 있다」, 『한겨레』, 2016.04.15.
김연수, 「"일주일 중 하루만 고기 안 먹어도 지구 되살린다"」, 『뉴스1코리아』, 2018.04.20.
김지숙, 「스톨 사육 아십니까 …국민 97.2% “공장식 축산 개선해야”」, 『한겨레』, 2021.11.16.
보선, 『나의 비거니즘 일기』, 푸른숲, 2020.
이선목, 「“98% 비건도 비건…비거니즘에도 유연한 ‘실용주의’ 필요”」, 『ChosunBiz』, 2022.03.12.
이승진, 「소고기 온실가스 '자동차 4배'… 결국 해답은 대체육」, 『아시아경제』, 2021.09.01.
최원형, 「굳이 ‘연어’를 먹느라 사라지는 것들」, 『참여연대』,202011.01.
토비어스 리나르트, 『비건 세상 만들기-모두를 위한 비거니즘 안내서』, 두루미출판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