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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Jul 18. 2016

김장독에서 발효된 와인 맛을 찾아서

세계에서 제일 먼저 와인을 만든 나라, 조지아 와인여행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때는 언제부터일까.

고고학적 자료에 따르면 8천 년 정도 된 포도씨가 여러 토기 안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견된 장소는 와인의 종주국이라고 불리는 프랑스나 이탈리아가 아니라 조지아이다. ‘wine’이라는 단어도 조지아언어에서 와인을 의미하는 ‘gvino’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지아에서 와인을 만드는 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크베브리(Kvevri)라고 불리는 옹기에 포도를 으깨어 넣고 발효를 시키는데 문제는 크베브리를 땅 속에 묻는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김장독을 묻어서 김치를 발효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다.


와이너리 앞에 전시된 크베브리


땅 밑에 묻고 나무 뚜껑을 덮어놓은 크베브리


포도를 으깨던 나무통


포도를 으깨던 나무통 외관에 장식된 십자가와 포도 문양


크베브리의 형태는 커다란 계란 모양의 암포라이며 손잡이가 없다. 크기는 다양하지만 주로 800리터 정도이다. 땅 속에 묻은 크베브리 안에 으깬 포도즙, 껍질, 씨, 줄기까지 넣고 나무 뚜껑으로 봉한 다음 최소한 6개월 정도 숙성을 시킨다. 그 이후 숙성된 포도주를 다른 독이나 병으로 옮겨 2차 숙성을 시키며 크베브리는 씻어서 소독을 하고 밀랍 코팅을 한 후에 재사용한다고 한다. 바닥이 깊고 주둥이가 좁아서 특별한 기구를 사용하거나 체구가 작은 사람이어야 들어갈 수 있을 듯하다.


포도주를 숙성시키고 있는 중. 삼발이처럼 생긴 막대기로 가끔 저어준다고 한다.


아직 1차 발효가 끝나지 않은 상태. 포도주스와 포도주를 섞어놓은 듯한 맛이다.


크베브리에서 발효 숙성된 조지아 와인은 세계 어느 산지에서 만들어진 와인보다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다. 다른 나라 와인이 냉장고에서 숙성시킨 김치라면 조지아 와인은 땅 속에 묻은 김장독에서 잘 익은 김치 같다. 발효 음료인 막걸리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좋아할 맛이다.


조지아에는 500여 종의 포도가 자라며 약 40여 종의 포도만 상업적인 와인 제조에 사용된다고 한다. 조지아는 포도가 자라기에 적합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여름은 지나치게 무덥지 않고 겨울은 코카서스 산맥이 찬 바람을 막아주어 온화한 편이며 토양은 미네랄이 풍부하고 비옥하다.  


2013년 유네스코는 조지아의 크베브리 전통 와인 제조방법을 세계무형유산에 등록했다.


포도밭에서 자라고 있는 청포도. 상큼하면서도 단 맛이 풍부하다.


카헤티 지방의 포도밭.


조지아 와인의 약 70%가 생산되는 카헤티 지방은 꼭 들러야 한다. 와이너리 투어를 신청하면 4-5군데를 돌며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짜짜 등을 시음할 수 있다. 아침부터 와인향에 취해서 비몽사몽이지만 다른나라 와이너리 투어보다 즐겁고 특별했다. 크베브리에서 생산하는 전통방식과 서유럽처럼 현대적인 방식으로 생산하는 곳을 두루두루 볼 수 있다.


카헤티 지방의 와이너리를 표시한 지도


조지아 언어를 몰라도 포도와 크베브리 그림을 보면 와이너리 가는 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첫번째 와이너리에서 시음한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그리고 짜짜. 포도는 안주.


참고로 조지아에서 유명한 와인은 :

- 화이트 와인 : Tsinandali (치난달리)

- 레드 와인 : Saperavi (사페라비) , Mukuzani (무쿠자니), Kindzmarauli (킨즈마라울리) 등이 있다.


카레바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킨즈마라울리 레드 와인. 세미 스위트,


카레바 와이너리 대표 화이트 와인 중 하나, 알라자니. 세미 스위트.


레스토랑에서 마시던 레드 와인 사페라비.



이왕 와인 소개를 한 김에 빼놓을 수 없는 조지아의 Chacha(짜짜)도 알아보자.



트빌리시 공항에서 친구에게 선물 받은 짜짜. 아직까지 고이 모시고 있다.


색깔이 오크빛을 띄는 브랜디. 여러 병 숨겨왔는데 친구들을 위해 마지막 병을 열었다.


크베브리에서 숙성된 포도주를 꺼내고 나면 남아있는 찌꺼기 즉 포도 껍질, 씨, 줄기 등은 증류를 한다. 이 증류주를 Chacha(짜짜)라고 부른다. 스펠링만 보면 남미의 차차 댄스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짜짜는 약 40도 정도의 독한 술이다. 물론 몇 잔 마시면 기분이 up되어 차차, 룸바, 살사를 총동원한 막춤을 추게 될 지도 모르겠다. 춤을 부르는 술이다.


보통 조지안 보드카 또는 조지안 브랜디라고 부르며 색깔이 투명하다.

처음 입에 대면 독한 알코올 때문에 숨이 막히지만 넘기고 나면 뒷맛이 향긋한 포도향을 머금어 어느새 입맛을 다시게 된다. 식후주로는 그만이다. 실제로 조지아 사람들은 짜짜를 마시면 소화가 잘 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조지아 사람들 틈에 있으면 계속 건배를 하게 되어 주량을 훌쩍 넘기고 만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그라파가 세련되고 패셔너블한 보그 잡지라면 조지아의 짜짜는 푸근하고 정겨운 샘터 잡지 같다고 할까.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나른한 오후에 창 넓은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짜짜를 홀짝거리고 있노라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행복에 겨운 나머지 조지아에 그대로 눌러앉고 싶은 알뜰한 유혹이 밀려든다.


에스프레소와 함께 하는 짜짜. 물이 아닙니다. 추운 날 마시면 속까지 뜨끈해진다.


조지아에서 생산되는 맥주 맛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물맛이 좋기 때문이다. 카즈베기 맥주가 가장 오래되고 많이 알려진 브랜드라고 한다. 식사 때마다 다른 브랜드의 맥주를 맛보았다. 이런 낙이 없다면 여행의 맛도 거품 빠진 맥주 같겠지.


므츠헤타에서 마셨던 코스텔 생맥주.


제다제니 병맥주


제일 유명한 카즈베기 맥주


절대 놓치면 안 될 또 하나의 명물, 조지아의 생수 '보르조미'.

나는 콜라 사이다 같은 탄산수를 전혀 마시지 않지만 유럽에 살 때부터 가끔 마시는 스파클링 미네랄워터가 있다. 물맛의 취향이 까다로운 내가 즐기는 물은 이탈리아의 산펠레그리노이다. 페리에보다 목 넘김이 깔끔하고 뒷맛도 개운하다. 가스가 들어있는 물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개인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싫은 걸 억지로 권하는 문화는 정말이지 부담스럽다. 그러나, 나는 오늘 생수의 신세계를 열어주는 조지아의 '보르조미'를 강력하게 추천하고자 한다.



'보르조미'는 조지아에서 손꼽히는 휴양지 보르조미에서 생산된 ‘천연 광천수’이다. 조지아에 도착하여 이 물맛을 본 순간 곧바로 매료되어 산펠레그리노 따위는 바로 잊어버렸다. 매일 몇 병씩 마실 정도로 푹 빠졌다. 잘 생기고 세련된 애인을 잊게 한 보르조미의 매력은 무엇일까.


보르조미는 마실수록 몸이 가볍고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한국에 아직 수입이 안되어 아쉬운 대로 옛 애인을 만나고는 있지만 데이트 때마다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운 내 님은 언제쯤 오시려나.



* 조지아의 문화와 여행 중 에피소드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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