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빱이 아니라 김.밥.
겨울다운 추위가 찾아왔다. 좁은 삼청동 골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구석은 없었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 했던가. 옷틈을 죄다 파고드는 칼바람에도 움츠리지 않고 뚜벅뚜벅 걷던 순간 복잡한 머리속을 씻어낸 듯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의 타래로 얽혀있던 머리속이 짜장면 범벅을 씻어낸 그릇처럼 말끔해졌다. 겨울바람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어느 골목을 돌았을 때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것은 창밖으로 새어나오는 따뜻한 불빛 때문이었다. 작은 김밥집이 보였다. 시장기도 없는데 발길을 돌려 문을 열었다.
"김밥 포장해 주세요"
"추운데 잠깐 앉아서 기다리세요. 몇 인분 포장해 드릴까요?"
먹을 사람도 없는데 두 줄을 포장해 달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김밥 봉지를 식탁위에 던져두고 언 몸부터 녹였다. 실내온도로 몸이 데워지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차를 끓여 한 모금 마시고 입안과 위를 달랜 후 김밥을 하나 입에 넣었다. 꽃나물인 '삼잎국화'의 맛과 나머지 속재료가 골고루 잘 어우러져 참 맛깔스러웠다.
겨우 두 쪽을 먹었을 때, 명치 끝이 아려왔다. 우리가 흔히 발음하는 '김빱'이 아니라 쓰는 대로 '김밥'이라 부르던 사람이 있었지.
"아 답답해. '김빱'이라고 해야 맛난 김밥 같은데 '김밥'이라고 부르니 왠지 사이다에서 김이 다 빠진 거 같단 말이야. 나 따라해 봐. '김빱'. 밥에서 된소리가 나야 한다구."
"밥은 밥이지 빱이 될 수 없어. 김과 밥을 발음하는 사이에 잠시 멈추면 돼. 김.밥."
꼭꼭 뭉쳐서 말은 김밥은 꼭꼭 씹어 먹어야 체하지 않는다고, 한 줄을 다 먹으려면 한 쪽을 먹고 다음 쪽을 입에 넣기 전에 잠시 멈춰 쉬라던 사람. 사온 두 줄을 다 먹으려면 나는 얼마동안의 멈춤과 쉼을 반복해야 할까.
그 사람을 따라 소리내어 발음해 본다.
김-밥.
* 참고 :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김밥'의 표준 발음은 [김: 밥]으로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