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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Jan 15. 2017

김밥에서 쉼표를 찾다

김빱이 아니라 김.밥.


겨울다운 추위가 찾아왔다. 좁은 삼청동 골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구석은 없었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 했던가. 옷틈을 죄다 파고드는 칼바람에도 움츠리지 않고 뚜벅뚜벅 걷던 순간 복잡한 머리속을 씻어낸 듯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의 타래로 얽혀있던 머리속이 짜장면 범벅을 씻어낸 그릇처럼 말끔해졌다. 겨울바람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어느 골목을 돌았을 때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것은 창밖으로 새어나오는 따뜻한 불빛 때문이었다. 작은 김밥집이 보였다. 시장기도 없는데 발길을 돌려 문을 열었다.



"김밥 포장해 주세요"

"추운데 잠깐 앉아서 기다리세요. 몇 인분 포장해 드릴까요?"

먹을 사람도 없는데 두 줄을 포장해 달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김밥 봉지를 식탁위에 던져두고 언 몸부터 녹였다. 실내온도로 몸이 데워지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차를 끓여 한 모금 마시고 입안과 위를 달랜 후 김밥을 하나 입에 넣었다. 꽃나물인 '삼잎국화'의 맛과 나머지 속재료가 골고루 잘 어우러져 참 맛깔스러웠다.



겨우 두 쪽을 먹었을 때, 명치 끝이 아려왔다. 우리가 흔히 발음하는 '김빱'이 아니라 쓰는 대로 '김밥'이라 부르던 사람이 있었지.


"아 답답해. '김빱'이라고 해야 맛난 김밥 같은데 '김밥'이라고 부르니 왠지 사이다에서 김이 다 빠진 거 같단 말이야. 나 따라해 봐. '김빱'. 밥에서 된소리가 나야 한다구."

"밥은 밥이지 빱이 될 수 없어. 김과 밥을 발음하는 사이에 잠시 멈추면 돼. 김.밥."



꼭꼭 뭉쳐서 말은 김밥은 꼭꼭 씹어 먹어야 체하지 않는다고, 한 줄을 다 먹으려면 한 쪽을 먹고 다음 쪽을 입에 넣기 전에 잠시 멈춰 쉬라던 사람. 사온 두 줄을 다 먹으려면 나는 얼마동안의 멈춤과 쉼을 반복해야 할까.


그 사람을 따라 소리내어 발음해 본다.

김-밥.


* 참고 :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김밥'의 표준 발음은 [김: 밥]으로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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