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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Jan 29. 2017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못난이 도치, 도치알탕의 미학


설을 쇠러 고향에 내려왔다. 멀미 기운이 있어 쉬고 싶었지만 장을 보러 간다는 올케의 말에 나는 스프링이 튀어오르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장구경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다. 설밑이라 재래시장은 평소보다 더 활기가 넘칠 것이다. 잊지않고 카메라도 챙겼다.

강릉 전통시장, 중앙시장





강릉 중앙시장 지하에는 어시장이 있다. 단골집에 들러 차례상에 올릴 문어를 골랐다. 설이 코앞이라 문어값이 금값이다. 문어가 데쳐지는 동안 세 가지 생선을 사러 다른 가게로 갔다. 우리집은 가자미, 열기 그리고 명태를 쪄서 상에 올린다. 아주머니가 생선을 손질하는 동안 나는 다른 집들을 기웃거리며 구경을 했다.






앗 ! 이 생선은...




너무도 못생긴 이 고기의 정식 이름은 '도치'이다. 심술이 나서 퉁퉁 부은 것 같다고 하여 강릉에서는 '심퉁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살면서 본 해산물 중 심퉁이는 가장 못난 생선이다. 복어도 아귀도 이렇게까지 흉하진 않다. 고등학교 때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심퉁이의 실제 모습을 처음 보고 나는 기절초풍을 했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엄마의 등 뒤로 숨었는데 계속 눈앞에 어른거리는 시커먼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이후 한동안 시장 따라가는 일을 피했을 정도로 난 심퉁이가 끔찍하게 싫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속담을 신봉하듯 나는 음식을 먹을 때 미각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면도 중요하게 여긴다. 식재료를 살 때도 크고 실해보이는 것을 고른다. 싱싱하고 예쁘게 생긴 상품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굳이 못생기고 흉한 식자재를 고를 이유는 없으니까.


재작년 겨울, 친구와 속초에 놀러갔다가 도루묵찌개를 먹으러 맛집을 찾았다. 마침 도루묵이 다 떨어졌다며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도치알탕을 추천했다.

도치. 처음 들어보는 생선이었지만 흔쾌히 먹어보기로 했다. 신김치를 송송 썰어넣어 국물이 시원하고 뒷맛이 개운했다. 도치알은 동태알처럼 뻑뻑하지 않았고 도루묵알처럼 오도독거리지도 않았다. 작고 부드러운 도치알은 씹을 새도 없이 훌훌 잘도 넘어갔다. 어찌된 일인지 도치라는 생선은 전혀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먹을수록 깊은 감칠맛에 감탄하며 우리는 큰 냄비를 다 비웠고 잠시후 생선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던 나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하자 친구가 놀라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도치가 심퉁이래" 울먹거리듯 내가 대답했다. 심퉁이로만 알고있던 못난이 생선의 정식 이름이 도치라는 걸 나는 그때까지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아래턱과 배 사이에 있는 빨판으로 도치는 바위에 들러붙어 산다.


도치 살은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먹기도 한다.


12월에서 2월까지가 제철인 도치.

여기서 다시 재회할 줄이야. 모습은 여전히 자세히 보기가 꺼려졌다. 사진을 찍기도 망설여졌지만 기록을 남기겠다는 일념으로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못난이 도치.


생선과 문어를 받아든 올케가 다른 가게로 발을 옮기려 할 때 나는 재빨리 물어보았다.
"언니, 이 생선 이름 알아?"
"그럼. 심퉁이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통통한 게 넘 귀엽지"
난 미간을 찌푸리며 "거무튀튀하지, 배는 볼록하지, 빨판도 징그럽지. 어떻게 귀여울 수가 있담"하고 웅얼거렸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는데 올케의 마음은 귀엽고 내 마음은 못난 게 아닐까. 같은 사물을 보며 갖는 생각이 어찌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도치는 매콤하게 두루치기를 하거나 알탕을 끓이면 아주 맛나다는 올케의 말에 재작년 코를 박고 먹었던 도치알탕이 생각나 갑자기 입안에 단침이 고였다.
"언니, 도치 손질할 줄 알아? 만질 수 있어?" 라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내 의중을 눈치챘는지 올케는 "사다가 내가 끓여줄까?" 물었고 나는 기다린 듯 바로 대답했다.

"응"




기름진 차례음식 준비가 끝난 설 전날. 저녁밥상엔 도치알탕이 한냄비 올라왔다. 신김치를 볶다가 수북하게 나온 도치의 알과 데쳐낸 살을 넣어 푹 끓여내면 구수한 냄새가 온집에 진동을 한다. 손맛 좋은 올케 덕분에 식당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맛난 알탕을 먹었다. 오랜만에 모인 식구가 둘러앉아 다같이 먹다보니 냄비는 금세 바닥이 났다.

정월대보름이 지나면 도치는 산란기에 들어간다고 한다. 시원한 알탕을 먹으려면 제철인 겨울에 와야 한다. 새해가 시작된지 한달도 되지않아 나는 연말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
심퉁이를 먹어보면 알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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