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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Mar 21. 2017

음식천국 싱가포르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요리들

리틀 월드 싱가포르 음식여행


나도 소처럼 위(胃)가 4개였으면.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게 되면 제일 먼저 맛집 검색을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꼭 먹어봐야 할 현지 음식에 관한 자료부터 찾는다. 음식의 리스트가 작성되면 그 음식을 잘 하기로 알려져 있는 맛집의 위치를 고려해 일정의 동선을 그려본다.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싱가포르 같은 나라를 가게 되면 식탐은 전에 없이 커진다.  제한된 일정 동안 몇 끼를 먹을 수 있을지 세어보기까지 하니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먹방이 대세이고 음식의 글로벌화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굳이 특정한 나라를 가지 않고도 자기가 사는 도시에서 다양한 나라의 식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대개의 식당은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어 고유의 맛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이런 까닭에 싱가포르 여행은 매우 기대가 되었다. 싱가포르는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로 민족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 각자 고유의 음식문화가 이어져 내려온다. 또한 이렇게 다양한 문화가 섞이면서 발달한 싱가포르의 독특한 음식문화도 접해 볼 수 있다. 싱가포르 관광청에서 제공한 안내 책자와 싱가포르 여행에 요긴하다는 앱인 ‘트래블라인’을 넘나들며 정보를 찾았다. 음식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나는 출발 전부터 입맛을 다셨다.


싱가포르 관광청에서 구할 수 있는 가이드북. 매우 유용하다.


* 트래블라인 앱을 깔면 여행전에 정보를 확인하며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여행중에는 주변의  맛집을 검색할 수 있다.


쾌적하고 편안한 싱가포르 항공을 타고 6시간 만에 도착한 싱가포르. 전 세계를 압축시켜 놓은 듯 다양한 식문화가 발달한 리틀 월드, 싱가포르에서 4일간 먹은 음식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야들야들하고 향긋한 닭고기와 밥 - 하이난 치킨라이스

중국의 하이난 지방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싱가포르 대표음식인 하이난 치킨라이스는 CNN이 선정한 ‘세계 50대 맛난 요리’에도 순위를 올렸을 정도로 유명하다. 닭을 통째로 뭉근하게 삶아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닭을 건져낸 육수로 밥을 지어 알알마다 닭고기의 고소한 풍미가 살아있다. 접시에 밥을 오목하게 놓고 그 위에 닭고기를 올린다. 주로 연한 간장소스를 끼얹으며 매콤한 삼발을 곁들여 먹는다. 떠먹을 수 있는 닭 육수도 한 공기 따라 나온다.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닭고기와 향긋한 쌀밥의 조화가 일품이다.


싱가포르에서는 굳이 유명한 식당을 가지 않아도 된다. 노천식당이나 푸드코트에서도 맛난 음식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식문화가 발달해있다. 미국의 유명 셰프 안소니 부르댕이 소개해서 더 유명해졌다는 틴틴 치킨라이스는 늘 붐빈다고 한다. 나는 마리나 베이 야경도 볼 겸 마칸수트라 글루톤즈 베이 호커에서 먹었다. 알고 보니 위남키(Wee Nam Kee) 치킨라이스도 굉장히 유명한 맛집이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노천식당에서의 혼밥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음식 맛에 홀려 다 먹고 난 후에야 내가 혼자인 걸 알았으니까.


하이난 치킨라이스.
마칸수트라 노천식당들


2. 돼지 갈비탕을 차처럼 마실 줄이야 - 바쿠테(Bak Kut Teh)

싱가포르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먹거리 중 하나인 바쿠테. 향신료와 허브를 넣고 푹 고아낸 돼지 갈비탕이다. 중국의 푸젠 성에서 이주한 중국인에 의해 전파된 음식으로 알려져 있고 한자로는 육골차(肉骨茶)라고 쓴다.

몸에 좋은 한약재와 향신료를 넣고 끓인 바쿠테는 돼지고기 누린내가 전혀 없다. 돼지갈비를 뜯다가 중간중간 뜨끈한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다행히도 국물은 계속 리필이 된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아 나는 그릇을 들고 국물을 훌훌 마셨다.

캬아~ 시원하다 !


신음에 가까운 감탄의 소리가 민망했지만 한국에서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괴상한 소리를 내던 아저씨들이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차가 아닌 음식인데도 이름에 차라는 말이 들어간 걸 보니 역시 국물은 마셔야 진리인 것 같다. 이제 바쿠테 맛을 제대로 봤으니 한국의 소갈비탕은 밍밍해서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송파 바쿠테가 특히 유명하다고 한다. 내가 간 곳은 마리나 베이 지하 푸트코트의 Ng Ah Sio Bak Kut Teh라는 또 다른 맛집이다.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있는 옛 회사 동료가 추천한 곳이다. 그녀는 몸살 기운이 있거나 체력이 떨어지면 이 곳을 찾는다고 한다. 먹고 나면 힘도 불끈 난다는 바쿠테. 확실한 보양식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와 먹어서 그런지 이 곳의 바쿠테는 맛이 더욱 특별했다. 마늘과 후추 맛이 강한 바쿠테로 정평이 난 곳이라고 한다. 후추의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식당이다.


마리나베이 지하 푸드코트
바쿠테 세트 메뉴.
바쿠테 국물과 갈비에 반해서 어쩔 줄 모름.



3. 꼬치구이의 진수 - 사테이 (Satay)

꼬치구이인 사테이는 원래 인도네시아 음식이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로는 사떼(sate)라고 한다.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등을 먹기 좋게 잘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워낸다. 주로 달콤하고 고소한 땅콩소스를 곁들인다. 소스에 찍어먹어도 맛나지만 숯불향이 배어있어 그냥 먹어도 근사하다. 모둠으로 시키면 골고루 맛볼 수 있다.

저녁이 되면 시내 노천식당에서 사테이 굽는 향이 진동한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군침이 저절로 돌아 발걸음을 멈추고 망설이게 된다. ‘꼬치 몇 개만 먹고 갈까’.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면 비로소 열대의 밤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알게 된다.


모둠 사테이와 땅콩 소스


* 트래블라인 앱의 강점. 실시간톡을 통하여 여행자들과 다양한 정보를 나눌 수 있다. 현지에서 캡춰를 했어야 더 실감 났을텐데.


4. 쫄깃하게 당기는 맛 - 바소 (Bakso)

바소는 잘게 다진 소고기와 타피오카 전분을 뭉쳐 미트볼처럼 동그랗게 빚은 음식이다. 일반적으로 수프에 넣어 먹거나 국물에 면과 같이 넣어 먹는다. 우리나라 어묵보다 쫄깃하고 담백해서 먹을수록 당긴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바소는 중국 호키엔(푸젠 성에서 이주한 화교) 말로 ‘다진 고기’를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화교들이 먹던 음식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인들은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로 만든 바소를 먹기도 하며 무슬림이 많은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는 닭고기, 새우, 생선 등으로 만든 다양한 바소가 있다.

자정에 출발하는 귀국 비행기 탑승 수속을 마치고 싱가포르 창이 공항 내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었다. 면이 들어있는 바소, 오랜만에 참 반가운 맛이었다.


Bakso 바소
탱글탱글한 면발도 바소의 맛을 내는데 한 몫한다.


5. 인도요리의 정수 - 치킨 비르야니(Chicken Biryani)

인도를 대표하는 음식인 비르야니는 인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리틀 인디아 지역에서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비르야니는 쌀에다 사프란, 민트 등의 향신료에 재운 고기, 생선 또는 계란, 채소를 넣어서 찐 요리이다.

공항 도착 후 리틀 인디아 지역에 있는 숙소로 이동해 체크인을 하고 나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찜해둔 맛집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필요했고 몰려오는 허기를 달랠만한 간식을 먹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숙소 부근의 맛집 검색을 했더니 놀랍게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비르야니로 유명한 식당이 있었다. 구글이 '싱가포르에서 가장 맛있는 비르야니' 레스토랑으로 선정한 곳이라 한다. 미쉐린 가이드에서 합리적 가격으로 훌륭한 맛을 내는 식당에게 부여하는 빕 구르망(Bib Gourmant)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이른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식당을 찾아갔다.

허름한 건물 코너에 자리한 Bismillah Biryani 식당은 유명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몇 번이나 이름을 확인하고 들어서자 주인이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유명한 식당은 크고 화려할 거라는 선입견은 왜 쉽사리 깨지지 않는 걸까.

양고기 비르야니를 먹고 싶었으나 바로 먹으려면 치킨 비르야니만 가능했다. 8.50 싱가포르 달러면 한화로 7천 원 정도인데 맛에 비해 가격은 턱없이 저렴했다. 밥 한 톨 남김없이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나왔다. 다시 가서 양고기 비르야니도 먹어보고 싶은 식당이다.



치킨 비르야니와 망고라씨.


밥 사이에 푸짐한 치킨이 들어있다.


6. 매콤함과 고소함이 결혼했다 - 락사(Laksa)

80년대에 유행했던 프레디 아길라의 ‘아낙(Anak)’이라는 노래가 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필리핀 가수가 불렀지만 ‘아낙’은 말레이어로 ‘아이’를 뜻한다. ‘anak’이라는 단어에 접두사와 접미사가 붙은 ‘peranakan’은 ‘자손’이라는 뜻이다. 싱가포르 음식에서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페라나칸 요리(Peranakan cuisine)’는 그 유래가 매우 흥미롭다.


지도 : 구글 이미지에서 퍼 옴 (from Google Image)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사이에 위치한 말라카 해협은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세계교역의 중심지였다. 15세기경 경제여건이 좋지 않았던 중국 본토를 떠나 많은 중국인들이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말레이반도로 이주했다. 말레이반도에 정착한 중국인들은 영리하고 부지런하여 무역에 탁월한 재주를 발휘하였다. 지금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정착한 중국인들과 그 후손을 ‘중국계 페라나칸’이라 일컫는다. 말레이시아의 커뮤니티에서는 중국계 페라나칸을 남자는 바바(Baba), 여자는 뇨냐(Nyonya)라고 불렀다. 뇨냐는 결혼한 외국인 여성을 높여서 칭하는 말로서 ‘마담’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주택, 의복, 음식 등에서 중국과 말레이 본토의 문화가 섞인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말레이반도로 이주한 중국인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결혼을 하려면 신붓감을 중국에서 데려오기도 하였으나 말레이 본토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이 계승하여 발전시킨 요리를 페라나칸 요리 또는 뇨냐 요리라고 한다. 중국과 말레이반도의 식재료가 접목되고 융합되어 독특한 요리문화가 탄생했으며 락사(laksa)가 대표적인 요리이다. 페라나칸 요리는 가정에서 주로 만들어먹기 때문에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아주 많지는 않다. 대신 대중적인 락사나 몇몇 요리는 일반 푸드코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카통 락사


락사는 생선이나 닭을 끓인 국물에 쌀국수를 넣은 음식이다.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나 싱가포르에서 주로 먹는 락사는 커리와 코코넛 밀크를 넣어 매콤하면서도 고소하다. 코코넛 밀크가 들어서 느끼할 것 같지만 매콤한 커리와 삼발이 섞여서 칼칼한 뒷맛이 개운하다.

먹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커리와 코코넛 밀크의 조합이 어떤 맛을 낼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인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섣부른 기사도 봤다.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선입견을 주어 도전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야 맛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아직도 숯불을 사용하여 락사 국물을 끓이는 곳.


쌀국수를 국물에 토렴하는 과정.



내가 찾은 맛집은 여행자보다 현지인들에게 인기 만점인 곳이다. 피크타임에는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린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일부러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에 갔다. 대기줄은 짧아서 금방 내 차례가 왔다. 아직도 숯을 이용해 락사 국물을 끓이는 곳이라고 한다. 패밀리 비즈니스로 보였는데 엄마는 국수를 토렴 하고 딸들은 주문을 받았다.


숭에이 로드 락사.



영국의 유명 셰프 고든 램지 덕분에 카통 락사(Katong Laksa)가 유명하지만 내겐 숭에이 로드 락사(Sungei Road Laksa)가 훨씬 부드럽고 감칠맛이 깊었다. 면 위에 얹어준 조갯살은 어찌나 싱싱하고 탱글탱글한 지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한 그릇에 3 달러면 2500원 정도이다. 물가가 비싼 싱가포르에서 맛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가격이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운 후 한참 고민했다. ‘한 그릇 더 먹을까?’ 다음 식사를 위해 꾹 참았지만 후회된다. 위가 4개면 좋으련만.

락사는 면이 먹기 좋게 잘라져 나오므로 젓가락이나 포크가 아닌 숟가락으로 먹는 음식이다. 젓가락이 익숙한 우리에게는 조금 불편하긴 하나 숟가락에 면과 국물을 같이 떠서 먹어야 락사 고유의 맛을 누릴 수 있다.



싱가포르는 식도락가가 아닌 사람도 이국적인 음식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곳이다. 나라가 작아서 4박 5일이면 충분할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먹어보지 못한 음식도 수두룩하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해결책을 찾았다. 서점에서 요리책을 여러 권 사 왔다. 요리정보가 실린 싱가포르 항공사의 기내잡지도 가져왔다. 페라나칸 뇨냐의 레시피를 참고하여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 보려 한다. 나의 싱가포르 미각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본 포스트는 싱가포르 관광청으로부터 일부 경비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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