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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May 14. 2016

피츠로이, 넌 최고였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정수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역의 El Chaltén(엘 찰텐)은 인구 2천명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이다. 여름이 찾아오면 이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은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여행자들로 북적거린다. 그 이유는 Fitz Roy(피츠로이)산을 보기 위해서다.

해발 3,405m인 피츠로이는 파타고니아의 변화무쌍한 날씨때문에 웅장한 모습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거대한 빙하들 사이로 솟아있는 산 주변에는 한여름에도 눈발이 날린다. 마치 상어이빨처럼 뾰족한 산봉우리 주변으로는 구름이 걸쳐져있어 파타고니아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했던 원주민들은 이 산을 Chaltén(찰텐)산이라고 불렀다.

'연기를 뿜어내는 산'이라는 의미이다.


짧은 일정으로 이 곳에 오면 피츠로이 산을 보지 못하고 숙소에만 갇혀있다가 떠나게 될 수도 있다. 여행할 때 날씨운이 좋다고 자부하는 나도 걱정스러워 일단 나흘동안 머물기로 했다. 도착한 날은 하루종일 춥고 흐리고 거의 태풍 수준의 비바람이 불었다. 말로만 듣던 파타고니아의 바람.

여행자들은 느긋하게 숙소 라운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날씨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에 맡겨야 하는 것이니 괜히 애태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내일은 맑을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Really?"

내가 두 눈을 반짝이자 숙소 주인은  "you know we are in Patagonia!" 라고 하며 일기예보는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라했다. 하루에 사계절이 들어있는 파타고니아에서는 일기예보를 맹신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날이 밝아오는 지 어슴푸레한 빛이 방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듯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여니 거짓말처럼 맑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나의 미소도 따라서 밝게 피어났다. 간단히 아침을 차려먹고 샌드위치와 과일을 배낭에 챙겼다.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맑은 개울이 있어서 컵이나 물병만 챙겨가면 어디서든 목마름을 풀 수 있다고 했다.   

트레킹 루트 입구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인데 트레킹을 준비하는 여행자들이 많았다. 성수기여서 한국의 주말 등산처럼 줄서서 걸어가게 되는 건 아닐까. 얼마 걷지 않아서 괜한 기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군데의 전망 포인트를 제외하고는 혼자 걸을 때가 많았다. 햇살은 찬란하고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고 바람은 땀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간간히 휴식을 취하며 흘러가는 빙하 물을 떠서 마시는 느낌은 충만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국립공원 입장료는 놀랍게도 무료였다. 대신 공원내에서 어떤 쓰레기도 버리면 안된다. 바나나 껍질 같은 유기물 쓰레기도 그대로 봉지에 담아 내려와야 한다. 불을 피우거나 라이터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당연히 흡연도 금지된다. 작은 불씨로 화재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레킹 루트 표시가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이 트레킹 코스는 왕복 8시간 거리다. 청정 자연속에 몸을 맡긴 채 걷다보니 어느새 세 시간이 지났다. 마지막 한 시간은 경사가 가파른 자갈길을 올라가야 한다. 미인은 아무에게나 얼굴을 허락하지 않듯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라가는 사람만이 피츠로이의 진정한 위용을 감상할 수 있다.


숨이 턱에 닿아 그대로 주저앉을 무렵, 다 왔다는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구름 한 점 없이 완벽하게 위엄을 드러낸 피츠로이,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왔다. 천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피츠로이를 나는 마주하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말을 잊게 했다. 시간도 잊은 채 한없이 앉아서 바라보았다. 시인도 화가도 아니므로 이 풍광 그대로를 가슴에, 두 눈속에 담기만 한다. 빙하물은 시리도록 푸른데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솟는다. 같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혼자 온 것에 대한 미안함. 이토록 기막힌 장관을 홀로 봐야 하는 안타까움이 호수를 따라 흐른다.


살아서 다시 이 곳에 올 수 있을까. 산봉우리에 진한 아쉬움을 걸어놓은 채 발길을 돌렸다. 내려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작은 돌탑을 쌓으며 빌었던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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