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가지는 요조숙녀
온갖 봄나물들이 경쟁하듯 초록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마트에 갔다가 제철 채소도 아닌 가지를 한 봉지 사들고 온 건 순전히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지를 본 순간 시간여행이라도 떠난 듯 눈앞에 정겹고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어릴 때 살던 집에는 엄마가 애지중지 가꾸던 텃밭이 있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 엄마는 내게 가지를 몇 개 따오라고 시켰다. 나는 우산을 쓰고 텃밭에 나가 주렁주렁 매달린 가지를 만지작거리며 어느 걸 딸지 고르는 재미에 빠졌다. 먹빛에 가까운 고혹적인 보랏빛 가지 표면에 떨어진 빗방울들이 또르르 또르르 앙증맞게 굴러내렸다.
가지 밭에서 알맞게 자란 가지 몇 개를 따 부엌으로 간다. 찜통에는 벌써 김이 오르고 있다. 엄마는 늑장 부리다 온 딸에게 가벼운 핀잔을 늘어놓는다.
엄마가 가지를 썰 때 나는 소리와 오이를 썰 때 나는 소리는 다르다. 오이 써는 소리가 말괄량이 같다면 가지 써는 소리는 요조숙녀 같달까.
찜통에서 살짝 쪄진 가지는 재빠르게 무쳐져 접시 위에 담긴다. 가지나물은 아지랑이 같은 김을 올리고 있다. 마당에는 빗물이 고이고 내 입안에는 단물이 고인다.
* 가지 무침 tip *
- 찜통에 김이 오르면 가지 껍질 부분이 아래로 가도록 놓아요. 햐얀 속살면이 아래로 가면 영양소가 빠져 나간답니다.
- 불은 바로 중불로 줄여 약 6분 정도 찌면 좋아요. 젓가락으로 찔렀을 때 폭신하게 쏙 들어가면 다 쪄진 거에요.
- 가지를 무칠 때는 사랑하는 사람 다루듯 살살 버무려야 해요. 팍팍 무치면 가지가 죽처럼 되어 버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