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예찬과 함께하는 생강죽 레시피
재수없는 말이지만 나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키가 크다. 유전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잘 먹은 영양학적인 요소도 많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가리는 것 없던 내가 유독 적응하지 못한 건 바로 생강이었다. 엄마의 전설적인 백김치나 생선 요리를 맛나게 먹다가 좁쌀 만한 뭔가가 씹히는 순간 입안 전체로 퍼져나가던 아릿하면서도 쓴 맛.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쓴 맛이었다. 뱉고싶어 엄마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내면 몸에 좋은 거니까 그냥 먹으라는 눈짓을 하셨다. 울며 겨자 먹기가 아니라 울며 생강 먹기로 속담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못해 삼키고 나서도 그 강한 맛의 여운으로 눈물이 핑 돌곤 했다. 물론 엄마의 눈을 피해 몰래 휴지에 뱉어낼 때도 많았다. 아무리 골라내려고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생강 조각. 특히 고기나 생선 요리를 먹을 때는 늘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어가면 몸에 좋은 것이 당긴다던데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알싸한 생강향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마시는 생강차는 레몬을 넣은 듯 향긋하기까지 하다. 버스를 탈 일이 있으면 멀미방지용으로 편강도 챙긴다. 한두 쪽만 먹으면 느글거리던 속이 시원하게 가라앉아 사이다를 마신 듯 상쾌해지기 때문이다. 초밥을 먹을 때는 초생강을 김치 먹듯 곁들이고 장어구이를 먹을 때는 생강채를 여러 번 리필한다. 생강이 들어간 이강주나 진저 에일을 마시는 것도 즐긴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먹을 수 있는 진저브레드는 홍차와 함께 할 때 환상의 마리아주를 연출한다.
홀로 있을 때는 자신만의 독특한 향을 발산하고 다른 재료와 함께 하면 조화로운 향을 내고 마르고 나면 한약재로도 사용되는 생강. 못생긴 발가락처럼 투박하지만 생강만큼 이로운 식품이 또 있을까. 생강이 좋아진 이유는 냉하던 몸이 생강을 먹고 나면 따뜻해지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소화가 잘 안 될 때 생강죽을 끓여 먹으면 보약이 따로 필요없다.
재료 :
멥쌀 100g, 생강 30g, 대파 흰부분 또는 고수 70g
애피타이저로 먹거나 미음처럼 마실 때는 꿀 조금.
만들기 :
쌀을 불려서 약 1리터 정도의 물을 붓고 끓인다. 쌀이 말갛게 풀어지면서 쌀알이 뜨면 다진 생강을 넣고 끓인다. 쌀이 다 퍼지면 파 또는 고수를 넣고 불을 줄여서 약 10분간 뜸을 들인다.
미음이나 차처럼 마시고 싶으면 물을 더 부어 원하는 농도를 조절하면 된다.
* 생강죽은 두 가지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감기가 걸렸을 때는 대파를 같이 사용하고 소화가 안될 때는 고수를 추가하면 아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