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종교의 성지 예루살렘 여행기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3대 종교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요르단 암만을 출발해 국경을 통과하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지만 참을만했다. 더운 날씨에 조바심을 내면 더운 몸이 손해다. 인내심은 배낭여행자가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지 않은가. 이스라엘 국경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하면서부터 내 인내심의 수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평범한 사람임에 분명했다.
육로 입국임에도 불구하고 공항에서처럼 짐을 체크하고 수하물 띠를 둘러 부쳐야 했다. 입국심사대에 도착하기 전에 여권 검사를 두 번이나 했다. 심사대에 앉아있는 직원은 내 여권으로 박사논문이라도 쓸 기세였다. 내 여권에는 빈칸이 거의 없다시피 여러 나라의 출입국 기록이 있긴 하다. 마침내 심문이 시작되었다. 그의 얼굴은 딱히 불친절하지는 않았지만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하는 포스가 있었다.
심사직원 : 이스라엘 방문은 처음인가요?
나 : 그렇습니다.
심사직원 방문 목적은 무엇인가요?
나 : 여행입니다.
심사직원 : 직업은 무엇입니까?
나 : 여행과 음식문화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심사직원 : 체류 기간은 어떻게 되나요?
나 : 5박 6일입니다.
심사직원 : 이스라엘에 관한 글을 쓰기에는 체류기간이 너무 짧지 않나요?
나 : 그렇죠. 휴가가 길지 않아 저도 아쉽습니다.
심사직원 : 하지만 당신은 레바논에서 열흘이나 체류했군요.
나 : (……) 네. 맞습니다.
심사직원 : 레바논에서 길게 머문 거에 비해 이스라엘 체류는 너무나 짧네요.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 :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짧게 둘러봐야 하지만 조만간 다시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에는 여행과 음식 문화 등등 제가 쓰고 싶은 글의 소재가 너무 많으니까요.
심사직원 : (잠시 뜸을 들인 후) 꼭 그러시길 바랍니다.
통과였다. 레바논 출입국 기록이 있는 여행자에게 입국심사를 유난히 까다롭게 한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예상은 했지만 콕 짚어낼 줄은 몰랐다. 예상 질문에 대한 임기응변을 그런대로 잘 했는데도 왠지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레바논 체류기간보다 이스라엘 체류기간이 짧은 것이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했을 때 내 마음의 반응때문이었다. 그건 당신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누르고, 이스라엘에 조만간 다시 오고 싶다고 대답할 때의 내 마음이 왠지 비굴했던 것 같다. 거절당하기 싫어서 긍정적인 답을 해야 한다는 본능에 충실했던 것뿐이라고 자신을 위로했지만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입국비자가 별도의 용지에 인쇄되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입국비자 용지와 여권을 돌려받았다고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수하물 대기실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짐이 나오지 않았다. 공항에서처럼 수하물이 한꺼번에 우르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기실의 전광판에 수하물 번호가 뜨면 나가는 시스템이었다. 보안 검색을 철저하게 하느라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았다.
마침내 내 번호와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직원이 검색대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내게 손짓했다. 직원은 내 짐에서 폭발물이라도 발견했는지 검색대 위에 나란히 놓인 내 트렁크와 배낭을 열라고 했다. 친절은커녕 위압적인 자세였다. 자물쇠를 열자 검색원은 차곡차곡 정리해서 넣었던 내 짐들을 바닥까지 뒤집어 꺼냈다. 엑스레이에서 의심되는 물건이 있었다면 뭐라도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그는 의례적으로 짐들을 대충 훑어보더니 도로 집어 넣으라고 했다. 레바논 다녀온 일행 중 본보기로 내 짐 검사를 한 것 같았다. 그들의 최첨단 검색 엑스레이에 위험물로 보일만한 짐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하나 제대로 넣으려니 짜증이 밀려와 던지듯 대충 구겨 넣었다. 짐을 받고 나오면서 여권 검사를 한 번 더 당해야 했다. 지금껏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겪었던 최악의 입국절차였다. 지난 3주간 레바논과 요르단에서 현지인에게 매일 듣다시피 했던 ‘웰컴’은 이스라엘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였다. 그들은 이방인을 원치 않는 듯 했다.
미니버스를 타고 약 1시간 정도 달려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다마스쿠스 게이트 주변에는 중무장을 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입국 수속부터 이어진 불쾌한 기분은 더 언짢아졌다. 구시가지가 속해있는 동예루살렘(East Jerusalem)은 국제법상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지만 제3차 중동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을 점령하여 통제하고 있다. 동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성지가 모여 있는 곳이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역사적으로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 사진: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게이트. (구글 이미지 참고)
예루살렘 구시가지(Old City)는 16세기에 이 땅을 지배했던 오스만 제국이 건설한 성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도시를 따라 둘러진 성벽의 길이는 약 4km 정도 되며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무슬림,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크리스천 구역이다. 성벽에는 8개의 문이 있고 다마스쿠스 게이트(Damascus Gate)와 자파 게이트(Jaffa Gate)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다마스쿠스 게이트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떠들썩한 시장이 나타났다. 무슬림 지역에 있는 재래시장은 양갈래로 이어져 온갖 종류의 상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신선한 야채며 과일이며 갓 구운 빵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다양한 향신료와 아랍 커피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이 단숨에 여행자를 사로잡았다. 불쾌했던 기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 날아가 버리고, 우리는 무거운 짐을 끌면서도 시장 구경에 신이 났다. 3천 년이 넘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우리는 점점 빠져들어갔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아르메니아인 구역에 있었다. 유대인 구역과 가까운 곳이라 전통 복장을 하고 지나다니는 유대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검은 양복에 검은 모자를 쓰고 길게 기른 귀밑머리를 꼬아 늘어뜨린 스타일이 독특했다. 해발 754m에 위치했다지만 8월의 예루살렘은 무더웠다. 얇은 옷을 입어도 뜨거운 햇살을 받으면 금방 땀이 날 정도였는데 검은색 코트까지 차려입은 유대인들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율법을 고수하는 사람들. 유대인들이 지나다니는 길 너머로 ‘바위 돔’ 사원이 빛나고 있었다. 무슬림들이 성지로 여기는 곳이다.
예루살렘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바위 돔(Dome of the Rock)’ 사원은 지붕이 황금색으로 덮여있어 ‘황금돔 사원’으로도 불린다.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지붕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슬람 건축물인 바위돔 사원은 예루살렘을 통제하는 이스라엘이라도 건드릴 수 없는 장소라고 한다. 무슬림들이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이라 여기는 이슬람 성지이기 때문이다. 무슬림을 제외한 일반 관광객이 이 곳에 입장하려면 까다로운 검사를 거쳐야 하며 유대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바위 돔’ 사원이 있는 자리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여호와에게 제물로 바친 자리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유대인의 선조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던 곳이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괴되었던 성전은 헤롯왕이 더 큰 규모로 증축하였지만 예루살렘을 점령한 로마군에게 또다시 파괴되었다. 7세기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우마이야 왕조의 5대 칼리파 아브드 알말리크(Abd al-Malik)는 수백 년간 방치되었던 솔로몬의 성전 터에 웅장한 이슬람 사원을 지었다. 정복과 피지배가 수없이 반복된 곳이다.
‘바위 돔’ 사원 아래에는 ‘통곡의 벽’이 있다.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할 때 남겨놓은 성전의 일부인 서쪽 벽(Western Wall)이다. 로마에 대항하여 일으킨 항쟁이 실패하고 강제 추방된 유대인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 들어와서야 일 년에 한 번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유대인들은 성전의 일부로 남아있는 서쪽 벽에 모여 울면서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이 곳이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유이기도 하다. ‘서쪽 벽’은 성전 재건을 꿈꾸며 유대인들이 기도를 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장소이기에 유대인들의 성지다.
서쪽 벽은 남자와 여자가 기도하는 장소가 나뉘어 있다. 성전 벽 돌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식물이 보였다. 메마르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모습이 유대인을 닮은 듯했다. 유대인들이 벽에 이마를 대고 입을 맞추며 절실하게 기도하는 몸부림을 보면 왠지 압도되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처럼 간절한 기도가 내게 있었던가 묻게 된다. 유대인들이 울부짖으며 올리는 기도와 벽 하나 너머에 있는 황금빛 지붕 밑에서 올리는 무슬림들의 기도는 하늘에서 맞닿게 될까.
구시가지에는 기독교 성지도 있다. 길을 걷다 보면 기독교 순례자들이 모여 기도를 드리는 장소가 군데군데 보인다. 이 길은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기까지의 길이라고 한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불리는 이 곳은 라틴어로 ‘고난의 길’ 또는 ‘슬픔의 길’이라는 뜻을 지녔다. 예수가 이 길을 걸어갔다는 증거는 명확하지 않지만 14세기경 십자가의 고난을 몸소 체험하고자 하는 수도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길이라고 한다.
800m 정도 되는 이 길에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가 14곳이 있다. 예수가 빌라도 총독에게 재판을 받은 1지점부터 시작하여 예수가 세 번째로 쓰러진 곳인 9지점까지는 길 옆 건물 벽에 라틴어로 숫자 표기가 되어있고, 옷이 벗겨진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한 후 묻힌 10-14 지점은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안에 있다. 순례자들은 각 처소마다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기리며 기도를 올린다. 예수의 시신을 내려놓았던 돌 위에는 입을 맞추며 엎드려 기도하는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이 길을 걷다 보면 왠지 모르게 숙연해지고 경건해진다.
‘비아 돌로로사’는 순례자가 아니어도 걷게 되는 길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성지순례를 갔더니 골목길이 지저분하고, 물건을 사라고 소리치는 무슬림 상인들이 많아 실망했다고.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 성화나 기념품을 파는 돈 밖에 모르는 속물들이라고.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십자가를 메고 걸으며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면서 몰려다니는 것만이 예수의 고난을 기리는 건 아니라고. 상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이른 아침 조용히 묵상하며 그 길을 걷는 것도 좋았다고. 같은 길을 걸어도 우리는 각각 다른 느낌을 안고 돌아온다.
수많은 순례자를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고난의 길'을 걸으며 올리는 기독교인들의 기도는 또 다른 성지에서 올리는 기도와 같은 것일까. 유일신을 믿는 세 종교의 기도는 세상의 평화를 바라는 신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
* 14처 사진 설명
1.예수가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곳
2.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채찍질을 당한 곳
3.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처음으로 쓰러진 곳
4.예수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
5.시몬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6.성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
7.예수가 두번째로 쓰러진 곳
8.예수가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한 곳
9.예수가 세번째로 쓰러진 곳
10.로마병사가 예수의 옷을 벗긴 곳
11.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곳
12.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한 곳
13.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놓았던 곳
14.예수가 묻힌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