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글의 유래를 찾아서
음식만큼 한 나라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또 있을까. 음식에는 문화와 역사와 종교와 경제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서사까지도 반영되어 있다. 90만 명 남짓한 인구의 예루살렘.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모여있는 곳이지만 예루살렘에서 우리가 먹은 음식은 다른 중동지역에서 접했던 음식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루살렘 인구의 약 63%를 차지하는 유대인은 2천 년간 자신들의 영토 없이 유랑하던 민족이다. 주변 아랍국가, 유럽, 미국 등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영토에 이스라엘을 건국한 이후로 본격적으로 모여 살기 시작했다. 현재 이스라엘 인구의 75%가 유대인이므로 결국 이스라엘 음식은 그들이 흩어져 살았던 나라들의 음식 문화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만의 독창적인 음식은 없고, 대표적인 중동의 음식들과 유럽의 맛이 어우러져 있는 셈이다.
나라 없이 수천 년을 떠돌던 유대인들이 지켜온 건 맛이 아니라 ‘카쉬루트(Kashrut)’라는 율법이다. 카쉬루트는 유대교의 음식 규율이며, 이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코셔(Kosher)라고 한다. 코셔는 ‘적합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율법은 복잡하고 까다롭다. 예를 들면, 육류와 유제품을 함께 먹지 않는다든지, 발굽이 갈라져 있으면서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만 먹는다든지,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해산물은 먹지 않는 것 등이다. 돼지는 발굽이 갈라져 있지만 반추동물이 아니라서 돼지고기는 금기시 되며, 말과 낙타는 되새김질을 하지만 발굽이 갈라져 있지 않아 먹을 수 없다. 문어, 오징어, 새우, 굴 등도 비늘이 없기 때문에 코셔 식단에는 적합하지 않다. 카쉬루트는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 여기저기 흩어져 살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유지시켜준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즐겨 먹는 음식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는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후무스와 팔라펠을 들 수 있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형태와 맛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인 레시피는 다른 중동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후무스와 팔라펠에 대한 이야기는 본 매거진 9화 ‘중동의 꽃, 레바논 식탁’에 자세히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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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장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에서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에 샥슈카(Shakshuka)도 있다.
샥슈카는 양파, 토마토, 고추를 다져서 볶다가 소스처럼 걸쭉해지면 계란을 넣어 반쯤 익힌 요리다. 튀니지에서 유래한 음식이지만 북아프리카에 살던 유대인들이 1950년대에 이스라엘로 대거 이주하면서 이스라엘 가정식으로까지 발전했다. 대개 큐민과 파프리카를 넣어 스파이시하다. 따뜻하게 먹으면 좋기 때문에 철판으로 된 팬이나 냄비째 서빙을 하며 소스를 찍어먹을 빵이 같이 나온다. 샥슈카는 빨간 토마토소스가 지옥불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에그 인 헬(Eggs in hell)'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빨간 소스를 빵에 찍어 먹으니 살짝 매콤한 맛과 감칠맛이 잘 어우러진다. 이렇게 맛나다면 지옥불이라도 감수하고 뛰어들 것 같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순간 눈에 띈 음식이 하나 있었다. ‘예루살렘 빵(Jerusalem bread)’이다. 중간에 구멍이 뚫린 빵은 가늘고 길었다. 마치 도넛을 길쭉하게 늘여놓은 모습이랄까. 바삭 소리가 날 것 같이 연한 브라운 빛깔로 구워낸 빵 위에는 깨가 잔뜩 뿌려져 있었다. 예루살렘 빵은 다른 중동 지역이나 이스라엘의 타 도시에서는 본 적이 없다. ‘예루살렘 베이글(Jerusalem bagel)’이라고도 불리는 이 빵은 말 그대로 예루살렘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구시가지에는 목판에 빵을 담아 팔러 다니는 행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둥근 베이글은 유대인들의 음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길쭉한 모양의 예루살렘 베이글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사고팔고 있었다. 그렇다면 둥근 베이글의 원조가 예루살렘 베이글인 걸까. 두 베이글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어원에 관심이 많은 나는 먹어보기도 전에 이름의 연결고리가 궁금해졌다.
뉴요커의 시크함을 상징하는 빵, 베이글(bagel).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도 열풍이 불더니 이제 웬만한 빵집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떡처럼 식감이 쫄깃하고, 맛이 담백하여 우리 입맛에도 잘 맞기 때문이리라. 베이글의 표면이 반질반질하고 식감이 쫄깃한 이유는 밀가루 반죽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굽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이글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설은 다음과 같다. 16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오스만 튀르크 군대의 침략에 맞서 오스트리아 군사들이 싸우고 있었다. 오스만 튀르크의 공세에 밀려 빈이 함락되기 직전에 폴란드의 왕 소비에스키(Sobieski)가 이끄는 연합군의 지원으로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폴란드 왕에게 감사를 전하는 마음으로 유대인 제빵업자가 등자(말을 탈 때 발을 디디는 도구인 발걸이) 모양의 빵을 만들었다. '등자'는 독일어로 ‘뷔겔(Bügel)’이라고 하며 뷔겔은 ‘베이글’이라는 말로 변형되었다.
흥미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1610년 폴란드 크라쿠프(Kraków)의 유대인 공동체 조례에는 이미 베이글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한다. 링 모양을 한 빵의 역사는 훨씬 더 이전으로 올라가며 링 모양의 빵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 존재했었다. 끓는 물에 반죽을 데쳐 굽는 빵의 기록으로 치자면 1394년 폴란드 궁중에서 먹었던 ‘오바르자넥(Obwarzanek)’이 있다. ‘오바르자넥’은 폴란드어로 ‘살짝 데치다’라는 뜻에서 나온 단어다. 폴란드 크라쿠프 특산품인 오바르자넥의 모양은 베이글과 비슷하며 반죽을 꼬아 만든다.
베이글의 유래는 불명확하지만 17세기부터 폴란드 유대인이 즐겨 먹었던 빵이며, 19세기 무렵 동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북미 지역에 널리 퍼지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등자' 모양 유래 설은 유럽에서 핍박받던 유대인에게 관대했던 폴란드 소비에스키 왕에 대한 유대인의 감사의 마음이 반영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들은 정사보다 야샤를 재밌어 하고, 정설보다 통설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음식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유래가 있고, 사람들은 음식에 담긴 통설을 믿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가장 기본적인 베이글은 밀가루와 물과 소금 그리고 이스트만 넣어서 만든다. 버터, 우유, 계란이 들어가지 않아 건강식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빵만 먹기에는 심심하여 세트처럼 따라다니는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먹게 된다. 플레인 베이글 이외에도 양파, 치즈, 블루베리 등 다양한 맛이 있다.
반면에 예루살렘 베이글은 반죽을 데치지 않고 구워내어 껍질이 바삭하다. 참깨를 많이 뿌려 구웠기 때문에 고소한 깨의 향이 빵의 구수함을 더한다. 빵의 조직은 일반 빵처럼 기공이 많고 감촉이 푹신하다. 설탕과 우유가 들어가지만 별로 달지는 않다. 예루살렘 베이글을 사면 감초처럼 꼭 따라오는 것이 있다. 자타르(za'atar)라 불리는 가루다. 야생 타임(thyme)을 말려 가루로 만든 다음 참깨, 소금을 섞어 만든 양념이다. 올리브유와 섞어 먹어도 맛나고 그냥 찍어 먹어도 허브향이 환상적이다. 자타르는 예루살렘 베이글의 맛을 완성시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루살렘에도 미국에서 들여온 둥근 베이글을 판매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음식은 어디까지나 기호나 취향의 문제지만 내겐 쫄깃한 베이글보다 바삭한 예루살렘 베이글이 더 맛났다. 앞니로 쫀득한 베이글을 베어 물면 잘 끊어지지 않아 빵을 쥔 팔을 양옆으로 흔들며 힘을 주기도 한다. 베이글은 끈질긴 유대인의 근성이 담긴 빵 같아서 왠지 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루살렘 베이글은 손으로 떼어먹기 좋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심처럼 넉넉해서 하나를 사면 셋이 나눠먹어도 될 정도였다.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 중 하나인 빵은 많은 문화에서 단순한 식량을 넘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영어에 '컴패니언(companion)'이라는 단어가 있다. ‘동반자’ 또는 ‘친구’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유래를 보면 라틴어에서 ‘함께’라는 뜻을 가진 ‘com’과 ‘빵’을 뜻하는 ‘panis’가 합쳐진 것이다. ‘빵을 함께 나눠먹는 사람’이라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오랜 분쟁을 끝내고 화해와 평화의 빵을 나눠먹는 ‘컴패니언'이 되는 날을 간절히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