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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Jun 16. 2016

카즈벡 산에 묻고 온 후회

조지아 '츠민다 사메바'에 오르다

삼년 전 봄, 허망하게 엄마를 떠나보냈다.

갑자기 큰 일은 없을 거라던 주치의의 말을 과신했던 나는 엄마가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실 거라 생각했고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았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고 난 이후 애닯다 어이하리.

일평생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비로소 어버이를 잃어본 사람만이 뒤늦게 후회하며 새기는 진리일 것이다


갑자기 엄마와 떨어진 어린아이처럼 주체할 수 없는 분리불안과 상실감으로 이리저리 부초처럼 흔들리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무수한 사람들과 어울려 다녔다.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마음은 무인도처럼 황량해져 갔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외로움은 큰 파도처럼 나를 삼켰다가 자갈밭으로 토해내곤 했다. 피붙이 하나 없는 외국에서 십 년 넘게 살면서도 못 느껴본, 블랙 커피처럼 쓰고 진한 외로움이었다.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 가는 길. 가을이 완연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떠날 궁리를 하며 여기저기 여행 블로그를 헤매 다녔다. 어느 블로거의 사진 한 장에 시선은 가서 꽂혔고 그 자리에서 단숨에 결정했던 조지아 여행.


Russia-Georgia Friendship Monument. 벽의 내부에는 조지아와 러시아의 역사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음.



겨울이 혹독하게 추운 카즈베기 마을로 가는 길에 만난 따스한 손뜨게 제품들.


'조지아'라고 하면 미국의 주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조지아는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위치한 코카서스 3개국 중 하나다. 흑해와 카스피해를 양쪽에 끼고 있으며 와인이 가장 먼저 생산된 국가이기도 하다. 조지아라는 이름은 생소해도 그루지아라고 하면 '아하!'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구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조지아(Georgia)는 러시아식 발음인 '그루지아'를 싫어한다고 한다. 조지아의 원래 이름은 '사카르트벨로'이며 이는 마치 우리나라가 영어로는 코리아로 불리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게르게티 트리니티 성당이 있는 카즈베기 마을은 안개가 자욱하고 몽환적인 마을이었다. 아직도 뭔가 구소련의 잔재가 남아있는 듯한 풍경은 낯설었지만 왠지 익숙하기도 했다.

안개 낀 카즈베기 마을에 아침 산책 나온 어르신들.



아침 산책 중 만난 소몰이 할아버지.


해발 2200m에 위치한 게르게티 트리니티 성당은 조지아어로 "츠민다 사메바"라 불린다. 맨 몸으로 올라가기에도 숨차고 버거운 이곳에 성당을 지을 자재들을 일일이 날라서 지었다 하니 14세기 조지아인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고 숭고했는지 엿볼 수 있다.


카즈벡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츠민다 사메바'.


러시아와 조지아를 가르는 코카서스 산맥에서 세 번째로 높은 카즈벡(Kazbek) 산은 해발 5047m이다. 이 만년설산을 배경으로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성당까지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가파르지만 빨리 오를 수 있는 지름길과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완만한 길 그리고 적절하게 완급이 조절되어 있는 길이 있다. 비가 내린 후라 길이 미끄러워 차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천천히 다가가고 싶었다.


차로 가면 놓쳤을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들. 걸어서 오르는 길 주변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발만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시나브로 경사가 완만해지더니 360도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능선이 펼쳐졌다. 파노라마처럼 탁 트인 능선 자락에 장엄하게 서있는 츠민다 사메바.

가쁜 숨을 미처 돌리기도 전에 심장이 두 방망이질을 해댔다. 드디어 이 곳에 왔다!


능선에 도착하면 펼쳐지는 풍경. 츠민다 사메바.


헤어진 연인을 갑자기 다시 만난 듯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이제 다가가도 될까요?'

날씨 변화가 심해 운이 좋아야만 성당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성당은 마치 내게 두 팔을 벌리고 안아줄 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요동치는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츠민다 사메바의 종탑


카즈베기 마을.



식수로 마실 수 있는 수돗물. 신자는 아니어도 성호를 그으며 감사히 마시게 된다.


성당 외벽에 손을 대고 한 바퀴 둘러보았다. 저 아래로 카즈베기 마을이 까무룩하게 보였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고 작은 바늘이 떨어져도 들릴 듯 고요했다. 신자는 아니지만 초를 하나 켜고 기도를 올렸다! 엄마를 생각하며 기도를 하자니 가슴 저 밑바닥에 다져두었던 회한이 솟구쳐 올라와 목구멍이 데일 듯 뜨거워졌다. 끓어넘친 후회는 뜨거운 눈물이 되어 용암처럼 흘러내렸다.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밖으로 나와 뼛속까지 후벼 파는 찬 바람을 맞으며 성당 주변을 계속 서성이며 돌아다녔다. 아직 덜 풀린 채로 남아있는 마음의 응어리를 만지며 흰 눈이 쌓여있는 카즈벡 산을 바라보았다.  


카즈베기 가는 길에 들른 '아나누리 교회 내부'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

능선 끝자락이 다가올수록 성당의 모습은 점점 작아져 갔고 나는 자꾸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이나 사물과 헤어지는 순간이 오면 절대로 뒤를 보지 않는 내가 왜 그랬을까.


그 날, 편찮으신 몸으로 문밖에까지 배웅 나와서 떠나는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던 엄마.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서 계시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끝내 엄마를 향해 뒤돌아 마주 보며 손을 흔들지 않았다. 뒤돌아 보는 순간 그냥 주저앉아 울 것만 같아서, 발길을 돌려 서울로 영영 올라올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나는 계속 앞만 보며 발걸음을 재촉했었다. 그렇게 엄마는 당신 딸의 차고 매정한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셨다. 며칠 후 중환자실로 찾아뵈었을 때는 딸의 목소리를 알아들으시고 감은 눈에서 눈물을 흘리신 후 그대로 의식을 잃으셨기 때문이다.


그 날, 돌아서서 웃으며 손 흔들어 드릴 걸...

다시 달려가 단 한 번이라도 힘껏 안아드리고 사랑한다고 말할 걸...

뒤늦은 후회와 사무침의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한 발만 더 내려디디면 성당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지점. 계속 뒤를 돌아보며 발길을 떼어놓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보았다. 이제 그만 가라고, 우리 딸 마음 다 알고 있으니 괜찮다고 손을 흔드는 엄마의 모습을. 부질없는 후회는 이제 이 곳에 묻어버리고 그만 내려가라고 손짓을 하셨다.


엄마는 알고 계셨구나. 당신 딸이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었는지. 북받쳐 오르는 눈물이 앞을 가리고 엄마는 희미하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나도 뒤돌아 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엄마, 미안해. 엄마, 사랑해"


나는 이 곳에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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