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만날수록 에너지가 방전되는
인맥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나서,
되찾은 건
나의 성장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수많은 인맥 속에 휩쓸려
시간을 허비하느라,
무심코 흘려보냈던 장면 중,
가장 가까이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함께 해주었던
부모님의 존재가
선연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내가 살기 바빠서,
나에게 닥친 문제들만 신경 쓰느라
늘 그들은
내 삶의 뒷전이었다.
나의 폭풍이 지나간 후,
뒤늦게 마주한 부모님은
세월에 무력해진 모습을
애써 감추고,
여전히 건재한 척 계셨다.
휴직을 하고 난 뒤,
가족과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그분들의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의 어깨는 생각했던 것보다
병원을 너무 늦게 찾아가서
회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퇴근하고 나서 밤늦도록 여가를 즐기셨던
아버지도 이제는
밤 9시만 넘어가면
더 이상 피곤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
타고난 유전자 덕분에
아직도 흰머리가 나보다 적은
어머니였지만,
오랜만에 자세히 더듬어 본
어머니의 머리칼은
이제 나보다 희끗희끗한 것이
더 많아져 있었다.
이들보다 더 중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토록 오랫동안
불필요한 것들을 우위에 두고,
다 소유하려고 애썼던 것일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일도,
좋아했던 모임에서
소외감과 공허함을 느끼게 된 것도
그때는 꽤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덕분에 지금은
더 소중한 것들을
단단히 지킬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그때의 불행은 결국
지금의 행운이 되었다.
나에게 진짜 중요한 관계들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알아주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나를 응원하고 있다.
오늘도 변함없이
곁에서 당연하게
나를 밝혀주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해보자.
그들의 당연한 존재가
결코 영원하지 않기에.
쓸데없는 상상으로 쓸모 있는 일하기를 좋아합니다.
직장과 나의 만족스러운 더부살이를 위해
그리고 쓰는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답게 사는 INFJ의
세상살이 인스타툰을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