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똑같은 일상을 살아도
우연한 사정으로
우울에 빠지기도 하고,
남모를 고민에 괴로워하는 일도
생기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직장인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하며
샤워를 하고
몸단장에 신경 써야 하며
바깥 소음에 섞여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내 속은 상할 대로 상해서
정신없이 시끄럽더라도,
일단 출근하면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저녁 6시까지 반드시 쳐내야 하며,
간간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이들에게
적재적소의 웃음과 리액션으로
화답도 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출근하기 전까지만 해도
심히 나를 괴롭혔던
걱정과 고민거리가
퇴근길에는
'그래도 부딪쳐볼 만하지 않을까'하는
근거 없는 용기로
잠재워져 있을 때가 있다.
또 어떨 때는 하루 종일
한 가지의 문제로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는데,
출근해서 9시간 동안
그 문제를 잊고,
다른 것들에 집중하다 보니,
고민과 감정들이 리셋되어,
괴로움에 요동쳤던 감정들도
차분해지고,
소진되었던 에너지가 다시
충전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규칙적인 생활은 그런 힘이 있다.
숨고 싶은 나를 억지로 일으켜서
기필코 움직이게 만든다.
어쩌면 한없이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자유도 없는
월급쟁이의 비애를
보기 좋게 정신승리로
포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직장 생활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형태로든
일상을 유지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규칙적인 삶의 힘은
내가 스스로를 구할 수 없을 때
나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기도 한다.
무너지고 싶어도
무너질 수 없게 하는
일상의 평범한 루틴이
지금 나에게 닥친 별일을
별일 아닌 일처럼 만들어줄 것이다.
+
직장 생활이라는 더 큰 별일을
겪다 보니,
나의 별일이 힘을 잃은 것일 수도...
쓸데없는 상상으로 쓸모 있는 일하기를 좋아합니다.
직장과 나의 만족스러운 더부살이를 위해
그리고 쓰는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답게 사는 INFJ의
세상살이 인스타툰을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