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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의지하던 사람이 떠났을 때

29.

by 긋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운 좋게 나와 잘 맞는 동료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새로운 부서에 발령받고,

적응하는데 버거웠던 나를

잘 챙겨주었던 분이 있었다.


우리 팀 차석으로

나보다 선배였는데,

그녀는 한 마디로

'강강약약'의 스타일이었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아무리 높은 직급의 상사가

강요하는 일이라도

끝까지 맞서는 타입이어서

소위 상사들이 좋아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후배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

뒤에서 티 나지 않게

조용히 도와주곤 하였다.


어느 날은

과장님이 나를 불러

내가 제출한 자료에 대해

추가적인 보충자료를 요구하여

당장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당황도 했고,

낯선 자료여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는데,

차석이 조용히 업무 메신저로

과장님이 요구했던 자료를

대신 찾아서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긋다씨, 이거 드리면 돼.")


그날 과장님 컨디션도 안 좋아서

제대로 못 드렸으면

한소리를 들을 타이밍이었는데,

다행히 차석 덕분에

잘 넘어갈 수 있었다.


업무도 잘하고,

정의롭고,

후배들에게 인정도 많았던 차석은

나에게 롤모델이었고,

일을 더 잘 해내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차석에게 인사발령이 났다.


승진하면서 자리를 옮기는 것이기에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웃으며 인사를 나눴지만,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훨씬 컸다.


한동안은 공허했다.


새로운 차석으로

자리는 채워졌지만,

더 이상 그녀만큼 편하게

업무 조언을 구할 사람도,


그녀만큼 뚜렷하게

소신을 지키는 사람도

이제는 찾기 어려웠다.


그녀는 단순히 나에게 도움을

주던 동료 그 이상이었다.


불합리한 지시에도 묵묵부답,

또는 내 일 아니면 전혀 상관하지 않는

이 각박한 조직 안에서

그녀는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며,

자신만의 기준과 가치관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배웠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건 없구나.'


'모두가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정답은 아니구나.'


회사생활하며 자주 만나지

못할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녀와 함께 일했던 시간들은

언제 생각해도 늘 애틋하고

감사하다.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중심을 가진 사람은

조직 안에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욱

빛나게 한다는 것을,


나는 그녀를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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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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