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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신입 때 이 시간이 제일 어렵더라구요.

39.

by 긋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면

모든 순간이 낯설고 어렵다.


업무를 배우는 것도,

상사의 지시를 이해하는 것도,

동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의외로 가장 불편하고

어려웠던 시간이 있었다.


바로 식사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평소 다정다감한 표현이

많지 않았던 터라,

취직하기 전까지는

숟가락, 젓가락을

꺼내주는 것조차도

잘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엉덩이가

무거웠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던 내가

조직에서 막내 역할을

싹싹하게 해내기란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당연히 처음에는

멀뚱히 앉아있었다.


그러면서도 눈치는 있으니까,

다른 직원들이

생존하는 방식을 지켜봤다.


식사시간은

치열했던 밥벌이의 시간을

잠시 잊고

머리를 식히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었다.


함께 식사하는 무리에서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있는 자들에게는

더 분주한 사회생활이

계속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리에서의 막내는

많은 일을 한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어느 자리가 가장 적합할지

짧은 순간에 스캔을 마치고,

일행들을 리드한다.


그리고 메뉴판을 내보이며,

이곳의 베스트 메뉴를

재빨리 포착하여

상사에게 공유한다.


메뉴 선택이 끝나고 나면,

테이블 세팅이 시작된다.

수저 밑에 냅킨을 까는 것이

실제로는 그다지 위생에

좋지 않다고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사회생활의 공식이니

그대로 따를 뿐이다.


그렇게 수저와 물 세팅이 끝나고

음식이 나오면,

상사의 식사 속도에 맞춰

부지런히 밥을 먹는다.


그러나 신나게 먹다가도

어떤 반찬의 그릇이

보일 듯 말 듯 한 순간이 오면,

자연스레 반찬 리필도 잊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밥 한 끼 먹을 뿐인데,

회사 막내에게 식사시간은

아무도 모르는 고독한

사회생활 신고식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회의 보이지 않는

규칙들에 나를 맞춰가며

조직에 적응하게 된다.


이제는 굳이 회사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몸이 먼저 움직이고,

눈은 더 챙길 것이 없나

할 일을 체크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신은 아직 거부하는 것이

남아있는지,

직장인 9년 차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혼밥이 최고인 건

왜일까.


연차가 높아질수록

단 한 시간 만이라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싶은

욕구가 더욱 강해질 뿐이다.


비단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dfdff.png 긋다(@geut__ta)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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