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나는 미용을 전공했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대학생활을 지나
취업을 했지만,
막상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 당시 세상은
우리 세대를
'88만원 세대'라고 불렀다.
더불어 '열정 페이'라는
신조어가 이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벼랑 끝에 내몰리다
간신히 취업을 했지만,
낮은 급여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사회초년생의
모습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88만원 세대로서
열정페이를
받는 20대였다.
그 차가운 현실을
절감하게 된 건
면접 볼 때부터였다.
'처음 6개월은
교통비 정도만 지급되는데
괜찮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던 것 같다.
그리고 뒤이어
숨 돌릴 틈도 없이
채용담당자는 그렇게
지급되는 급여의 정당성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수석 아티스트의 노하우를
다 배우고 성장할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돈 벌기보다
배운다는 생각으로
일하셔야 해요."
"아, 그리고 출근 시간은
예약 고객의 스케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유동적일 수 있어요."
.
그 이후에도 여러 곳을
더 면접 보러 다녔지만,
비슷한 근무 조건을
반복해서 듣고 나서야
이 업계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결국 시작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을
포기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대학 동창이었던 한 친구는
나와 다른 선택을 했다.
그 친구는 그럼에도
팍팍한 미용업계에서
열정페이를 받으며
묵묵히 꿈을 향해
걸어가는 길을 택했다.
하루에 12시간은
기본으로 일했다.
수석 디자이너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또래, 선배 사이에서
생기는 텃세도 버텨가며
끈질기게 버텨냈다.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급여는 너무나도 초라했지만,
그 친구의 눈빛은
묘하게 힘이 있었고,
볼 때마다 강단 있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어떻게 이 힘든 걸
다 버텨낼 수 있어?"
그 친구는 너무나도
무던하게 대답했다.
"난 이것만 생각해 왔어서.
이거 말고는 다른 인생을
꿈꿔본 적이 없어."
친구의 대답은 단순했지만,
나는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같은 꿈을 품었지만,
그 꿈을 대하는 방식은
달랐다는 것을.
나에게 그 꿈은
'해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였을 뿐이었고,
그 친구에게 그 꿈은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 말속에는
포기할 수 없는 절실함과
동시에 다른 선택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이제 그 친구는
대형 뷰티숍을 운영하며,
대표 원장으로서
그 당시 내가 꿈꿨던
멋진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우여곡절 끝에
그 당시 다수가
정답이라고 했던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뒤늦은 방황을 또 겪고,
좋아하는 일을 병행하며
고군분투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삶이 정답일까.
그 친구의 길은
안정적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길을 믿고
걸어갔고,
나는 안정적인 길을
선택했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길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하나의
정답을 확신하고,
그 정답만이 유일하다고
강요한다.
하지만 그 정답 역시
'다수의 선택'일뿐,
인생에서 리스크가 제로인
확실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 친구를 통해
또 한 번 배웠다.
원하는 삶을 향해
달려가는 그 길이
그 친구처럼 일직선이어도
좋고,
나처럼 지그재그여도 좋다.
다만 진짜 내가 원하는
내 삶의 정답을
한 번쯤은 찾아보기를 바란다.
내가 걸어가는 길이
설령 지금은 남들보다
더 늦은 것 같아도,
나만 멈춰있는 느낌이 들어도,
나중 일은 절대 알 수 없다.
지금 그 친구가
나보다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듯이,
인생은 정말 끝까지
살아봐야 안다.
그러니 나만의 속도로
담담하게 걸어가기를.
그 길 끝에서 우리는
각자가 후회 없는 정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진짜 나의 삶을 되찾는' 그림 에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