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성장 시대에서.
취준생이 가장 열망하는 것은
‘진로선택’이라는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취업에 성공하면
정해진 자리를 찾고,
그저 열심히 나의 일을 해나가며
자연스레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도무지 나의 일로써
'나'를 설명하기가 힘들어졌다.
정년이 보장되어 선택한 일은
구태의연한 업무 방식으로 매일이 괴롭고,
대우가 좋아 선택한 직장 역시
거대조직의 위계문화가 나를 짓누른다.
적성에 맞을 법한 일에 이끌려
옮긴 직장은 당연히 생계가 팍팍하다.
분명 확실한 직장이 있는데도,
나의 일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불확실해진다.
과거 세대들도 모든 게 마음에 들어서
‘내 일’이라고 받아들였을 리는 없을 텐데,
우리가 괜한 투정을 부리는 게
아닌가 싶어
철없는 모습으로 비칠까
가끔 위축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성실하게 한 우물만 파면
평균만큼은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절대적인 믿음이 존재했다.
삶의 불변이라 믿었던 진리가 사라진 지금은,
그 어떤 강력한 동기도 우리에게 닥친
내리막 미래 앞에서
지속적인 힘을 내지 못한다.
독일의 철학자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나누었다.
노동은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활동,
작업은 인간이 창조하는 활동,
행위는 타인의 앞에서 생각을 말하고 실천하는 활동이다.
즉 노동은 생물학적인 욕구,
작업은 창조적 욕구,
행위는 인정 욕구로써,
이 세 가지 활동은
인간이 지닌 세 가지 욕구에서 파생한 것이다.
고대 계급사회에서는
각자의 신분에 따라 한 가지 욕구에만 충실했다.
노동은 노예의,
작업은 장인의,
행위는 귀족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세 가지 활동의 구분이 사라진 시대에서
살고 있다.
노예, 장인, 귀족이 하던 그 모든 욕구를
이 ‘일’ 하나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제 그 어느 누구도
일을 그저 '밥벌이'로서,
정의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단지 노동자의 모습이 아닌,
'일'이 나를 대변해 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도 든든하고,
마음이 자유로운 일을 찾는 것은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충족하고 싶은 다양한 욕망들 중
각자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나에게 최선인 균형점을 발견해야 한다.
어차피 시간이 더할수록
먹고사는 문제는 점점 치열해지고,
생존경쟁에서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허덕이는 세상은 만연해질 것이니,
일의 불확실함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운명의 수레바퀴가 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긋다 (@geut__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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