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무화과 숲'

다섯 번째 시

by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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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 주방에서도 쌀을 씻다가 창밖을 보면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입니다. 숲에 무화과나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때에 따라, 때에 맞게 색깔과 모양을 바꾸는 성실한 숲이에요. 그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 하나를 머릿속으로 그려 봅니다. 밥솥에 쌀을 안치고 밥이 다 될 때까지도 그 사람은 같은 길로 다시 나오지 않아요. 들어간 길로 다시 오지 않는다면 다른 길로 나갔을 법한데도 화자는 한 번 더 보고 싶은 간절함에 온갖 무서운 상상을 했겠지요. 숲에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야생 동물의 공격을 받은 것은 아닐까, 찾으러 가야 하나. 쌀 씻던 창가에서 꽤 오랫동안, 꽤 애타게 기다렸던가 봐요. 기다리던 시간이 혼이 나갈 정도로 힘들었던가 봐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혼나지 않는’의 표현이 ‘식겁하지 않는’의 뜻으로 읽어지네요. 사랑은 식겁할 일이라는 무의식이 이렇게 드러나네요. 그래도 다행히 ‘옛날 일이지’하며 끼니를 챙겨 먹고 밤잠을 청하는 화자를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밥도 먹고 잠도 자면서 담담하게 회상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나서 다행이에요. 이제는 꿈에서도 식겁하는 종류의 사랑은 하지 않는 시절이 되었나 봐요.


쌀을 씻을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나서 창밖을 내다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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