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시
바닥 깊숙이 내려앉아 손을 놓고 수년을 지냈어요.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오랜 바닥 생활의 불안과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생존 본능이 지푸라기를 잡더라고요. 일상을 공유하는 가족 구성원에게는 차마 바닥의 감정을 털어놓지 못하겠고, 급한 불 끄듯 혼자 글로 퍼내기 시작했어요. 글에 잠시 기대앉을 수는 있었지만 이내 다시 바닥에 엎어지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지난여름, 잠시 한국에 들어가서 오랜, 그리고 유일한 친구를 만났어요. 처음으로 바닥의 감정을 말로 털어놨어요. 그랬더니 친구는 욕을 한 바가지 건네주었어요. “너는 인간이 왜 그러냐. 수년간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제야 말을 하냐. 고작 일 년에 한 번, 길어야 반나절, 만나서 뭘 물을 수도, 확인할 수도 없었다. 일부러 만날 때마다 나의 오만 지질한 일상을 다 까발리며 너도 너의 돌덩이를 목구멍 밖으로 꺼내기를 기다렸는데 이제야 하냐. 나한테 말을 안 하더라도 주변에 한 명이라도 말할 사람이 있겠지, 옆집 아줌마한테라도 말하면서 살고 있는 거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그것조차 아니었냐. 가까이 있었으면 5도, 10도만 비뚤어져도 눈치채고 정신 차리라고 ㅈㄹ할 수 있지만 멀리 있으니 이렇게 90도가 틀어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안 거 아니냐 (…)”
제 바닥을 받쳐준 건 친구의 욕바가지였어요. 25년 전에 처음 만나 신촌을 누비며 부대찌개, 돈가스, 치킨, 순두부, 계란말이 등을 함께 먹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서로의 흑역사를 라이브로 관람하며 서툰 위로를 한 땀 한 땀 주고받았지요. 그 서툰 바느질도 25년 경력이 쌓이니 엎어져 있던 바닥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는 방석을 만들어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