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어떤 그림'

열두 번째 시

by 김혜민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그림 같다’고 표현하곤 하지만 사실 그림 속이 아름답기만 한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호그와트에 걸린 초상화 중에는 심술궂은 인물들도 꽤 많고, 메리 포핀스가 들어갔던 풍경화 속에도 반목이 있더라고요. 시 속의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자신’을 깊게 보았네요. 비슷한 아픔과 슬픔과 불안을 발견하고 나의 그것인 듯 만지고 쓰다듬으며 위로합니다. 각자의 공간에서 홀로 버티다가 이제는 손을 잡고 서로의 공간을 함께 넘나들 수 있게 되었어요. 수동적으로 배정받은 공간에서 ‘관람객’의 행동만 지켜보며 각자 움츠려 있던 두 사람이 비로소 ‘자신’을 주시하게 되면서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을 능동적으로 넓혔어요. 자유로워졌네요. 그림이 아무리 따라다녀도 두 사람을 그림 속에 넣지는 못할 것 같아요. 아마 두 사람은 미술관을 때려치우고 더 넓은 세상을 찾아갔을 것 같아요. 여전히 슬프고 아프고 불안하겠지만, 함께 슬프고 함께 아프고 함께 불안하면 그래도 살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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