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시
표정의 8할은 눈동자가 결정하는 것 같아요. ‘내 눈앞에 있는 다른 눈동자’ 두 개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형성하는 메시지는 영향력이 매우 크지요. 꿀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욕을 퍼붓기도 해요. 그래서 달콤한 눈빛에 위로를 얻다가도 서늘한 눈빛에 마음이 베이기도 하고요. 그나마 눈동자를 보여주면 다행이지요. 아예 시선을 피해 숨겨버린 눈동자도 있어요. 숨기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대신 눈동자를 숨기죠. 하루에도 수십 개의 눈동자를 보거나 스칩니다. 사회적 존재로 태어난 멍에기에 적당히 ‘눈치’도 살피며 알맞게 대처하며 살아야 하지만 가끔(자주) 그 모든 눈동자가 버거워질 때가 있어요. 눈앞에 아무 눈동자도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요. 잠잘 때 눈동자를 덮는 인체 구조는 신체적 피곤을 회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사회적 피로로부터 인간을 지키려는 시스템이 아닌가 싶어요. 내 눈동자를 덮어버리면 다른 눈동자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니까요. (물론, 눈을 감는다고 다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뒤통수를 따갑게 하는 레이저 눈동자도 있으니까요)
곰돌이 패딩턴이 루시 이모에게서 배운 처세의 기술이 있지요: 예의와 존중을 잊은 사람에게는 ‘hard stare(정색)’를 날려라! 런던에 가면 페루 정글에선 겪어 본 적 없는 눈동자들을 마주치게 되리란 걸 이모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결국 루시 이모가 패딩턴에게 부착해 준 비상시 ‘정색’ 버튼은 패딩턴을 차별과 편견과 무례의 폭력적인 시선으로부터 지켜주는 방패가 되었고요. 소심하고 겁 많던 '어린 혜민이'에게 누구라도 루시 이모의 지혜를 알려줬다면 지금의 혜민이는 조금 덜 찌그러진 자아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지나간 생은 어쩔 수 없으니 남은 생이라도 '내 눈앞에 있는 다른 눈동자'를 필요시에는 단단하게 바라볼 수 있는 정색 버튼을 지니고 살고 싶어요. 테스트를 좀 해 보긴 해야 하는데, 잘 작동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