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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진문화연구소 Jul 09. 2020

[15호] 뜨거운 한 낮이거나


Life | 뜨거운 한 낮이거나

김서연 회화작가


지하철에 몸을 구겨가며 강의를 들으러 오던 나날이 흐릿해질 쯤 자연스레 학교의 행정업무로 하루를 보냈다. 매 달마다 지급되는 급여와 사대보험에 홀려 일을 했다. 각지고 껌벅이는 조명으로 더 누래보이던 사무실에서 책을 몇 장 읽거나 드로잉을 하면 시간이 지나곤했다. 어떤 날은 시집을 펼치며 감정에 묻혀버리기도 했는데 한동안은 높이를 정하지 못 하기도 했다. 요즘 SNS에서 빈번히 보이는 과몰입에 쉽고 빠르게 사례로 제시될 수 있을 것 이다.    


심드렁한 사무실에서 작업을 구상하며 공상을 하거나 주말에 다녀갈 전시목록을 정리하고 페인팅 이미지를 모았다. 미술에 혼자만 아는 소속을 부여하는 안일한 태도는 오히려 불안이 선명해졌다. 어쩌면 고립되지 않기 위해 서울에 위치한 작업실로 향하는 행동 또한 미술에 속하려는 발버둥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물리적 거리로 소속감을 정당화 하다보면 동경의 마음이 거대해진다. 허공에 손짓하는 스스로가 한심해지던 나날 이였다.


청구전을 마치고 불분명한 소속과 존재감으로 아슬아슬한 형세를 유지하던 시기에 자양동의 작업실로 갔다. 작업실은 학교에서 30분 정도의 거리였다. 오토바이 여러 대와 꽈배기, 치킨집이 나란히 있던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는 듯했다. 슈퍼와 대형마켓의 중간 쯤 되어 보이는 마켓에서 물티슈나 초콜릿을 산다. 지금은 사라진 작은 카페의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걷는 거리는 언뜻 본가 근방의 골목처럼 한국의 흔한 골목길 풍경이다. 작업실은 널찍한 지하에 노란페인트가 발려 있었고 벽 한쪽은 거울로 되어 그림을 그리는 나와 마주치곤 했다. 하루라도 놓칠까 박박 우겨대며 기록하던 작업과 드문드문 함께 먹던 칼국수와 묵은지 초밥이 떠오른다.

   

작업은 생활에 지속성을 가하며 증폭하거나 충돌하지만 구의역 근방의 드러그스토어로 걸어가며 나누던 사사로운 이야기와 같은 정서를 유지 할 수 있도록 생활과 작업의 균형 맞추는 방법을 찾던 때에 작업실을 이사했다.     

학교 후문에 위치한 군자동의 작업실에서 지낸지 1개월이 흘렀다. 어색한 감정은 서로의 아이템을 선물하던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가라앉았다. 퇴사를 하고 반려동물 입양을 꿈꾸며 건대입구역의 대형마트에서 코끼리 인형을 샀다. 회색 몸과 분홍 귀의 인형은 코끝이 접혀 있었다. 환상 속에 존재하던 강아지는 작업실에서 웹사이트를 통해 만났다. 찾아 이어줬다고 해야겠다. 파양된 강아지였던 검정의 어린 동물은 찌부가 되었다. 강아지와 같이 사는 삶이 난생 처음이라 동영상 공유 사이트와 커뮤니티를 기웃거렸다. 강아지의 행동으로 알려주는 언어 이미지와 동물훈련사의 동영상을 보며 찌부를 살폈다. 등을 돌리고 앉아 미동 없던 찌부는 가만히 두 눈을 끔벅대다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 걷는 산책길은 두근거렸다. 찌부의 ‘헥헥’ 거리는 숨소리에 따라 얼굴에 땀이 맺혔고 한 동안 풀밭에 코를 대고 킁킁대던 찌부가 배변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찌부는 코를 골며 잠들었다.     


백수가 된 나는 며칠간 출근 시간에 눈을 떴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나는 대낮에 일어나 세탁을 하고 가끔은 머리카락을 쓸고 닦는다. 적금을 몽땅 깼고 자취방을 이사했다. 1층 현관에 도어락이 있는 나와 찌부의 새로운 집은 작업실 10분 거리에 있다. 작업실 사람들을 빌라 계단에서도 만나게 되었다. 곧 현관문을 열다가 만날 것 같다. 나는 종종 찌부와 함께 작업실에 갔다. 높은 기온에 지친 찌부는 작업실에 도착해서 물을 할짝거리다 바닥에 배를 깔고 눕곤 한다. 이 사람의 무릎과 저 사람의 무릎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다니는 찌부를 쓰다듬는다. ‘아구 예쁘다… 아구 예쁘다….’ 나와 찌부는 살이 쪘다. 간식을 많이 먹는다.    


가죽 소파에 나란히 앉아 어떠한 사건이나 시리즈물을 노닥이다 시뮬레이션게임을 하거나 공모, 전시, 공간, 신간 도서를 이야기하다보면 밤이 드리운다. 난데없이 생각한다. 창작 지원금을 받고 싶다. 그리다 만 그림, 뜯어버린 그림은 확신 때문인가. 확신이란 무얼까. 나는 작업에 수식어를 덧붙여 수치스러움을 느끼고 싶지 않다며 허세를 부리곤 했다. 서투른 태도는 무기력을 불러내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단념하게 만들었다. 억지로 짜내던 소속감은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염원한다. 



김서연| 회화작가    Instagram| @jji.boo

반려견 찌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광진구 군자동 작업실에서 주로 회화를 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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