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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진문화연구소 Dec 09. 2020

[20호] 문화는 사람을 키우고...


Life | 문화는 사람을 키우고, 사람은 문화를 키운다

이기완(느린나무)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광진문화재단 지역문화 사업과 함께하며, 저의 사유를 대입시켜 3년 동안 사진을 담아왔습니다. 수많은 인터뷰에 동행하며 광진구에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는지, 어떤 태도와 지향을 품고 자신만의 이야기 풀어내는지 혹은 풀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분들을 보며 지역문화는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와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간혹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이 공간을 만들었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것은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를 아직 만들어 가는 중이거나, 자신의 지향점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기억에 남는 분들의 이야기를 잠시 나누겠습니다.     


필름 사진을 찍는 것이 좋아 취미로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고, 그 취미는 곧 필름 사진이 아닌 필름 현상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홀로 필름을 현상하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 아닌 사람들도 필름 사진에 관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그들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사람들이 필름 사진과 관련한 취미를 갖고 싶어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광진구 자양동에서 필름 현상소를 시작하며, 사진을 조금 먼저 한 사람이 새로이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와 동행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필름 사진만이 가진 감성과 감정들이 사진과 사람으로 이어지고,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또 건설업계에서 평생을 일하시다 자신이 가장 오래 해왔고, 가장 익숙한 나무로 공방을 만드신 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생업이면서 취미이기도 한 공방. 켜켜이 쌓인 삶의 이야기를 목공이라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내셨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골목길 속 귀여운 입간판들과 도마, 나무 잉어들은 익숙하지만 낯섦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거대 자본으로는 할 수 없을 잔잔한 파동들이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이어지고, 그 이어짐은 소소한 감동이 되어 우리에게 불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동네 아이들에게는 작은 꿈이 성장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요. 


개인적으로 ‘문화’란 개인이 가장 즐거웠던 아주 작은 습관과 아이처럼 몰입했던 순간들이 모여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예쁘고 멋진 곳이 아닌 가장 일상적인 일들이 쌓이고 쌓인 곳, 나의 익숙했던 습관과 몰입해 온 순간들이 모여 사람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문화가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광진구라는 곳에서 느낀 문화는 ‘건대’라는 이름과 젊은 친구들의 ‘술’ 문화였습니다. 다른 문화 생태계가 있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이러한 곳에서 ‘사람이 문화’라는 관점을 가지고 광진구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은 바로 담당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거 공공기관들은 ‘문화’를 보았던 게 아니라, ‘행정적인 문화’를 보아 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역 예술가나 기획자(활동가) 그리고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뷰 초반에만 해도 광진구 예술가들은 광진구를 ‘문화의 불모지’라고 여기며 본인들을 ‘문화 빈민’이라 칭하는 모습을 자주 마주했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모습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역 내에서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가며 광진구에 대한 애향심과 자긍심을 느끼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사람과 사람의 이어짐이 없는 지역은 문화의 씨앗을 심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어디든 자양분과 씨앗이 있지만 그 곳에서 자양분과 씨앗을 찾고 키울 사람이 없다면 그 지역은 어느 누구도 지역에 애정과 관심이 없는 곳이라는 반증이 되겠죠. 아니면 키울 수 있는 사람을 키우지 못함일 수도 있고요.     


두서없이 말했지만 이렇듯 개인이 가지고 있는 취향과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문화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광진구 안에서는 바로 이 <나루사이>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보아 온 <나루사이>는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성장과 성숙 그리고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진구와 구민들을 계속 담게 되나 봅니다. 마지막 문장 하나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문화는 사람을 키우고, 사람은 문화를 키웁니다.       


이기완(느린나무)ㅣ 충남 어느 시골에서 나무 한 그루 담아내는 동네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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