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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진문화연구소 Dec 17. 2018

[6호] 나루생활사_무대와 객석의 흔적



무대와 객석의 흔적 


 사람마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나는 공간을 마음에 담아두는 습관이 있다.

며칠 전 사회초년생 시절을 함께 보낸 직장동료를 만나, 그때의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에 나는 영화 마케터로 일했었는데, 우리가 서로 공감했던 부분은 그때가 진정한 호시절(好時節)이었다는 것이다.

동료들과 함께 정의 내린 것도 아닌데, 나는 그 과거의 시간들을 언젠가부터 ‘후암동’ 시절로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다. 그 후암동 시절, 내 마음속에 가장 멋들어지게 담은 기억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나, 유명한 영화배우들을 보았던 기억이 아닌, 사무실 주차장에 펼쳐지는 남산의 야경이었다.     

 

최근에 그때가 그리워져서 혼자 후암동 근처를 둘러보고 왔다. 소소했던 후암동은 어느새 루프탑과 예쁜 카페들이 있는 소위 ‘핫 플레이스’로 거듭났지만, 나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사무실 주차장에 펼쳐졌던 그 야경 앞에 이르렀을 때야 비로소 한숨을 내쉬었고, 찡해오는 마음을 달랬다.       

 

과거의 일상, 여행의 기억, 보고 싶은 사람들 등, 무언가를 추억할 때면 이렇게 나는 곳곳에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은 나만의 아지트로 향한다. 어느새 후암동은 아주 흐릿한 추억이 되었고, 몇 회의 머무름과 떠남을 반복하다가, 이 곳 광진구에서 3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곳에 내 나름대로의 아지트를 만들어 왔지만, 그런 공간을 만들려고 일부러 노력을 해왔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의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근데 이 곳 에서의 시간들은 유독 정신이 없었던 터라, 딱히 떠오르는 공간이 없어 서글퍼졌다. 가끔 점심시간에 뚝섬유원지에서 멍하니 한강을 바라보고 돌아오곤 했지만, 너무 답답해서 달려간 생존의 공간이었지, 끌리는 공간은 아니었다.

 

‘나루’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요즘, 나의 공간은 거의 대부분이 건대입구-나루아트센터-건대입구... 의 반복이다. 로데오거리, 양꼬치 거리, 그리고 밤이면 매우 활기찬 이 대학가 주변과는 단절된 일상을 보내는 느낌이다.      

글을 쓰려고 마음을 고르며, 나도 이제 이곳에 노력을 해서라도 아지트를 하나씩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새삼스럽게도, 나는 내가 이미 그 아지트를 만들어 오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광진구라는 공간이 얼마나 큰 흔적이었는지를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나루아트센터의 상주단체 기획자로, 광진구에 거점을 두고 많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사무실-집을 왔다 갔다 하듯이, 광진구 안에서의 나의 활동구역은 건대입구역부터 사무실이 있는, 나루아트센터이다. 그 짧고 반복되는 이동 동선이 무의미한 날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날들을 섬세하게 지나쳤던 것 같다. 

이를테면 늘 반복되는 출퇴근 속에서도 공연일이 다가오면, 지하철 입구부터 나루아트센터까지, 어떻게 하면 잘 도착할 수 있는지 동선에 관한 연구를 했다. 관객들의 질문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이 있는 날이면, 퇴근 후 사무실 문 앞을 나서며 공연 때 연주할 곡들을 찾아서 들었다. 나루아트센터에서 집까지 약 한 시간 반. 그렇게 음악을 듣기 시작하여 집에 도착할 때가 되면, 모든 공연 프로그램이 내 핸드폰에서 끝나 있었다.

조금 우습지만, 공연장 근처의 백화점이나 지하상가들은 리허설이나 케이터링을 준비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많은 식당들은 연주자들의 뒤풀이 장소의 후보들이었다. 모든 곳이 공연의 연장선이었다.

 

나루아트센터의 대공연장이나 소공연장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특별히 나에겐 무대이기보단 백스테이지였고 객석이었다. 그 누구보다 애틋하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바라봤던 무대.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만큼 텅 비어버리는 마음을 늘 추슬러야 했던 공간.

하지만 이 무대라고 정의 내려진 공간만이 나에게 무대는 아니었다. 소규모 실내악 공연인 살롱 콘서트를 진행해온 연습실이나, 구민들에게 찾아가는 공연을 진행한 광진구 내 복지관, 학교, 아파트, 어린이 대공원 등 모두 나에겐 소중한 무대였다. 

그리고 많은 구민 분들이 나에겐 관객이었다. 이 곳 광진구는 나에게 현재 진행 중인 무대이고, 곳곳이 백스테이지였으며, 객석의 흔적이다. 

 

강서구에서 광진구까지, 나에겐 하루하루가 너무나 멀고 긴 출퇴근길이다. 20년 넘게 산 강서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은 광진구이지만, 나는 아직도 이곳을 잘 모른다.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호흡해야 하는 상주단체 기획자로서, 내가 광진구를 더 가까이 느끼고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점은 늘 아쉽다. 그럼에도 이곳에서의 반복되는 발걸음과 모든 흔적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광진구는 어떤 기억의 공간일까. 그들 나름의 아지트는 어디일까 궁금해진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그리고 훗날의 나에게도 이곳은 무대라는 이름으로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더 욕심을 부리자면, 우리 단체가 함께 했던 그 무대들이 누군가의 숨을 틔우는 아지트였길 희망한다.  

                     


김지수

나루아트센터의 클래식 음악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상주단체, 클래시칸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Instagram : jsrosakim_ / e-mail :  send2jis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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