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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작 Feb 15. 2022

쓸개 없는 사람이 됐다. 1-2

오전 8시에 동네 내과를 가고 오전 11시 대형병원 응급실에 가고 오후 6시, 또 다른 3급 병원에 실려왔다. 코로나라 병실이 텅텅 비어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내가 몸을 뉘울 수 있는 베드는 단 하나도 없었다. 결국 난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진짜 속 타는 건 내가 이제 말짱해졌다는 거다. 앞서 병원에서 맞은 수액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은 것. 그래서 남편에게도 말했다. '집에 가고 싶어. 수술 날짜 잡고 온다고 하자!' 그리고 내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일단 CT를 찍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이왕 온 김에 검사란 검사는 다 받아보자! 는 마음으로 검사를 진행했다. 휴. 이제 집에 갈 수 있겠지? '선생님. 저 몸에 돌 있는 거 알고요. 빨리 수술해야 한다는 것도 알구요.. 근데 제가 다음 주가 녹화라서요. 저 녹화만 마치고 수술일정 잡으면 안 될까요?'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날 한심하게 쳐다보던 선생님의 눈빛을. '환자분. 지금 몸속에서 돌이 튀어나올 것 같아요. 만약 이대로 가시면 패혈증이 올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패혈증? 패혈증이 뭐지? 기사로 본 것 같은데. 갑자기 죽는 뭐 그런...? K.O  결국 난 수술 전 난생처음 들어보는 시술을 먼저 하게 됐다. 돌이 튀어나오지 않게 몸에 관을 넣어주는 작업이었다. 내시경으로 하는 아주 간단한 시술이라고 했다. 


건강 검진할 때마다 내시경은 늘 하던 거였고 깬 적도 없으니 그 정도쯤이야 하고 대기실로 향했는데 기차 통을 삶아먹은 듯한 의사 선생님의 샤우팅이 복도를 울렸다. '환!!!! 자!!! 분!!!!!! 가!!!! 만!!!!! 히!!!  계!!!!!! 세!!!!!!!! 요!!!!!!!!! 다!!!!!!!! 쳐!!!!!!!!!!! 요!!!!!!!!!!' 아니 뭐 저렇게 소리를 지르셔? 그리고 내 차례가 다가왔다. 마취과 선생님이 약을 쑥 넣어주는데~ 의사 선생님 왈 '너무 많이 넣는 거 아니야?' '에이~ 딱 봐도 깰 것 같은데요 뭘....' 네? 깰 것 같다뇨. 저 단 한 번도 깬 적 없는 사람이에요 하고 베드에 몸을 눕혔는데.. 눈이 떠졌다. 와 씨 이거 뭐야. 내 입안에 호스가 들어가 있고 성대를 찌르는 것 같은 아 기분 나쁜 이물감. 그리고 내 앞에서 샤우팅을 외치는 의사 선생님 '환!!!! 자!!! 분!!!!!! 가!!!! 만!!!!! 히!!!  계!!!!!! 세!!!!!!!! 요!!!!!!!!! 다!!!!!!!! 쳐!!!!!!!!!!! 요!!!!!!!!!!' 그렇다. 난생처음 수면내시경을 하다가 깬 것이다. 와 진짜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내 인생 최악의 경험이었다.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고통 끝에 돌들은 더 이상 다른 장기로 굴러가지 못하도록 막아놨으니 일주일 후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참, 담낭 수술은 진짜 마음먹고 계획하면 2박 3일 만에 끝낼 수 있는 수술이다. 당일 수술하는 곳도 있다. 그럼 난 왜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게 됐느냐. 수술을 미루고 미뤄서다... 


정신을 좀 차리고 먼저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지금 병원에 왔는데 수술을 해야 한대. 그래서 네가 준 알바 못하게 될 것 같아. ' '헐. 괜찮아?' '응. 담주에 수술하기로 했어.' '누나. 누나 주변에 그럼 이거 아르바이트해줄 사람 있어? 사람 구해야 하는데...''야. 야. 야! 니 누나가 지금 병실이 없어서 응급실에 있는데 사람을 구해달라고? 지금 내가 생사를 넘나들며 수면내시경을 끝내고 왔는데!!!' 이 말이 진짜 입 밖으로 쏟아질 뻔했지만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네가 알아서 해야 할 것 같다고 마무리를 지었다. 인정머리 없는 놈. 택시 안 잡아줬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모든 검사를 마치고 제일 먼저 전화를 한 건 아빠도 엄마도 아니었다. 메인작가님이었다. '오빠.. 저 시술이 아니라 수술을 해야 한대요.' '뭐???' '웃기죠. 저도 너무 웃긴데... 수술이 다음 주로 잡혀서 녹화장에 못 갈 것 같아요. 그리고 다음 게스트 사전 인터뷰도 해야 하는데.. 제가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자료조사도 해놨고 전화 인터뷰만 하면 되니까. 제가 해볼게요!''아냐 아냐. 그냥 쉬고. 살아서 봐. 살아서. 너의 일은 우리가 해결할게.' 사실 방송작가들 중 이렇게 2주간의 땜빵이 생기게 되면 '미안한데, 일을 그만둬줘야 할 것 같아'가 대다수인데.. 푹 쉬고 살아서 보자니. 이 한마디가 나에겐 엄청 큰 힘이 됐다. 


응급실에서 이틀을 묶은 후에야 6인실 병실을 배정받았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아빠가 병실에 있었을 당시에 이런 냄새는 안 났던 것 같은데 이 고약한 냄새들은 뭐지? 싶었다. 그 냄새의 정체는 대소변이었다... 아빠는 정형외과로 병실에 계셨기 때문에 화장실을 자유롭게 갈 수 있었는데. 여긴 암병동이었기 때문이다. 축축 비는 내리지 환자들 때문에 에어컨은 세게 틀 수도 없지. 1인실이 없냐고 했지만 1인실, 2인실을 웨이팅을 걸어놔도 퇴원 때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창가, 문가였으면 했지만! 난 가운데 딱 끼고 말았다... 하지만 그곳에 짐을 풀어헤친 후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모든 걸 이해하게 됐다. 나 역시 아파서 왔고 모두들 아파서 온 거니까. 그리고 난 다짐했다. 병원에 간 친구들에게 '이왕 간 거 푹 쉬고 와'. 절대 쉴 수 없다. 새벽부터 채혈을 해야 하고 밥을 먹고 약을 먹고 X레이를 찍고. 시간은 가지도 않는다. 책, 노트북, 스마트폰이 없었으면 정말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싶은 그곳.  


그 와중에 또 이 병실 사람들에게 묘한 전우애가 생기기까지 했다. 우리 모두! 힘내서 빨리 퇴원합시다! 뭐 이런 마인드랄까? 그리고 이틀 내 퇴원하는 환자분이 생겼고 다른 환자로 신속히 베드가 채워졌다. 이번 환자분은 수술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섬망 증세가 심하게 오신 것 같았다. 계속 의사 선생님이 '올 해가 몇 년도죠?' 하는데 자꾸 2002년도라고 하시는 거다. 그분에게는 지금 이 세상이 2002년도로 보이는 걸까. 그분은 새벽마다 꽤 심한 섬망 증세를 보이셨다. 계속 소리를 지르고 대화를 하고. 5명의 환자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결국 다른 환자의 보호자분이 간호사에게 방을 바꿔달라는 요청이 들어갔다. 하지만 간호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 방이 제일 조용해요...' 


퇴원을 앞두고 계셨던 내 옆에 할머니는 갑자기  폐렴에 걸리셨다. 아니 무슨 이런 일이 이렇게 닥치는 거야 왜? 환절기 때 어르신들 조심하셔야 된다는 말을 정말 뼈저리 게실 감했다. 그리고 의사가 수면치료를 이어갈 예정이니 가족들을 모셔야 할 것 같다는 거다... 분명 새벽까지 달달한 과일을 드셨고 고향으로 내려가 수술을 하실 거라고 했는데. 갑자기 작별의 인사라니 이 무슨. 가족도 아닌 내가 정말 숨이 턱턱 막혀왔다. 것도 코로나로 인해 면회 오는 모든 사람들은 검사를 하고 와야만 했고 5분? 10분 그 짧은 시간만 주어졌다. 그걸 옆에서 듣는 건. 정말 힘들었다. 가족들은 울음바다인데 그 와중에 곧고 담담하게 말하던 할머니의 태도가 너무 슬펐다. '괜찮아. 내가 갈 때가 됐나 보다.' 난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병실에 있는 동안 내가 쓴 대본으로 녹화가 진행됐다. 베테랑 출연자들이니 내 대본이 없어도 잘하겠지만. 괜히 궁금해 녹화영상을 다운로드하여 혼자 낄낄대며 감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와. 나 여기서도 일하고 있는 거야?' 징그럽다 정말. 그리고 다음 게스트 자료조사까지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좀 쉬어!라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병원이란 곳은 절대 절대 쉴 수 없는 공간이기에 이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빠르게 흘려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수술 날이 다가왔다. 참고로 수술은 예정된 시간이란 게 없다. 대략만 알 뿐이다. 수술 순서는 나이대로 진행된다. 난 2번째였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가 보다. 정말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긴장된 자세로 콜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남편은 쿨쿨 코까지 골며 잠에 도취돼있었다. 새벽에 여기저기서 삐삐 울리는 소리들, 코드블루 코드블루 외치는 소리에 잠을 못 잔 것이다. 안다. 일하고 간호도 해주고 얼마나 피곤하겠나. 근데 마음은. 내가 지금 전신마취까지 하는 중요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잠이오니! 부글부글! 매섭게 남편을 노려보던 찰나! 콜이 왔다. 안내해주던 선생님은 걸어서 가시는 거면 괜찮을 거예요. 휠체어도 안 타고 베드에 눕지도 않잖아요. '그... 러게요'. 그렇게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에 가서도 대기를 한다.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며 내가 살다 살다 수술이란 걸 하는구나 싶던 그 순간, 목사님이라고 정체를 밝힌 한 남자가 찾아왔다.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목사인데 기도를 해줘도 되냐고. 아 그럼요! 해주세요 제발요! 저 무사히 끝낼 수 있게요. 무교인으로서 온갖 신이란 신에게 빌 예정이었는데 저야말로 감사하죠 그렇게 기도를 끝낸 후 진짜 수술실로 향했다.


차디찬 베드에 누워 생각했다. '마취에서 깨면 어떡하지?' 수면내시경에서 깬 적이 있기에 갑자기 긴장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저 마취에서 깨면 어떡해요?' 의사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전신 마취라는 건 전신을 다 케어하면서 마취하기 때문에 전신마취라고. 깨어날 일은 절대 네버! 없어요' 휴. 다행이다. 그리고 산소호흡기 같은 마스크를 3번 들이쉬고 모든 게 블랙아웃됐다. 눈 뜨니 회복실이다. 남편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을 보자마자 난 이런 말을 했더랬다. '안 자고 기다린 거맞지? 잔 거 아니지!!!' 남편은 속으로 생각했단다. '이 여자. 살았구나' 


수술은 성공리에 끝났다. 의사 선생님은 내 담낭 상태가 말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하얀 염증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어떻게 참았냐고 정말 아팠을 거라고. 그리고 수술 후 나온 돌덩이를 선물처럼 주셨다. 너로구나. 너였구나. 돌을 한 번 만져봤다. 정말 가볍게 뭉개졌다. 너 때문에 내가!!!! 울컥한 마음을 뒤로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이 찾아와선 '내일 퇴원하실게요' 

열흘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가장 듣고 싶던 소리였다.  메인작가님에게도 전화를 드리니 '살았니? 살았어! 살았으면 됐어!' 그렇게 난 살아서 퇴원 수속을 밟았다. 


수술을 미루지 않았더라면 2박 3일로 끝냈을 것이다. 갑자기 실려온 나는 10일간 병실 생활을 해야 했고 한 달 후에는 또다시 재입원을 해 돌이 굴러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놨던 관을 빼러 와야 했다. 수술 후 확실히 기력이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이제 예전처럼 체하는 일은 없다. 그렇게 난 쓸개 빠진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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