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작 Feb 17. 2022

돈이 이렇게 무섭다

과거 막내작가 월급은 80에서 많~이 줘도 120만 원이었다. 물론 지금은 최저임금제, 근무시간을 따져 많이 조정이 됐지만. 그때 나도 처음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책정된 금액은 80만 원이었다. 그래도 그땐 작가라는 타이틀을 받았다고 정말 좋아했었다. 첫 직장은 아리랑 tv. 채널 특성답게 모든 방송은 영어로 진행이 됐고 내가 맡은 프로그램은 장학퀴즈 영어판 버전이었다. 각 지역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선을 실시하고 (전부 영어)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녹화에 참여해 영어로만 퀴즈를 푸는 것. 아, 참고로 난 영어 1도 못한다. 초등학생들이 나보다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잘하더라. 심지어 예선 때문에 한 초등학교에 찾아갔는데 나의 고등학교 원어민 선생님을 만났지 뭔가. 근데 그 선생님이 너희 때 정말 힘들었다고. 여기 아이들이 의사소통이 쉽다고. 하하하하 그렇군요. 어색하게 웃으며 헤어졌을 정도.


 프로그램에는 각 나라의 경제, 문화, 지식 등 모든 것을 총망라한 퀴즈가 등장한다. 그리고 퀴즈의 정답을 공개한 후 실제 정답과 관련된 음악 연주가가 나오거나 전통음식, 전통의복이 등장해 늘 각 나라의 대사관과 긴밀히 연락을 취해야만 했다. 그들에겐 없는 게 없었다. 그때도 대사관을 통해 전통 의복을 한 번 대여했는데 와. 사이즈가 작아도 너무 작은 것이다. 보조 MC 몸에 들어갈 턱이 없었다. 메인 피디, 메인작가님은 머리를 싸매기 시작하다가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나의 체구가 정말 터무니없이 작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요?? 에이.. 라며 손사래를 쳤는데 그때 메인 피디의 한 마디가 나를 흔들었다. '출연료 줄게!' '얼마요?' '5만 원' 한 달 월급 80만 원인데 5만 원은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결국 난 태어나 가보지도 않은 나라의 전통의복을 입고 녹화장에 등장했다. 마치 술꾼 도시 여자들에 메인작가가 쫄쫄이를 입고 등장하는 것처럼. 그래도 그건 얼굴을 가려주기라도 했지.. 난 정말 세상 어색한 차림으로 그렇게 스튜디오에 등장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예선에서 봤던 작가 선생님이 왜 저러고 있나 했을 거다. 큰 소리로 자기들을 교육시키던 분이 갑자기 샤랄라 레이스가 달린 전통의복을 입고 등장했으니. 얼굴은 화끈거렸지만 최선을 다했고 PD님은 기념이라고 CD로 내 방송분을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 영상을 다시 한번도 찾아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사 때마다 CD를 늘 챙겨 다녔다. 그렇게 3.3%를 뗀 출연료라는 걸 난생처음 받게 됐다. 

 

 1년이 지난 후 다른 프로그램에 이직한 나는 여전히 막내작가. 그때  페이는 100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방송이 끝난 후 회식이 있었다. 그때 옆팀 피디님도 오셨는데 지갑에 현금을 다발로 들고 오셨다. 이거 다 너희들 거라고. 내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아씨 왜 그랬을까) 피디님은 먼저 막내들이 분위기를 띄워서 제일 잘 뛰운 사람에게 돈을 주겠다고 했다. (그 피디님은 기억도 안 나겠지) 취미가 독서, 영화인 나는 과감하게 손을 번쩍 들었다. 선배 작가 언니들, 피디들도 쟤가? 이런 눈빛으로 쳐다봤다. (참고로 난 술을 마시지 못한다.) 술 한 잔도 안 들어간 쟤가 왜 저러지? 그런 눈빛이었다. 그리고 난 과감하게 노래방에 숫자를 입력했고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네네. 2010년 대한민국 가요계를 씹어먹었던 괴물 같은 그룹! 미스에이의 Bad Girl Good Girl! (진짜 내가 정신이 나갔던 게 분명하다 지우고 싶은 흑역사다) 24살의 광기였다. 심지어 나 바닥춤 필살기까지 보였다.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도 그 당시 모습이 생생하다. 지금도 스스로 자괴감이 든다) 결과는!!! 무사히 택시를 타고 집으로 귀가했다. 내 손안에 5만 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회식 장소와 우리 집은 끝과 끝이었고 택시비를 주는 선배는 없었다.) 그때 그들은 즐거웠을 거다. 막내란 애가 바닥을 휘집으며 춤을 추고 있었으니. 사무실에서 농담이란 걸 한 번도 하지 않던 애가 말이다.


돈이 이렇게 무섭다. 


근데 지금은 그때 5만 원 때문에 춤을 췄던 나를 후회한다. 뭐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래도 분위기는 확실히 띄웠잖아. 하아. 지금도 어디선가 춤을 추고 있을 막내들이 있을 거다. (그 이후 선배가 된 후로도 여럿 봤기 때문) BTS 춤을 추는 피디, 섹시댄스를 추는 피디, 작가들... 근데 그들은 돈을 받기 위해서 추는 건 아니다. 정말 흥에 겨워 추는 것. 아. 난 왜 돈 5만 원을 받았을까. 그게 제일 후회스럽다. 그걸 시킨 피디도 잘못했고 춤을 췄던 나도 후회하고 반성한다 정말. 돈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쓸개 없는 사람이 됐다. 1-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