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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Sep 04. 2022

영화 이야기 <토이 스토리 2>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비는 때가 되면 내리는 것이지만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잠기고 상할 이유 없는 사람들이 상하고 죽을 이유 없는 사람들이 죽은 폭우 후에도 비는 무심히 온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한 줌의 여름을 거쳐서 시원해질 것입니다. 서늘해질 것이고 추워질 것입니다. 이병률 시인은 <당신이라는 제국>에서 “별이 몇 떨어지고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과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고 썼습니다. 별이 떨어진 날에도 시간은 흐릅니다. 많은 것을 다짐했던 연초가 오는 것을 빈 주먹으로 쳐다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무상함보다 나의 무상함이 먼저 다가옵니다.


미래를 오늘로 바꾸었던 전편과 달리 <토이 스토리 2>는 과거를 오늘로 데려옵니다. 영화 속에서 우디(톰 행크스)는 앤디의 실수로 팔이 뜯기고 무관심 속에 방치됩니다. 알에게 납치된 우디는 제시(조안 쿠삭)와 스팅키 피트(켈시 그래머)를 만나 자신이 우주 만화 영화가 나오기 전에 가장 인기 있었던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버즈와 친구들이 우디를 찾으러 오지만 앤디가 크고 나면 버려질 운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우디는 돌아가는 대신 박람회에 전시되는 편을 택합니다. 하지만 후에 마음을 고쳐먹고 진정한 적과 싸우게 되지요.


<토이 스토리 2>가 말하는 것은 결국 박제와 영원의 차이입니다. 박제라는 것은 말 그대로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시간이 정지한 것을 말합니다. 늙지도 상하지도 변하지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박람회의 유리장 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도 자신을 붙잡은 손의 체온을 느낄 수도 역할을 맡기고 영혼을 부여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습니다. 영화 속 장난감 수리공의 대사로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전시만 하세요. 가지고 놀면 망가집니다.”


그러나 장난감은 가지고 놀기 위한 것입니다. 버즈(팀 알렌)는 말합니다. “옛날에 어느 장난감이 가르쳐줬어. 중요한 건 어린이의 사랑을 받는 거라고.” 설령 찢어지고 상해서 무관심 속에 방치된다고 해도 나중에 아이가 자라서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는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라는 말이지요. 어차피 아이는 자라고 장난감은 상하고 부서질 거라며 우디를 설득했던 스팅키 피트의 말은 거울처럼 스스로를 거꾸로 비추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만지지 않고 관심을 주지 않아 다치지도 상하지도 않았지만 영원한 외로움 속에 갇힌 멀쩡한 장난감. 그것이 바로 스팅키 피트이기 때문이지요.


우디를 설득해서라도 박람회에 가고 싶어 하는 스팅키의 모습은 결국 본질을 외면한 외관의 유지란 그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말해줍니다. 제시는 에일리에게 버림받았지만 대신 에일리와 함께 했던 시간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 기억은 제시에게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시간이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쇠퇴하는 것도 과거의 기억을 안은 채 상실감에 빠져 살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그 기억만은 에일리와 더불어 온전히 보전된 채 사라지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추억은 영원이다. <토이 스토리 2>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느새 시간이 흘러서 이제 곧 가을이 되고 우리 모두는 가을만큼 낡을 것입니다. 하지만 빛바랜 자국에 다시 빛이 들면 그 자국에 새겨진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 수도 있겠지요. 상처 없는 자리는 언제나 빛을 튕겨냅니다. 빛이 튀어서 그것은 눈부시고 눈부셔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시간이 흐른 만큼의 자국이 생긴다면 그것은 낡은 것이 아니라 영원한 이야기가 생긴 것이라고 믿으려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생각났습니다. 죽지 않으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들을 일러 우리는 ‘괴물’이라고 호명하지요.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김상경)는 말합니다. “우리 사람 되기는 어려워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 맥락은 다르지만 기억할 만한 문구입니다.



2022년 8월 28일부터 2022년 8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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