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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Sep 08. 2022

영화 이야기 <토이 스토리 4>

근래에 보았던 영화 중에서 이만큼 명암이 뚜렷한 영화도 없습니다. <토이 스토리 4>는 선명한 영화입니다. 20세기에 시작하여 속편은 전편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매번 전복시키면서 시리즈를 만들어 온 저력도, 이 저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야기의 방향을 선회하려는 의도도 뚜렷합니다. <토이 스토리> 1편부터 3편까지는 트릴로지로 보입니다. 1편과 2편은 시간을, 3편은 공간을 다루고 있다고 앞서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4편은 이 트릴로지와는 구별됩니다. <토이 스토리 4>는 어쩌면 가장 <토이 스토리> 같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토이 스토리> 같지 않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먼저 이 영화를 가장 <토이 스토리> 같은 영화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바로 새로운 캐릭터 포키(토니 헤일)입니다. 유치원에 처음 가게 된 보니(매들린 맥그로)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교실에서 낯선 소외감과 외로움 속에 방치됩니다. 마치 버려진 장난감처럼 되어버린 보니는 우디가 몰래 쓰레기통에서 꺼내온 재료로 자신만의 장난감을 만듭니다. 바로 포키지요.


쓰레기통에서 꺼낸 재료로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토이 스토리>를 지금까지 끌고 온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토이 스토리>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대단하거나 화려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유명했지만 지금은 새로운 장난감에게 자리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우디, 자신을 우주 레인저로 굳게 믿었지만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충격에 빠진 버즈, 누구보다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을 사랑했지만 결국 버림받은 제시까지. 1995년부터 2019년까지 2세기의 레일을 달려오는 이 기차의 승객 중에서 주목받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상처 입고 약함을 숨기지 못하는 소외된 인물들이었지요.


초라하고 소외된 이들의 조합으로도 마법 같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토이 스토리>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매 시리즈마다 감탄하게 되는 것은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 구축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장난감들이 스스로와 주변 도구를 이용해서 창문을 열거나 밖으로 나가는 장면들입니다. 서랍의 손잡이부터 그라인드 줄, 비스듬히 놓인 책과 주먹만 한 쿠션까지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모든 것들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말하자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사물을 하나하나 담아두는 눈과 올바른 목적을 위해 걸어가는 바른 의지라는 것을 이 영화는 매 시리즈마다 말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비슷한 말을 무라카미 하루키도 한 적이 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E.T>에서 E.T가 창고의 잡동사니를 모아 그걸로 즉석 통신 장치를 만들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중략)…영화관에서 그 장면을 보고 크게 감탄했었는데, 뛰어난 소설이란 분명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재료 그 자체의 질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거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매직magic’입니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밖에 없더라도, 간단하고 평이한 말밖에 쓰지 않더라도, 만일 거기에 매직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것에서도 놀랍도록 세련된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매직’이라는 것은 결국 재료를 조합하는 상상력입니다. 이 상상력을 매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재료를 조합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흩어져 있는 것들을 조합했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를 그려볼 수 있는 ‘통찰력’과 서로 맞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끝없이 발생하는 불협화음을 조정하는 ‘인내’도 필요하며, 본인이 상상한 그림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과 자신의 확신을 밀어붙이는 강인한 ‘의지’도 요구됩니다. 마법의 재료란 곧 인간의 힘인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당사자가 이것을 상상이 아닌 ‘현실’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볼 수 없다고 해도 상상하는 자는 자신이 상상한 세상을 직접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그 세상 속으로 다른 사람들은 하나씩 불러 모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스스로가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상상력이란 곧 매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쓰레기는 따뜻하잖아. 포근하고, 안전해.”


왜 그렇게 쓰레기에 집착하냐는 우디의 물음에 대한 포키의 답은 <토이 스토리>가 이미 4편이나 성공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떻게 해서 성공하게 되었는지를 잊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보잘것없는 것들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토이 스토리>의 근력이라면, 새로운 세계를 만든 후에도 보잘것없는 것들을 잊지 않는 것은 <토이 스토리>의 지구력입니다. 말하자면 포키는 <토이 스토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왜’ 여기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모습인지를 말해주는 캐릭터인 것입니다.


우디는 스스로를 장난감이라고 말하고 포키는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장난감과 쓰레기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차별도 귀천도 계급도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이름일 뿐입니다. 우디와 포키가 새벽의 국도를 나란히 걸어갈 때 이 두 단어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성질을 내려놓고 동등해집니다. 이름에 속지 말라고. 포장지와 속성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라고. 중요한 것은 놀이동산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거라고 이 영화는 말합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한 장난감은 쓰레기가 되고 사랑받을 때 쓰레기도 장난감이 됩니다. 어떻게 쳐다보아야 하는가. 1편부터 4편까지 <토이 스토리>가 한 번도 놓지 않은 질문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편부터 3편까지 긴 여정 속에서 여러 번 자기 자신을 잃고도 끝내 “Not Today”라고 말하며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버즈의 역사를 한 순간에 끝내버렸다는 점,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말했던 우디가 아이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택함으로써 이전까지 ‘파트너’였던 관계를 느닷없이 ‘주종관계’로 바꿔버렸다는 점에서 <토이 스토리 4>는 분명 <토이 스토리> 트릴로지와는 방향성이 다른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많이 섭섭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이 영화는 앞으로 새로운 <토이 스토리>가 펼쳐질 거라는 예고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4편에서 <토이 스토리>는 포키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반추하고 우디의 변화를 통해 새롭게 나갈 길을 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제까지 우리가 어떻게 왔는지 잘 봤지? 기대해, 앞으로는 다른 길로 갈 거니까”라고 말하는 것 같군요. 예고편만으로는 큰 흥미가 생기지 않는 길이지만 분명한 건 향상심이 없다면 지구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 걷기 위해서는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법이지요. <토이 스토리 5>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저는 어쩐지 꼭 나올 것 같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이것만은 변함없을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인 거라고.



2022년 9월 4일부터 2022년 9월 5일까지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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