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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Oct 22. 2022

영화 이야기 <블리드 포 디스>

인생은 도박이다. 이 말에는 삶의 정수를 맛보기 위해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한 줌의 미련도 없이 산화하는 결기가 필요하다는 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확률, 즉 타인의 의지라는 말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항상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이 실신 직전까지 뛰어도 포디엄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세 명뿐이고, 똑같이 밤새워 공부해도 꼭 시험의 합격 정원은 정해져 있습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처럼 과정은 인간의 것이되 결과는 하늘의 것인지도 모르지요. 숟가락질을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수저가 무슨 색인지가 더 관심의 대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숟가락질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수저는 하늘이 정하는 것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일단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고, 설령 원하던 대로 되지 않더라도 차선이라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버리면 논리적이고 합리적 일지는 몰라도 삶은 얄팍한 것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목적을 고려한 계산이지요.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목적을 위해 삶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지 고민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삶을 대하는 자세를 말하며 이 자세는 결과적으로 삶이라는 과정을 그 자체로 목적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영화 <타이타닉>의 건배사이기도 했던 ‘순간을 소중히’라는 것은 오직 최선을 다하는 삶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블리드 포 디스>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영화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역경과 싸웠던 실존인물을 극화함으로써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대신 “해 봐, 간단해”라고 말해주는, 말하자면 영화 <퍼펙트게임>와 비슷한 말을 하는 영화입니다. 좋게 말하면 동기부여가 되고 나쁘게 본다면 교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영화의 특징은 출발지는 제각기 달라도 도착지는 대개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패는 어떤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 말을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하고 싶은 얘기는 어디서 많은 들은 얘기라는 뜻도 됩니다만.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도 ‘한 말’이 아니라 이 영화만 ‘하지 않은 말’입니다. 어떠한 역경이 와도 겁먹지 않고 정면으로 이겨내라는,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교훈’은 물론 이 영화에도 있습니다. 다만 <퍼펙트게임>이 “어깨가 으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던지”라고 말한다면 <블리드 포 디스>가 말하는 것은 그것과 다른 말입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샌드백을 두드리고 있는 비니(마일즈 텔러)에게 케빈(아론 에크하트)은 이렇게 말합니다. “쓰러질 때까지 하지 않으면 열심히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샌드백을 두드리다 탈진하고, 피로 물든 붕대를 갈아 감는 모습이 어쩌면 ‘최선을 다하는 삶’에 더 가까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록키> 이래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는 거의 정석에 가깝지요. 하지만 <블리드 포 디스>가 케빈의 입을 빌어 말하는 것은 단순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방법입니다. “항상 넌 올인이지. 이건 블랙잭이 아니야”라는 케인의 말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삶의 특정 부분이 아닐까 라는 질문이 들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삶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특정 순간만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은 목적을 위해 나머지 삶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비니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그가 즐겨하는 도박과 유사합니다. 도박은 순간에 결정되지요. 마찬가지로 비니는 삶을 어떤 순간이 결정지을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잡히면 미친 듯이 훈련하지만 경기가 없을 때는 관리도 하지 않고 훈련도 하지 않습니다. 경기는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도박이지만 그 외에 시간은 인생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잉여라는 생각이 그의 사고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지요. 실제로 동기부여를 외치는 매우 많은 미디어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합니다. 성공. 그 매력적인 단어를 위해 마치 삶은 얼마든지 희생되어도 괜찮은 것처럼 말하지요. 하지만 어떤 것이 성공인가 하는 여부는 제쳐두고라도 삶은 순간의 총합이지 순간의 소실점이 아닐 것입니다. 한 번 크게 웃기 위해 계속 울어야 하는 인생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삶은 다하는 것이지 거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자동차 사고를 기점으로 비니의 태도는 바뀝니다. 헤일로 수술로 일상생활조차 혼자 힘으로 영위할 수 없게 된 비니는 모두가 자신을 죽은 사람처럼 대한다는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그것은 실제 주변 사람들의 태도라기보다 더 이상 인생에 어떤 빛나는 순간도 만들어낼 수 없을 거라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비니가 자기 연민을 이겨내는 방법입니다. 그는 지하실에 있는 사용한 지 아주 오래된 벤치 프레스에서 아무도 모르게 운동을 시작합니다. 목뼈를 간신히 붙여놓은 상황에서 중량운동을 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보다 신경이 제대로 붙지 않은 상태에서는 빈 봉조차 제대로 들 수가 없습니다.


비니는 빈 봉에서 출발합니다. 빈 봉을 한 번 들었다 놓을 수 있게 되면 두 번에 도전합니다. 이것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승리하거나 카지노에서 돈을 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순간이지만 역설적으로 비니가 깨닫게 되는 것은 이러한 순간순간의 무게입니다. 말하자면 비니는 그간 너무 무거운 순간에만 집중하느라 가벼운 순간은 아예 무게가 있는지조차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빈 봉에서 출발하여 조금씩 무거운 중량으로 올라가는 그의 재활훈련은 곧 아주 가벼운 순간조차 때로는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면 포기해도 되는 순간도, 의미 없는 순간도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지요.


영화 속에서 비니가 가장 즐겨하는 도박은 블랙잭입니다. 나무 위키를 보니 블랙잭의 승률은 아무리 유리해도 대개 49%라고 되어 있더군요. 49%라는 확률은 절반에 가깝지만 절반을 넘을 수 없는 숫자입니다. 말하자면 이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하지만 이길 수는 없는 숫자인 셈이지요. 그러니까 만약 이긴다면 아주 짜릿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49%의 확률로 51%를 넘었으니까요.


사람이 도박에 중독되는 이유가 아마도 여기 있을 것입니다. 49%로 51%를 이기는 순간의 경험. 한 번 이 경험을 하고 나면 절대 도박장을 나올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블랙잭은 원래 게임입니다. 그리고 게임은 즐겁게 하는 게 제일 좋은 거지요. 51%를 넘지 못해서 끝내 지더라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도박장을 나오면 그게 제일 좋은 것 아닐까요? 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박장에서 이기는 것과 도박장을 나오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진짜 승리인지.



2022년 10월 10일부터 2022년 10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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