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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Nov 30. 2022

영화 이야기 <극한직업>

보는 내내 웃었습니다. 코미디 영화는 극장에서 볼 때 재미가 배가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나한테는 별로 웃긴 장면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웃게 되면 덩달아 웃게 되기 때문입니다. 웃음은 분명 전염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극한직업>은 혼자서 봤는데도 한참을 웃었네요. 시청률이 그리 높지는 않았어도 화제가 되었던 <멜로가 체질> 역시 찰진 대사와 위트로 많은 화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극한직업>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장점과 단점은 같습니다. 바로 코미디가 이야기를 잡아먹는다는 것입니다. 전통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한국 코미디의 계보를 보면 대개 코미디는 포장지이고 내용물은 감동을 목적으로 한 이야기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말하자면 장르는 코미디로 분류되어 있어도 실제로는 드라마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 코미디는 관객이 이야기에 잘 스며들 수 있게 유도하는 기술이 됩니다. 


웃음으로 시작해서 감동으로 끝내려는 이야기는 나쁘게 말하면 상투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몇 가지 성공 사례에 힘입어 대량 생산된 일종의 양산품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무리수를 쓰더라도 이야기를 감동으로 끝내려고 하는 이유는 영화의 목적이 결국 이야기의 전달이기 때문입니다. 잡담과 이야기의 차이점은 바로 목적의 유무입니다. 잡담은 목적이 없는 말이어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그것은 우연한 말하기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목적이 있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구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필연적이며 인위적입니다. 잡담은 전달되지 않지만 이야기는 전달됩니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관객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분명 관객에게 할 말이 있는 것이니까요.


다만 <극한직업>의 경우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하는 형사들의 고군분투기라는 뚜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물이 없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대사와 행동은 오로지 웃음만을 위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겹겹이 포장된 상자와도 같습니다. 이제는 뭐가 있겠지, 이번에는 뭐가 있겠지 라고 상자를 계속 열어도 나오는 것은 끝내 상자뿐입니다. 물론 그 상자를 여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상자를 계속 벗기다 보면 내용물은 그렇다치고 다음에는 어떤 상자가 나올까 기대하기도 하는 법이니까요.


영화 <극한직업>의 화술이란 그래서 이야기보다는 잡담에 가깝습니다. 기존 코미디 영화에서 코미디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포장지에 그친 반면 이 영화에서 코미디는 내용물 그 자체입니다. 오히려 서사가 코미디를 계속 하기 위한 기술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니까요. 해서 이 영화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감동, 즉 인위적으로 형성한 윤리적 올바름이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해학뿐입니다.


텅 빈 것처럼 보여도 어떻게 보면 이것은 뭔가를 전달해야 한다거나 혹은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만 한다는 강박으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합니다. MZ세대나 파이어족 같은 단어에서도 보이듯이 사회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 부담에게 왜?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처럼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은 데는 아마 그런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도 한 몫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꼭 감동을 받아야 해? 그냥 재밌으면 안 돼? 라고 이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말하고 있으니까요.


노는 것도 인생 공부의 일면인 것처럼 생각하는 의미부여의 강박에는 사실 숨이 막히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젊었을 때 놀아야 한다거나 혹은 어떻게 놀아야 한다는 둥의 이야기는 노는 것조차 정형화하려는 심리의 반영이 있지요. 그러나 노는 것은 각자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즐거움에는 규격이 없습니다. 꼭 스무 살에 클럽에 가고 서른 살에 고급 레스토랑에 가며 마흔 살에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목적이 있는 말하기에는 가르침, 즉 교조적인 성격도 배어 있는 법입니다. 수많은 동기부여 영상에 괜히 학원 강사의 쓴소리가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니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웃음으로만 직진하는 <극한직업>에는 분명 이러한 ‘선생들의 이야기’에 대항하는 뚝심이 있습니다.


다만 <극한직업>이 오로지 웃기기 위해 사용한 이 방식에는 많은 것들이 그저 소품으로 사용되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 소품에는 경찰의 윤리의식, 마약의 위험성 등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것도 분명 들어 있었습니다. 마약범 잡는데 형사와 시민이 따로 없다거나 소상공인들은 모두 목숨 걸고 일한다거나 하는 말은 대사만 보면 유의미한 말이지만 끊임없이 웃기기만 하는 맥락 속에서는 원래 문장이 가진 힘을 쉽게 잃어버립니다. 게다가 이들이 마약범을 잡는 이유는 사실 시민이라서가 아니라 원래 직업이 형사이기 때문이고 소상공인으로서 목숨을 걸고 일한 적도 없지요. 


웃음은 분명 딱딱한 것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등에 짊어진 무게 때문에 굳어버린 어깨도 풀어주고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굳어버린 표정도 유연하게 해주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풀어져서는 안 되는 단단한 것들도 분명 있습니다. 힘을 빼라는 말은 원래 주어야 할 힘보다 더 많은 힘을 쓰고 있을 때 유의미한 말입니다. 아무 힘도 주지 않는 건 약에 취한 사람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것이겠지요.



2022년 11월 27일부터 2022년 11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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