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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an 21. 2023

영화 이야기 <라파예트>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남는 것은 항상 미완의 기억들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제는 어떻게 해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하다 만’ 기억들은 그때가 언제고 간에 느닷없이 떠올라 수정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완성시켜 달라고. 꼭 성불하지 못한 귀신 같다고 할까요. 확실히 예전에 <전설의 고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한이 맺혀서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이 모두 이승에서 완성하지 못한 미완의 생을 가진 자들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끝내지 못한 숙제가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아무리 흐른 다음이라도 그 숙제를 마치도록 요구받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때를 수정하는 일이 지금을 새롭게 만든다는 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가 떠난 해>에는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 현재의 자신을 바꾸고, 톨스토이의 <부활>에서도 타락한 네흘류도프를 부활시키는 것은 바로 그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 때문이었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전에 뭔가 잘못한 일들이나 마치지 못한 숙제는 과오나 짐이 아니라 생을 갱신하는 열쇠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를 돌아보는 건 대개 현재에 아무 문제도 없거나 하루하루가 기대될 때가 아닙니다. 보통은 전망이 없고 매일매일이 견디기 힘들 때 과거를 돌아보게 되지요. 말하자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블랙박스처럼 느껴질 때 그 속에 손을 넣어보면 과거에 마치지 못한 미완의 일들이 하나씩 잡힌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미완의 일을 완성으로 바꾸어 나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 인생에 다시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지요. 그러니까 실수를 해도 괜찮고 실패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단 언젠가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할 시기가 오면 피하거나 귀찮아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열쇠니까요. 녹을 벗기고 때를 지워서 자물쇠를 열어야만 합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이런 생각은 이 영화, <라파예트>를 왜 갑자기 보고 싶어졌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다가 든 생각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군대에서입니다. 누가 틀어줬는지 그때가 언제였는지 하는 것은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라이트 형제가 만들었을 법한 경비행기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이 아주 벅찼다는 것과 주인공이 만나게 된 여인이 정말 매력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에 누군가 영화를 껐다는 겁니다.


그래서 읽다 남은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라파예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최초로 출범한 전투비행단의 이름입니다. 지금은 각 국가별로 공군이 있지만 당시에는 비행기라는 개념이 생소할 때라 라파예트는 다국적 군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라고 나오지만 사실 큰 의미는 없습니다. 총평을 하자면 잘 만든 군대 영화 같은 느낌입니다. 분명한 적과 애국심의 고취, 아름다운 여인과 영웅의 출현, 전우의 희생과 그로 인해 고조되는 비극성까지. 가슴에 불을 지피지만 그게 건전한 동력을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빨리 뜨거워지고 금방 식습니다.


<스파이더 맨>의 제임스 프랭코와 <레옹>의 장 르노를 볼 수 있다는 건 이 영화의 매력입니다. 히로인을 맡은 제니퍼 덱커는 고전적인 느낌의 프랑스 미인으로 나오는데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아가씨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실제 촬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공중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대지와 푸른 하늘은 스크린 바깥까지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전투 방식은 단조로우나 박진감이 있고 드라마는 소품처럼 사용되지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이런 비유가 이상할 수도 있는데 꼭 공장에서 만든 수제품 같은 느낌입니다. 아무데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여기서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물건이랄까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특정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건 아닙니다.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라파예트가 어떻게 창설되고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가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습니다. 라파예트가 1차 세계대전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는 보여주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어떻게 해체되었는지는 보여주지 않고, 두 주인공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는 보여주지만 나중에 파리에서 다시 만났는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끝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주지만 그것은 활자로 정리한 것이지 영화로 보여준 것은 아닙니다. 요컨대 이 영화는 미완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이 이야기를 미완으로 둔 이유는 1917년의 이야기를 굳이 2000년대로 호명한 이유와 같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독일군은 절대악으로 등장합니다. 라파예트는 절대악과 싸우기 위해 훈련하고 인종 문제나 장애인 문제 같은 내부의 갈등을 해결해 나갑니다. 이것은 1917년만이 아니라 2000년대에도 세상에는 분명한 적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 적과 싸우기 위해 훈련하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줍니다. 말하자면 이 세상은 전쟁터이고 영화 <라파예트>는 이 전쟁터에서 전투원으로 살아남는 법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이 세상을 군인처럼 살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절대악이 아니라 자기만의 악입니다. 그러니까 배워야 하는 것은 남들과 똑같은 훈련법이 아니라 자기만의 훈련법이겠지요.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해야 하겠지만 이 영화에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모범사례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영화 속 내부적 갈등들, 가령 인종 문제나 장애인 문제 같은 것은 전시라는 특수 상황에서 저절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이 영화의 방식을 따른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더 큰 문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확실히 해결되지는 않아도 작은 문제는 사라지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완의 이야기가 제시하는 유의미한 지점은 바로 1917년이나 2000년대에나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1917년대의 이야기를 보면서 2000년대에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1917년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지요.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는 언제나 돌아가서 수정할 장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존재하지요. 현재를 수정하는 일이 과거를 완성시키는 일이라는 것은 낯선 개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과거, 즉 기억이란 바로 기억을 떠올리는 그 순간의 반영이기 때문이지요. 이야기는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도요.



2023년 1월 15일부터 2023년 1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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