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미션 임파서블:데드 레코닝 Part1>
전작 <미션 임파서블 : 폴아웃>을 보고 나오면서 생각했던 것이 있습니다. 다음 편도 극장에서 봐야지. 극장은 영화를 체험하게 해줍니다. 불이 꺼지고 거대한 화면만 유일하게 빛날 때 그 빛은 통로가 되어 나를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기차 속에 있는 승객은 가만히 앉아있는 것처럼 보여도 똑같이 시속 300km로 달립니다. 에단 헌트가 비행기에 매달릴 때 관객은 객석에 앉아 있어도 같이 매달려 있고, 추락할 때도 함께 떨어집니다.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의 유명한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없는 거야.” 맞는 말입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고, 잠시나마 에단 헌트가 된다고 삶에서 도망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망이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영화에 몰입해 있어도 이곳이 객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발견하는 것은 단지 이런 종류의 삶도 가능하구나 하는 깨달음입니다. 실제 에단 헌트처럼 IMF가 되어 살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인생은 TV처럼 다채롭지 않습니다. 한 지역에 오래 살았다고 해도 실제로 그 지역의 모든 곳을 구석구석 알고 있는 게 아니듯이 삶은 하나의 서클이 완성되면 끊임없이 제자리에서만 구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는 회전하고 있으면서도, 즉 동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디론가 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립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가능성이란 바로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잊고 있던 것. 내 삶은 자연법칙에 의해 흘러가는 게 아니라 나라는 동력을 통해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영화는 알려줍니다. 바닥을 부술듯이 힘차게 뛰는 다리와 맹렬한 굉음을 내면서 질주하는 자동차는 삶의 동력이며, 비행기를 붙잡아 상승하고 절벽 밑으로 뛰어내리며 하강하면서 그리는 상승하강의 그래프는 삶의 모험과 위험에 여전히 반응하는 심장의 사운드이고, 나의 소중한 몇몇과 얼굴도 모르는 절대 다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윤리성은 이 동력과 사운드가 질주해야 할 방향을 가리킵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그래서 영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영화의 확고한 일부입니다. 이것으로만 이야기할 수도 없고 이것을 빼놓고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Part1>은 순서대로 보면 시리즈 7에 해당합니다. 첩보물 시리즈는 많지만 단일한 주인공으로 30년에 이르는 역사를 써온 경우는 아마도 이 시리즈가 유일할 것입니다. 영화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이 가상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음으로써 이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 리얼리티는 바로 역사성입니다. 1996년에 처음 세상에 얼굴을 비춘 에단 헌트는 톰 크루즈에 의해 이제 소모되지 않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빛이 바랜 피부와 주름이 보여주는 것은 노쇠가 아니라 역사이며, 에단 허트는 늙음으로써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영원에 가까워집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흩어지지 않고 축적될 때 덧셈이 아닌 기하급수로 측정되는 것을 <미션 임파서블>은 보여줍니다.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Part1>의 오프닝 시퀀스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러 온 신입 IMF가 어둠 속 에단 헌트와 조우합니다. 에단 헌트는 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법에 대해 가르칩니다. 그는 이제 배우는 자가 아니라 가르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가방 속 메시지를 듣는 순간 그는 다시 새로운 미션을 배우러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배운 것을 가르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이 스승과 제자가 한 몸이 되어 굴러가는 순환을 일컬어 무궁하다고 합니다. 즉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끝이 없는 세상에도 방향은 있습니다. 돌아가는 신입에게 에단 헌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옳은 선택을 한 거야.” 이 오프닝 시퀀스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시작’에 대해 말합니다. 옳은 방향을 향한 끝이 없는 여정. 물론 이 ‘옳음’은 보는 각도에 따라 얼마든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한 삶의 태도는 분명 윤리적인 것입니다.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자마자 터져나오는 시리즈의 메인 테마곡은 언제 들어도 소름이 돋습니다. <미션 임파서블>이 온몸으로 말하는 이 ‘영원’은 바꿔말하면 ‘현재’이기도 합니다. 에단 헌트는 한 번도 팔짱끼고 지켜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늘 달리고 매달립니다. “내 목숨보다 네 목숨이 더 소중할 거야”라는 낯뜨거운 대사도 자연스럽습니다. 일곱 번째 시리즈에서도 변함없이 귓청을 때리는 메인 테마곡은 이제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말입니다. 이제 네가 알고 있는 그것이 다시 한 번 시작될거야. 준비됐니. 그래서 이 음악을 듣는 순간 우리는 안도하게 됩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에단 헌트는 이번에도 달리고 매달리며 “내 목숨보다 네 목숨이 더 소중할 거야”라고 말할 거라는 것. 그때의 우리는 여전하다고 이 영화의 일곱 번째 시리즈는 다시 한 번 말해줍니다.
이 영화는 개봉 전에 톰 크루즈의 액션신 촬영을 장면을 선공개함으로써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영화 중간에 알프스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죠. 스키점프의 발사대와 비슷한 간이 오토바이 활주로를 만들어 그 위로 오토바이를 달리게 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발사대를 CG로 처리한 것만 빼면 모두 실제 액션으로 촬영되었습니다. <탑건 : 매버릭> 촬영 당시 항공유 알레르기를 일으킨 마일즈 텔러가 톰 크루즈에게 “몸에 항공유가 흐르고 있대요.”라고 말하자 톰은 “난 태어났을 때부터 흐르고 있었는걸”이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공포라는 감각이 없는지 아찔하기 짝이 없는 절벽 밑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뛰어내리는 장면을 반복하는 그에게는 분명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함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촬영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특별함만이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 특별한 남자조차도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서 몇 번이고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을 봅니다. 명성과 부 그리고 인성까지 갖춘 이 무비스타 역시 그가 가진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원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봅니다. 이 장면은 <미션 임파서블>이 가진 상징과 직결됩니다. 그건 바로 영화 속 에단 헌트가 늘 현재의 에단 헌트로 살아있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이를 잊게 만드는 위험한 액션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나이를 잊게 만드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현재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현재가 얼마나 빨리빨리 지나가 버리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영화 속 엔티티가 낸 질문 중 “다가오지만 도착하지는 않는 것”에 그레이스는 “내일”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도착했지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오늘입니다. 우리는 늘 오늘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은 공항에서 만난 지인을 닮은 타인처럼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무심히 옆을 지나쳐 버립니다. 오늘은 말하자면 매력적인 낯선 이성과 비슷합니다. 말을 걸기 위해서는 이쪽에서도 그만큼의 자신감을 갖춰야 합니다.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Part1>의 이야기는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야기가 Part1이어서 좋았습니다. 기대되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익숙한 이야기도 얼마든지 설렙니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한 세대를 관통해오는 동안 뚝심있게 하나의 테마를 전달해왔습니다. 불가능의 가능성.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가오지만 도착하지 않은 척했던 내일이 사실은 멀찍이서 우리를 어디론가로 데려가고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오늘을 잃어버리지 않을 거라는 희망은 반갑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주어진 불가능한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미션 임파서블>을 보면서 느끼는 것. 그것은 미션은 에단 헌트에게만 내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2023년 8월 14일부터 2023년 8월 15일까지
보고
생각하고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