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에 대한 순응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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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졸업식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난 뒤 바로 그 날 오후 부터 인턴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첫 발령부서는 응급실, 그 다음이 정형외과, 그 뒤가 내과 연이어 메이저 벅찬 과의 연속으로 이런게 병원생활이면 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으려나 늦은 밤 잠시 인턴 숙소내 침대에 가운도 벗지 못한채 엎드려 잠들던 시절

아침은 회진준비로 언감생심꿈도 못꾸고

오전중 외래를 통해 올라오는 환자들에 대한 레지던트들의 수족역할을 하다보니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은 회진과 과회의 준비로 못먹고, 야식은 응급실에서의 콜로 식당으로 가다 지붕위 스피커에서 울리는 페이징에 다시 발길을 돌리기 일쑤

그러다 보니 인턴을 부르는 말로 3신이 있다

먹는덴 '걸신'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무조건 먹어 두어야한다

일하는 덴 '병신' 이걸 시키면 저걸 해 오기 일쑤

눈치보는 건 '귀신' 야단치려하면 어느새 저리 뛰어가고 있는게 인턴이니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가 가장 행복했었던 병원생활이 아니었던가 싶다

가운의 단추를 풀어 헤치고, 병원일은 혼자 다 하는 듯이 필요 이상으로 더 바쁜척하면서 뛰어 다니고

큰일이라도 하는 듯 친구들과의 어쩌다 술자리에서의 너스레는 인턴때가 가장 심하지 않았을까?

제대병들의 군생활과 축구이야기처럼 ^^

인턴기간은, 아마도 의사 생활중 가장 시크했던 시절

그러다,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오더하에 생명이 오고가고, 환자의 챠트에 담장 주치의 이름으로 내 이름 석자가 적히면서 부터 양어깨위에 몰리는 무게감은 인턴시절 내 환자없이 뛰어 다닐 때와는 사뭇다르게 가운이 나를 감싼다. 내가 함부로 쓰는 글자는 글로 마쳐지는 것이 아니라, 환자분들꼐 약과 주사, 검사가 되어 현실속에서 진행이 이루어진다는 점은 레지던트 초년 시절 갈등과 두려움속 두꺼운 책을 병동 책상위에 올리고 누가 보든 말든 페이지를 넘기며 다시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 것도 부족해 옆의 동료에게 정검을 맞고 하던 시절

지금은 자유로워졌겠지만, 그 때만해도 한 여름에도 긴 팔의 흰와이셔추에 넥타이를 바르게 하고, 가운은 빨아 항상 꺠끗함을 유지하고, 면도로 혐오감을 주지 않아야한다던 시절, 간호사들은 아침으로 수간호사에게 손톱과 의복, 모발상태를 정검받고 메니큐어도 근무시간에 하지 못하던 시절

외과와 달리 내과파트는 더 심해서 근무시간이나 응급실을 갈 때는 슬리퍼가 아닌 구두를 신어야만 했고, 콜이 오는 전화벨이 3번이상 울리기 전에 받으라 교육받던 시절, 오프날 집에서 잠이 들었다가 시계의 울림소리에 홀린 듯 일어나 전화기를 들고 아무과 고시환입니다. 하는 모습에 눈물 짓던 아내의 모습

내 환자가 좋지 못할 때는 오프라 해도 집에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

아니 이는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주치의인데, 좋지 않은 이를 중환자실에 두고 당직에게 맞지고 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죄의식이 강하던 시절이었다. 그 만큼 의사로서의 직업관과 프라이드가 있었는데

어제 선배들이 저녁을 사준다던 곳이 신사동

함께 인턴생활을 하고, 숙소의 침대 아래, 윗층을 함께 쓰면서 출신대학과 난 의대 그 친구는 치대로 서로 전공은 달랐지만 젊은 시절 한 동안 가까이 지냈었던 친구의 병원곁을 지났다. 개원하여 진료중 어느 날인가 불현듯 뉴욕으로 유학을 다녀오겠다며 훌쩍 떠났던 친구 돌아와 신사동에서 개원을 했다. 돌아와 한 동안은 연락이 오갔지만, 아무래도 공통적 분모가 적어서 였을까? 아니면, 내 부족함 때문일까? 약속 장소를 가다보니 언젠가부터 연락이 끊긴 친구의 병원앞을 지나가게 된다. 잠시 멈추어 서서 간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삶은 실제로 살 때와 살아본 다음 하나씩 껍질을 벗겨볼 때 얼마나 다른가?'

파란 밤이나 창가의 그림자등을 통해 접했던 소설가 조르주 몽가의 어디에선가 접한 문구중 하나다.

어느 책이었던 가도 적어 둘 것을

책을 읽으면서 눈이 가는 문장들을 노트에, 때로는 메모지나 곁에 있는 빈종이에 적어 주머니속에 담아 두었다 한 곳에 모아두곤 하다보니 언제 어디서 그랬는가를 나중엔 잊곤 한다. 한 때는 조르주 몽가의 책을 연이어 읽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많이 잊어져가고 있다. 기억력이 참 많이 떨어졌다. 바로 전에 읽은 책이나 영화의 이야기가 가물거리기 일쑤이니 적어도 기억력에 있어선 그렇듯이 나쁘지는 않았었는데

대학강단에서고, 시험을 볼 때면 정상수치의 숫치들에 대해서는 중요한 것 몇을 제외하고는 외우지 말 것을 말하고는 했다. 안그래도 외울것 천지건만 숫자는 그냥 보면 그만 인 것을 그 마져도 외우면 더 중요한 것들을 뒤로 하게 되고 마니, 정 숫자를 시험에 내야할 때면 시험 마치기 전 몇분을 남기고 오픈북을 하곤 했었다. 사실, 오픈북으로 어떤 학생이 투서를 하는 바람에 시말서도 쓰긴 했지만, 그 다음 시험에서도 오픈북은 그대로 진행했었다. 그게 내 방식이라 생각했었기에, 다만, 실제 병동에서는 이전의 수치들에 대해서는 외울 것을 말했었다. 이전의 수치를 알아야 오늘 검사한 수치의 변동에 대해서 환자의 상태를 논할 수 있는 기본 자료가 되는 것이니, 정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환자의 어제와 오늘의 변화라 생각했던 것인데, 옳은 것인지는 각 자의 몫일것이기에 옳고 그르고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난 그랬음을 말하는 것이지

아직 껍질을 하나 둘 벗기지 않은 젊은 층들은 시크해도 된다

이미 껍질을 벗기며 삶의 내용을 조금씩이나마 들여다 보아 가는 나이가 되면, 시크함보다는 품속에 빈 공간을 두어야하지 않을까? 더 많은 시간을 살아왔기에 더 알고, 젊은 너희가 뭘 알겠느냐는 말이 오고감이 조금은 무겁다. 그 들은 실수를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 들은 용서를 빌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 들은 어른에게 배워야할 것도 있지만, 반대로 어른으로서 그 들에게 배워야할 것도 적지 않다. 시크하여도, 그 시크함에 살과 색을 더하며 달라질 시간을 가지고 있건만, 눌려만 있고 기회의 부족속에 일생 중 가장 시크할 수 있는 시간들을 잃어가는 건 아닌가 싶어 어제 밤 취기속에 탄 택시안에서 지나는 불빛들이 웬지 눈물 방울마냥 세월이 시대가 괜스레 서글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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