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들어차 질퍽이는 푹푹 빠져가며 논 바닥위에 푸르디 푸른 벼들을
그 땅위에 하나 둘 심어 가며 얼굴의 이곳 저곳에 진흙을 묻힌
옆의 누군가와 떨어지는 이마의 땀에도
허허 웃음짓던 시절
해가 하늘의 한 가운데 한 창 기지개를 펼 때면
머리에 손에 이고 들고
날라져 오던 새참과 막걸리 한 잔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껄껄 웃음에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피로를 씻던 그 시절이
그리도 오래 된 것일까?
어떤 책이었던가?
아니면, 잡지나 기사였는지는 모르지만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건 바이러스가 가장 유력한 1차 이유가 될 것이라는
또, 그러한 영화들도 수차례 그 내용을 달리하며 만들어지기도 했었고
물론, 영화속 승자는 거의 대부분 인류었지만
글쎄
바이러스나 세균등과 같은 인류에게 시시때때로 공포의 대상이 되어왔고,
또, 신대륙의 발견 당시 해당 대륙의 수 많은 원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었던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성 질환들
유럽의 인구를 줄였던 페스트
5000만명이상의 생명을 앗아갔었던 스페인 독감 등 역사속에서 전염성 질환에 대한 공포를
논하기는 수 없이 그 대상과 이야기거리들이 넘쳐 날 것이다
더더구나 더 두려움을 가중 시키는 단어중 하나가 인수공통전염성 질환아닐까?
날라다니는 조류에 의한 전염병은 막을 방도자체가 없을터이니
하지만, 한 가지 공포보다 이해가 앞서야 함은
유명한 심리학 이야기중 미국의 철도 역무원 '닉 시즈맨'은 어느 여름날 영하 25도의 냉동차에 갖힌 채 다음날 꽁꽁 얼어 죽은채로 발견됐지만, 실제로 그 차의 냉동장치는 가동되지 않은 채였고 밖의 온도는 영상 12도로 차안도 이와 같았다 한다.
이를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 한다
심리적, 병리적 용어라 할 수 있을 이 단어는 실제로는 무해하나 신체에 두려움이 주는 결과에 대한 것을 말한다
현재 현장 의료에서도 흔히 플라시보(Placebo)효과라해서 약리적 효능이 없는 약제, 예를 들어 그져 소화제를 처방했음에도 효과를 보게 되는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고는 하다
흔히 우리의 언론들이 사용하는 신종이란 단어
이 또한, 한 번정도는 지적이 되야하지 않을까?
새로운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질환의 원인바이러스나 균주에 대해서 세계보건기구는 그 명칭앞에 novel이란 용어를 사용, 물론 단어의 뜻속엔 신종이란 해석도 담고 있다 하겠지만, 보건기구에서 사용하는 의도의 뜻은 신종보다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못했음의 의미로 그 뜻을 표시하고는 한다. 이번 코로나에 대해서도 처음 WHO에서 명칭한 것은 novel coronavirus로 잠시 표현하다, 곧이어 corona virus 19에의한 질환이란 뜻의 COVID-19로 칭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그 특성상 지속적인 변종의 등장이 특이한 것은 아니다
유전적으로 불완전하고, 숙주없이는 생존의 어려움을 가지지만, 해당 숙주는 지속적인 면역으로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성을 만들기에 생존을 위해 바이러스 역시 스스로 그 모습의 변화를 지속해야함은 바이러스 자체의 입장으로서는 생명의 순리에 해당한다 해야할 듯
치사율이 높고 낮은 바이러스의 변이는 있을 수 있었으나, 지구내 인구의 증가와 교류가 더 활발해지고, 교통등의 발달로 공간적 공유가 늘어나면서 전염률은 높아지고 있다 해도 의술의 발달등에 의해 치사율은 낮아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바이러스등의 살아남기 위한 변이에 비해 국가내 질병관리 시스템의 변화와 발전의 모습은
이번 기회에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COVID-19는 분명 시간이 문제이지 그 때 그런일이 있었어로 과거속에 묻힐 것이다
우리에게 한 때 신종플루라 불리던 인플루엔자가 그랬었고, 메르스가 그랬듯이
한 창 신종플루가 유행시
비축된 타미플루에 대한 논쟁과 처방의 불안감을 가졌던게 그렇게 오래전
이야기일까?
메르스로 우주복과도 같은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들마져 쓰러지든 것이
그렇듯이 오래된 이야기일까?
언제부터인가 마스크가 일상속
마치 속옷이나 의복마냥 일상속으로 들어온게 이번 COVID-19가 돌면서 였을까?
이번엔 좀 다름을 보일 수 있는 가르침을 COVID-19가 주고 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이 역시도 그 땐 그랬었어로 끝나게 될까?
깨끗함
지구는 깨끗했었다
'침묵의 봄'이 나온게 1950년대
벌써 70년이 지났건만, 세상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논하며 더 다양한 오염물들을 개발해 왔다
어제 다녀온 충남 서쪽의 아주 끝바다
그 바다, 해변가마져도 각종 오물들 패트병에 빈 끼그러진 빈 캔, 각종 깡통들, 깨진 유리조각과 병들, 플라스틱 조각에 비닐 봉투, 하나 둘 줏으며 걷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쓰레기에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이젠 그 깨끗에 대한 경작을 시작해야함을 자연이
알려주고자 함은 아닐까?
마스크로 입을 막기보다, 귀와 눈을 열어야 할 때라고
오늘도 걱정어린 목소리속에 독감주사라도 한 번 더 접종하시겠다는
분들까지 다녀가신다
저녁, 후배들과의 논의자리 내 할 수 있는 말들은 어떠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