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종합소득세를 신고로 회계사 사무실에서
자료 요청이왔다
내 가장 약한 파트 ㅜㅜ
사실 십여년전까지만 해도 주민센타, 당시엔 동사무소에서의 서류도 잘 떼지를 못했고
지금도 사실 등본과 초본의 차이를 잘 모르는 나에게 세금관련 서류들을
그것도 2019년 1년분을 챙기라 함은 거의 고문 수준
카드사
은행 등에 전화를 걸면 사람 대신 거의 똑같은 톤
아니, 목소리도 같은 듯 싶은 여성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울리기만 한다
몇번을 누르라 하고 대기가 많다며 음악이 들리다 다시 또 똑같은 목소리의 반복
1층 햄버거 가게도 그렇고
아내와 간혹 가는 백화점내 식당도 그렇고
사람이 아닌, 기계앞에서 메뉴를 선택하면 그게 끝이 아니라
다시 거기에 뭘 또 추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화면이 이어진다
대면보다 녹음된 목소리와 버튼이 대신하는 문화가 된걸까?
원격진료가 다시 논쟁거리가 되려나 보다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전화나 다른 가족들에 의한 대리 처방
아마도, 나라에선 이를 더 확장하여 몇년째 제 자리의 답보상태에서
정부와 의협, 의료진과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원격진료에 대해 추진력을 얻은 것일까?
제발 밥그릇 다툼이란 말로 본질의 왜곡이 안되어 주었으면 ㅜ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얼굴을 대면하면서 한다는 의미
식당에서 주인 아주머니, 아저씨와 친해지면 반찬하나 계란 후라이 하나라도 상에 더 오르건만
대학수업에서도
수련의 과정중에서도
전공의 과정중에서도 가장 강조받아온 진료의 기본중 기본은
환자를 보는 시진, 만져보는 촉진과 타진, 묻고 듣는 문진과 청진이었었는데
대학교수시절 회진시 증상이 아닌 어디서 온 분이고
가족관계를 전공의에게 물어 답을 못하면 방으로 불러 내 그걸 물은 이유를 말해주곤 했었다
닥터는 증상을 보고 진단을 내리는 사람이라기 보다
그 진단이 내려지기 전까지의 과정을 논할 수 있는 훈련을 우리 같이 하자고
삼십몇년 운전을 했어도
차가 이상을 느껴 센타에 들어가도 이상에 대한 설명은 서툴기만 하다
그져 내 느끼는 것을 내 언어로서 어설프게 전달할 뿐
많은 경우 내 전달한 언어와는 다른 이상을 정비공은 찾아서 수리를 해 준다
만약,
ARS처럼 차의 어느 부위에 이상을 느꼈는가 묻고 몇번을 누르라 한다면?
아마도 거리위에서 난감함을 겪게 되는 일들을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을까?
눈이 아프게 찾아도 네잎의 행운은 찾아지지 않는다
세잎의 행복의 편안함
그 사이 사이 작은 꽃이라도 보이면 그 모습에
수수한 행복을 조금이나마 이거구나 생각케 해 준 것은
아마 나이가 내게 선물해준 고마움임을 이제서야 느낀다
적어도 의료만은 대면 진료를 지켜주면 안될까?
내 몸이지만, 내 몸에 대해서 바르게 설명할 수 있는 분들이 어느 정도 될까?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한다지만, 사실 내 몸을 가장 모르는 건 적어도 난 그게 바로 나다
물론, 나 스스로 내가 허술함을 알기에 다른 분들은 나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얼굴을 마주하며 다소 심각한 소견이라해도 편하게 대화하며
'엄마 손은 약속'
은 아니어도 처방전 이상의 것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거
그게 의료 아닐까?
오전내내 들었던 ARS의 헛도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원격 진료가 허용되면 방송 등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의료진들의 전화기에도 ARS가 설치되야겠지?
피곤한 오전이 지나고 나니 오후가 길게만 느껴진다
못그려도 그림이 고맙다
엉터리지만, 그리는 동안엔 다른 잡생각이 줄어들어 좋다